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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한글날, 세종이 묻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조선은 ‘문’(文)의 국가였다. ‘문이 도를 꿰는 수단’이든, ‘도를 싣는 그릇’이든, 문의 중심에는 항상 천명으로서 도(道)가 자리를 잡았다. 도의 영역 밖에 내쳐진 인민들을 재도지문(載道之文)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글과 말을 일치시킨 훈민정음이었다. 한자에 담긴 성리가 소리를 타고 내면에 인지되는 것, 역으로 추상적 사고가 운(韻)을 통해 글로 표현되는 언문일치의 세계에서 인민은 비로소 도덕적 주체로 거듭났다. ‘훈민정음 반포문’을 백번 읽어도 전율하는 까닭이다.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핧배 이셔도 마침내 제 뜻을 시러펴디 몯핧노미 하니라. 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너겨 새로 스믈여듧자를 맹가노니.’
 

백성을 도덕 세계로 끈 훈민정음
권리를 외쳐도 예의를 지킨 민중
민주 광장은 도덕적 통제가 필수
세종이 묻는다, 민의 혹은 아집?

군주가 백성을 ‘어엿비너겼다.’ 그것도 573년 전에! 그래서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성운(聲韻)의 방법을 집현전 학자와 머리를 맞대고 고안했다. 스물여덟 자로 무한히 변주되는 음성문자가 창제되자 인민은 ‘제 뜻을 실어 펴는’ 표현적 주체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한글을 애용했던 부류는 뜻밖에 사대부였다. 마음속 감정과 회한을 한자로 흥얼거릴 수는 없었다. 정철의 4대 가사가 그렇게 태어났고, 읊조리면 술 한잔 마셔야 하는 ‘장진주사’가 탄생했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 앞바다를 술 취해 노닐다 조선 최고의 가사를 읊었다. “기러기 떴는 밖에 못 보던 뫼 뵈는구나,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인민들도 뒤질세라 속내를 실어냈다. 임을 여윈 비감을 ‘매에 쫓긴 까투리’에 견주고, ‘물결 높고 컴컴한 바다 한가운데 수적을 만난 도사공’에 감정이입하는 엄살 섞인 문장이 가능해졌다 (청구영언). 천지사방 뻗은 표현의 생장은 급기야 저항의식에 불을 댕겼다. 장살로 죽은 민란 주동자를 사무쳐하는 항쟁가가 문자화되자 국문은 민중적 권리의식을 재촉하는 공론의 무기로 치달았다. 그리곤 마침내 동학 접주 전봉준이 쓴 최고의 격문 ‘무장포고문’에 이르렀다.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일지라도...보국안민으로써 생사의 맹세를 하노니...경동하지 말고...승평일월을 빌고 임금의 덕화를 입게 된다면 천만다행이겠노라.” 한양 진격을 알리는 포고문일지라도 예악과 도의의 품격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사유가 음을 얻어 예(禮)가 되고, 예는 안이락(安以樂)의 근본이고, 악(樂)은 정치로 통하는 세종의 소망이자 훈민정음의 철학에 화답한 때문이었다.
 
대명천지 오늘날, 광장의 시민은 그들의 진정한 후손인가? 민주시대의 통치자는 위민(爲民), 여민(與民)을 결단의 중심에 놓고 있는가? 세종은 심정이 불편하실 게다. 10월 9일 한글날, 광화문광장은 여전히 항의 시민들로 들끓고 소란했다. 그 전에는 친북 성향 대학생단체가 대왕상을 기습 점거했다. 극단적 표현은 다행히 자취를 감췄지만 한쪽에선 욕설과 비방이 여전했다. ‘문재인 하야 국민재판’ 구호가 신문광고란에 등장했는데 ‘한미동맹 파괴, 국군 무장해제’가 이유였다. 교양시민이 할 짓은 아니었다. 통치자의 측근 집착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드물다 해도 그렇다. 바람이 거칠었던 어제 서초동은 다시 지지와 항의가 엇갈렸다. 원색적 표현은 잦아들었지만 단호한 구호 아래에 치열한 격돌을 예고하는 진영논리가 번득였다.
 
두어 달 광장을 지켜본 세종대왕은 뭐라 하실까. 개명천지 후손들, 세 만회를 노리는 정치인과 언행불일치에 격분한 일반 시민들이 뱉는 비루하고 천박한 말들이 현수막과 손팻말로 인화되는 풍경에 훈민정음을 거둬들이고 싶으실까. 빨갱이와 기생충을 소리치는 정치인,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악쓰는 연사들, ‘조폭의 단합대회’ ‘마지막 발악’ 등 잡배들의 야만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여야 지도자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터에 아예 지그시 눈과 귀를 닫으실 수도 있겠다. 비방과 욕설이 ‘진영 방어의 논리’로 치부되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역량과 품격을 훼손하는 불행한 징후들이 확산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라 해서 야심과 탐욕에 면역된 것도 아닌 터에, 허약한 한국 정치에는 더 위험하다. 민주주의의 부식(腐蝕)이 일어난다.
 
치우친 정보로 집단 대치선을 부추기는 언론과 동원력이 큰 조직들의 함성이 반드시 민의를 올곧게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입말(言)과 글말(文)의 무작위적 배설이 지적, 도덕적 통제를 거치지 않는다면, 광장은 대통령이 말하듯 온전한 직접민주주의의 무대가 아니다. 박근혜의 불행은 ‘배신의 정치’라는 거친 말로부터 비롯됐다. 작금의 사태가 ‘국론 분열’은 아니며 외려 직접민주주의의 한국적 형태라고 판정하는 시선에서는 어떤 궁핍한 자기비호가 서려 있는가.
 
세종은 새로운 결세인 공법(貢法) 시행을 여론조사에 붙였다. 신료의 찬반이 엇갈리자 인민의 뜻을 물은 것이다.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는 것은 민의를 결단의 중심에 놓는 것을 의미한다. 자의와 권력욕에 대한 도덕적 통제다. 한글날, 세종이 북악을 향해 돌아앉으시며 묻는다. 조국 장관을 끝내 고집함과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것은 그리도 대등한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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