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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여자 아이돌로 산다는 것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이 땅에서 여자 아이돌로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 극단적 선택으로 충격을 안긴 설리 소식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다. 2009년 SM 걸그룹 f(x)로 데뷔한 가수 겸 배우이자,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SNS 셀럽이었다. 워낙 남의 시선 의식 않는 자유분방한 영혼이라 숱한 ‘논란’과 루머가 따라 다녔다. 악플과도 사투를 벌였다. 실제 악플로 인한 대인공포증과 공황장애로 활동을 쉬기도 했다.
 

악플에 시달리던 아이돌의 죽음
파격과 개성 포용않는 사회풍토
무자비한 악플문화 되돌아 봐야

극단적 선택의 정확한 이유는 알 길 없으나 인터넷엔 ‘악플이 그녀를 죽게 했다’는 글들이 쏟아진다. “악플 한 번이라도 달았던 사람들 부디 반성하라. 당신들이 살인자” “악플금지법이라도 만들어라”라는 내용이다. 외신도 비보를 전하며 “설리가 끔찍한 온라인상 괴롭힘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역설적이게도 설리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JTBC2 예능 ‘악플의 밤’이었다. 진행자로 나서 악플에 시달리는 다른 연예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유명, 무명 연예인이 악플이나 우울증 등으로 세상을 등진 경우는 여럿이지만 설리의 경우는 특이점이 있다. 악플이 쏟아지고 집단 괴롭힘의 타깃이 되는 순간이, 여자 아이돌의 전형적인 역할에서 벗어날 때였다. 매 순간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아이돌 ‘감정노동’ 매뉴얼을 어길 때, 걸그룹 멤버가 사랑스런 소녀가 아니라 도발적이거나 강한 자기주장을 할 때, 어린 여자가 악플의 피해자로 위축되기보다 논란을 즐기듯 악플러들과 맞짱 뜰 때 벌어졌다. 2014년 14살 연상 가수와 공개 연애를 할 때도 악플은 설리에게 집중됐다. 여자 아이돌이 섹시한 건 좋지만, 스스로 성적 주체가 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삼촌팬’들이 진노했다.
 
설리는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 확산되는 ‘노브라’ 트렌드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내 몸, 내 옷차림의 결정권은 내게 있고, “브래지어는 건강에도 안 좋고 액세서리일 뿐”이라며 노브라 셀카를 올렸다. 인격살인에 가까운 성희롱 성 댓글이 잇따랐다. 보통은 감추고 싶어하는 이상한 표정이나 노골적으로 롤리타 콤플렉스를 연상케 하는 사진을 올리는 돌출 행동도 했다.
 
이처럼 논란을 불사하는 설리의 행동에 대해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당신들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청개구리 심리”라고 분석한 바 있다. ‘관종’을 자처하는, 한국 사회에 유례없는 ‘여성 악동’의 등장이란 얘기다. 설리가 “대중의 구미를 맞추는 대신 아무도 원치 않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보여주면서, 노브라 운동을 해온 어떤 페미니스트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권김현영)는 평도 내놨다.
 
2013년 MBC ‘라디오스타’에 나온 걸그룹 카라 멤버 강지영은 애교를 보여달라는 남성 MC 4인방의 집요한 요구에 “애교를 잘 못 부린다”고 버티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는 불성실한 방송 태도 논란으로 이어졌고, 카라의 사과로 마무리됐다. 올 초 러블리즈의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는 계속 성희롱 글을 올리는 남성 팬을 참지 못한 한 멤버의 욕설이 전파를 탔다. 역시 남성 팬 아닌 러블리즈의 태도가 비판을 받았다. 한국의 여자 아이돌이 ‘극한직업’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스스로 성적 주체이기보다는 오직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자 아이돌 문화, 조금이라도 튀는 ‘모난 돌’에겐 여지없이 철퇴를 내리는 사회의 경직성, 거기에 익명성에 기대어 ‘인터넷 타살’도 불사하는 무자비한 악플 문화. 이런 것들이 설리를 죽음으로 내몬 게 아닐까. 외신들은 일제히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논쟁적인 인물 설리”(가디언)에 주목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설리를 “페미니스트 파이터”라고 명명했고, 빌보드는 "(스타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산업에서 말을 했던 K팝 스타로, 대중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표현했다”고 보도했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스물다섯. 너무도 아까운 나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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