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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서울에 삽니다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작가(콜롬비아 출신)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작가(콜롬비아 출신)

이 세상에는 얼마나 수많은 택시들이 있을까? 내가 태어난 도시 보고타에는 얼마나 많은 택시가 있으며, 6년째 살고있는 이곳 서울에는 또 얼마나 많은 택시가 있을까? 이는 마치 바다에서 물고기를 세는 격으로 전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으니, 일단 서울에만 3만 대 정도가 있다고 치자. 이 가운데 분명한 것은, 2013년 어느 날 서울에서 올라탄 택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택시였다는 사실이다. 그 경험이 하도 묘해서 수첩에 기록해 놓았는데, 이 기록은 시간이 지나 나의 책 『한국에 삽니다』(은행나무, 2018)의 에피소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되었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택시기사가 건네준 공책 한 권
승객 글 보며 삶의 순수성 느껴
서울살이 6년, 내겐 거대한 평온

“택시에 올라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안경을 쓴 중년의 기사가 우리에게 공책 한 권을 건넸다. 아내는 순간,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가 재빠르게 설명하길, 자신의 승객들이 직접 글을 남기는 공책이라고 했다. 내가 무언가를 쓰는 동안 수정은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노트를 하나 읽었다. 가장 처음 글은 2010년에 쓰인 글이었다. 목적지까지는 15분이 걸렸고, 그 시간 내내 공책을 읽던 아내가 (보통은 멀미 때문에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 눈시울을 붉혔다. 몇 편의 글을 읽었는데 그중에는 바람에 관한 짧은 시도 한 편 포함되어 있었다. 기사가 직접 쓴 것이었다. 명료하면서도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는 않은 시라고 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글 대부분이 마음속으로부터의 고백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이들 모두가 맺힌 감정을 터놓기 위해 이 택시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혼자다. 아내는 거의 집에 없다. 아들은 나를 미워한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번째 만나러 가는 길이다. 너무도 설렌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 가장 멋진 여자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삶일 것이다. 삶의 순수한 상태. 나도 따라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공책에 내가 썼던 글이 무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썼던 언어가 스페인어였는지 영어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내 이름은 한국어로 썼던가? 겨우 15분 만에 일어났던 일들이라 사실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보고타를 떠나 처음 한국 땅을 밟았던 해도 벌써 10년이 넘었고, 본격적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는 6년이 되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고향과는 다른 지도가 자리를 잡았고 식습관도 달라졌다. 보고타와는 다른 방식으로 버스를 타고, 다른 방식으로 술을 마시며, 다른 방식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때는 이러한 변화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대한 평온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 것이 무기력으로 망가져 가던 그곳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에 대한 평온함. 그곳에서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지워나갔지만, 이곳의 다른 얼굴로 대체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이제는 친구 없이 혼자 남게 되었다. 불안하고 외롭지만, 예전에 느꼈던 불안감과 외로움과는 다르다. 2016년에 첫 쇄를 찍었던 나의 책에는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던 첫해인 2013년 내가 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KBS 월드 라디오의 뉴스 진행자로, 한국문학번역원의 문학 번역상 심사위원으로, 한 독립영화의 조연으로 살았던 날들이다. 문득, 서울대학교의 한 특강에서 수줍음을 타던 한 학생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 떠오른다. “성인영화에 출연했던 경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있으실까요?” 사실 그 영화는 성인물이 아니라 독립영화였는데. 초저예산의 독립영화. 이런 오해들은 아직도 나를 실소하게 하며, 이미 출판이 끝난 책을 계속 뒤적이게 만든다. 그리고 책을 뒤적일 때마다 멈추는 곳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택시 에피소드다.
 
이따금 충무로에서, 홍대에서, 을지로에서, 이태원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탈 때마다 2013년에 만났던 그 택시에 올라타 공책에 무언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에서 보낸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택시에서 오래된 트로트가 나오는 동안 이런 문장을 그 공책에 남겨 두고 싶다. “서울의 또 다른 밤이 지나가고 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해 준 이 도시,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이 도시 말이다.”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작가(콜롬비아 출신)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멘도사=콜롬비아 로스안데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2007년 첫 장편소설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를 발표했고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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