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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맛있어야 행복한가요? 식사의 의미를 생각하다

기자
강하라 사진 강하라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 라이프(12)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 2016)’은 미국 최고의 로비스트 이야기다.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이 지적이고 냉철하면서도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로비스트 역을 맡았다. 주인공은 패션 스타일부터 말과 태도에서 완벽한 세련됨을 보여준다. 부족함도, 아쉬울 것도 없어 보이고, 취향은 하늘 끝에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주인공도 의외의 단순한 면을 보여주는데, 바로 ‘먹는 것을 대하는 생각’이다. 영화에서 그는 자주 같은 음식을 먹는다. 습관처럼 늘 찾는 음식점에서 같은 메뉴만 선택한다. 그에게는 그 식당의 음식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허기를 채우는 집밥인 셈이다.

 
영화 '미스 슬로운'의 한 장면. 주인공 제시카 차스테인. [사진 미스 슬로운 스틸]

영화 '미스 슬로운'의 한 장면. 주인공 제시카 차스테인. [사진 미스 슬로운 스틸]

 
어느 날 그와 함께 음식점을 찾은 동료는 이곳에서 늘 같은 메뉴를 먹는다는 슬로운에게 지겹지도 않으냐고 묻는다. 슬로운은 “화장실에 가는 것이 지겨운 일이냐”라고 반문했다. 그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쾌락과 즐거움이 아니라 생명과 에너지 유지를 위한 연료의 개념이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실제로 채식 요리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비건이었다고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조커'의 주연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비건 채식을 한 할리우드 배우로 손꼽힌다.
 
식물 기반의 저탄소 배출 식사를 하면서 우리의 식탁은 통곡물과 제철 채소, 과일로 채워졌다. 고도로 가공된 식품과 식품첨가물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최대한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는 식사를 하다 보니 과거에 우리가 맛있다고 느꼈던 음식에 대한 기준과 미각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취지는 달랐으나 ‘슬로운’처럼 식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먹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니, 매일 해야 하는 반복된 일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먹는 일’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갈수록 피곤해진다. 맛있다고 정의된 세상의 수많은 음식이 있고, 많은 식당이 새롭게 생겨난다. 세상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새로운 식당과 새로운 음식을 찾도록 부추긴다. 하루 두세 끼를 평생 먹어야 하는데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우리가 쏟는 에너지가 이렇게 커야만 할까 궁금해졌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을 생각해보니 대단한 음식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먹었던 고급 식당이나 소문난 식당의 음식들이 잠깐 혀끝을 만족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영혼까지 채울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간사한 기관은 '혀'이다. 많은 사람이 음식을 탐해서 병이 들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지 못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모두 '혀'를 다스리지 못한 탓이다.
 
현미밥과 쌈 채소, 나물로 차려진 식사는 우리에게 성찬이다. [사진 심채윤]

현미밥과 쌈 채소, 나물로 차려진 식사는 우리에게 성찬이다. [사진 심채윤]

제철 사과는 지금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선물이다. 음식을 바꾸면서 자연이 주는 사과 한 알도 귀하고 감사하다. 벌레가 먹은 흔적이 있다. 벌레도 먹을 수 있는 사과라서 우리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또다시 공장 축산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우리는 식물 기반의 식사를 하면서 ‘연결’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음식을 먹는 행위’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수많은 것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돼지를 ‘더 싸게, 더 많이’ 먹기 위해 공장 축산이 존재한다. 공장 축산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가축전염병의 가장 큰 원인일 뿐 아니라 기후 위기, 토양오염, 인간의 항생제 내성과 슈퍼바이러스와도 연결돼 있다. 잔인한 살처분에 드는 비용과 축산업의 피해 보상은 모두 우리가 낸 세금에서 사용된다.
 
서구화된 식생활로 창궐한 성인병의 의료비 증가 또한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매일 세 끼의 식사를 육류와 유제품, 가공식품으로 채우면서 의료와 제약산업, 공장 축산업, 보험산업, 거대 식품기업 등에 표를 주고 있다. 우리의 소비와 한 끼의 식사는 매 순간 선택이고 이 선택은 투표와도 같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투표이자 동시에 국가와 정책, 기업에 대한 투표이기도 하다.
 
지난 4년간 식물 기반의 식사를 하고, 더 간소하게 먹기 위해 도전했다. 매일 어떻게 하면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즐겁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을 먹기 위해, 남들 다 간다는 맛집을 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끝이 없는 욕망 게임이었다. 우리는 이 게임 안에서 영원히 굶주린 약자였다. 이런 유희가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큰 즐거움일 수 있다. 그러나 끝없이 새로운 것을 향한 갈망의 쳇바퀴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서 심리적 압박과 상실감,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먹는 음식의 종류를 다시 고민하고 바꾼 도전은 우리에게 사회가 만든 욕망과 성취의 쳇바퀴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at well, Shop wisely, Learn live.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한 유기농 상점 벽에 있던 글귀다. 잘 먹고, 물건들을 현명하게 선택하고, 경험을 통해 배우는 삶은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삶과 닮았다.
 
자본 사회가 만든 쳇바퀴에서 뛰어내리고 보니 소비와 쾌락 추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나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기후 위기와 기아, 난민 문제, 동물윤리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이 바뀌자 의복과 주거환경에까지 변화가 생겼고,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소비와 여러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삶, 애쓰지 않는 삶, 지금 바로 행복할 수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추니 필요치 않은 곳에 쏟았던 에너지들이 하나씩 우리에게 돌아와 좋은 기운을 만들었다. 삶의 목표와 계획들이 바뀌었다. 건강하게 숨 쉬는 것과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간결한 삶, 행복한 삶의 정점은 욕구 게임의 마지막 판에 있는 획득 대상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우리 삶은 다른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행복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배달 제품이 아니다. 행복은 어느 지점이 정해진 목적지도 아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바로 여기, 지금 내 앞에 있는 ‘스스로 누릴 권리가 있는’ 삶 그 자체였다.
 
행복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있었다. 이전에 우리는 단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매일 살아 숨 쉬는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음식을 바꾸면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삶의 태도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만큼 굉장한 것이다.
 
쓰임 없는 물건 중 좋은 것들만 꾸려서 필요한 분들께 나눈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사는지 깨닫게 된다. 돕고, 나누고, 비울수록 우리 삶은 좋은 것들로 그 자리가 채워진다.

쓰임 없는 물건 중 좋은 것들만 꾸려서 필요한 분들께 나눈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사는지 깨닫게 된다. 돕고, 나누고, 비울수록 우리 삶은 좋은 것들로 그 자리가 채워진다.

 
타자의 고통과 희생을 최소한으로 한 식물 기반의 식사를 하면서, 우리 스스로의 행복 기반이 되는 건강상 측면도 면밀하게 살핀다. 간소하게 먹으며, 잃었던 본래의 미각을 되찾고, 자연에서 얻은 제철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먹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은 우리 모두에게 열린 삶이다. 특권이 필요치 않다. 매일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존재함만으로도 감사한 삶을 알았기에 나누고 비우며 행복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은 세상을 좀 더 쉽고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다. 이 모든 시작은 먹는 음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작가·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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