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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헨리도 부럽지 않아요,색소폰 버스킹에 나선 그들

기자
홍미옥 사진 홍미옥

[더, 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37)

꿈만 꾸는 인생은 가라

 
10년도 더 전의 영화 '즐거운 인생'의 카피 문구다. 꿀꿀하고 구차한 인생을 달래줄 뭔가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재결성된 록밴드는 그 팀 명인 '활화산'처럼 그들의 인생을 터뜨렸다. 뭐 그렇다고 아파트 평수가 늘어나거나 사는 게 나아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밴드 활동은 그들의 인생을 '비긴 어게인'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이젠 반려악기!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악기 활동이 인생 2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색소폰 동호회 회원의 행신역 연주. 갤럭시탭s3 사용 아트레이지앱. [그림 홍미옥]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악기 활동이 인생 2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색소폰 동호회 회원의 행신역 연주. 갤럭시탭s3 사용 아트레이지앱. [그림 홍미옥]

 
얼마 전 고양시 행신역에서 열린 색소폰 공연을 보았다.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거리공연이다. 기차역 앞마당에는 작은 무대가 세워졌다. 뒤로는 끊임없이 기차가 신호를 울리며 지나가고 있다. 최근 ktx 기차가 정차하게 된 이곳은 오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듯 보였다. 때마침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무대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화려한 무대도 아니고 유명인의 공연도 아니었지만, 가을밤의 선율은 그들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고양 색소폰동호회'의 소박하지만 멋진 공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귀에 익은 가요와 팝이 멋지고도 구슬픈 색소폰의 음색에 실려 감성을 자극했다.
 
관객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백발의 어르신도 있고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 서류가방을 든 퇴근길의 직장인까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흥겨운 노래부터 애절한 노래까지 각자의 인생이 묻어나는 연주가 역 광장에 울려 퍼졌다. 가을밤은 색소폰의 선율과 함께 깊어가는 중이다.
 
아마추어 음악동호회로 시작했지만, 악기연주로 자선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고양 색소폰동호회의 단체 합주장면. [사진 홍미옥]

아마추어 음악동호회로 시작했지만, 악기연주로 자선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고양 색소폰동호회의 단체 합주장면. [사진 홍미옥]

 
요즘은 반려동물 혹은 식물, 반려도서가 친구가 되고 의지가 되는 세상이다. 이젠 '반려악기'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하기는 정성을 기울이면 아름다운 선율로 보답하니 어찌 반려의 대열에 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도무지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 게 반려악기의 장점인 듯하다.
 
동네 주민센터나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드럼, 기타, 대금 등 악기강좌가 넘쳐난다. 내 손길이 닿아야만 대답을 하는 악기이니만큼 가족과도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저 작은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되어 반려악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인생 2막은 당당한 '인싸'의 삶을!

퇴직자, 자영업자, 은퇴를 앞둔 직장인, 가정주부 등이 틈틈이 시간을 마련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함께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한 주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곤 한다. [사진 홍미옥]

퇴직자, 자영업자, 은퇴를 앞둔 직장인, 가정주부 등이 틈틈이 시간을 마련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함께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한 주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곤 한다. [사진 홍미옥]

 
누구 엄마, 학교 선생님, 누구 할머니, 아무개 아빠 혹은 가게 사장님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또 다른 호칭은 '연주자'다. 그것도 중장년층의 로망을 자극하는 색소폰 연주자다. 듣기만 해도 부러운 이름이다. 조명 아래 무대 위엔 자줏빛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일반인은 평생을 가도 입어볼 기회도 없을 의상이다. 밤하늘엔 별도 반짝이고 드레스를 장식한 스팽클도 반짝거렸다. 참 아름다웠다.
 
사실 동호회 일원 대부분은 평균연령 60세의 인생 후반을 맞이한 사람들이다. 황혼 육아에 시달리는 젊은 할머니, 퇴직을 앞둔 직장인, 퇴직 후 여가를 즐기는 이 등이다. 직장인들로 말하면 고단한 심신을 악기연습으로 풀곤 한다고 한다. 순수한 아마추어 동호회로 시작했지만, 길거리 공연 등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취미는 생활이 되고 인생의 즐거움이 되었다고 한다. 자비를 들여 하는 공연이지만 그 뿌듯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음이다.
 
공연이 무르익자 흥에 겨워 춤을 추는 관객들도 있고 “오빠”를 외치며 환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쯤 되면 길거리공연인 인기음악프로 '비긴 어게인'이 부럽지 않다. 내가 바로 '박정현'이며 '헨리'라 해도 이상치 않다. 관객들의 환호도 심상찮다. 그야말로 당당한 이 시대의 인싸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공연이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출근을 준비하거나 손주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밤 아홉시가 훨씬 넘어서야 공연은 끝이 났다. 관객도 연주자도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다. 연주에, 환호에, 서로가 위로받은 표정이다.
 
인생은 언제나 준비가 필요한 법이라고 한다. 그것도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게 반려동물이건 식물이건 반려악기이건! 그날 밤 기차역엔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는 열차로 가득했다. 꿈꿔왔던 인생을 향해 떠나는 우리에게도 살짝 속삭여본다. '꿈만 꾸는 인생은 가라, 내 인생이여 비긴 어게인!'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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