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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 가락에 맞춰 권투…이상한데 슬프고 재미있다”

동틀 녘 바닷가. 날렵한 몸의 청년이 소리꾼의 가락에 맞춰 주먹을 휘날린다. 구성진 전통 장단에 어우러진 권투 동작, 바위 위의 장구 치는 고수까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조합이 의외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어울린다.
 

영화 ‘판소리 복서’ 주연 엄태구
뇌세포 손상 복서의 마지막 도전기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판소리 복서’는 펀치드렁크(뇌세포손상증) 증세를 보이는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가 어릴 적 소리꾼 친구와 꿈꿨던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경쾌하게 펼쳐지는 초현실적 장면에서 주성치표 ‘병맛’ 코미디 감성도 묻어난다.
 
영화 ‘밀정’의 일본경찰 하시모토, ‘택시운전사’의 검문소 중사 등 강하고 묵직한 역할을 도맡아온 배우 엄태구(36)가 착하고 열정적인 병구 역에 나섰다.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원작 단편에 완전 반했다”며 “이상한데, 슬프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단편은 정혁기 감독이 2014년 당시 주연을 맡은 조현철 감독과 공동 연출한 ‘뎀프시롤:참회록’으로, 그해 미쟝센단편영화제 등에서 독특한 스타일이 화제가 됐다. 정 감독이 이를 확장시켜 이번에 장편 데뷔했다.
 
‘판소리 복서’에서 뇌손상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병구를 연기하는 엄태구. [사진 CGV아트하우스]

‘판소리 복서’에서 뇌손상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병구를 연기하는 엄태구. [사진 CGV아트하우스]

그가 사채업자로 분한 ‘차이나타운’에서 함께한 김혜수가 그를 두고 “얼굴선이 굵은데 반해 눈은 무척 촉촉하고 사슴 같다”고 했던가. 이번 영화의 병구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촉망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순간 실수로 프로선수에 제명된 지금 그는 박 관장(김희원)네 낡은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을 도맡는 신세다. 어수룩한 성격에 말투도 앳되다.
 
‘밀정’ 악역 인상과는 딴판인데.
“생각보다 순하게 생겼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웃음). 어수룩한 역할은 독립·단편영화에선 종종 했는데, 이번엔 펀치드렁크라는 병을 진중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그런 말투가 나왔다. 증상 중에 말이 어눌해진다는 게 있었다.”
 
판소리에 맞춘 동작은 어떻게 고안했나.
“복싱 기본기를 다진 후에 장구 장단에 맞춰 이 동작, 저 동작 해보며 만들었다. 형인 엄태화 감독과 영화 ‘잉투기’를 하며 킥복싱을 처음 배웠지만, 본격적인 복싱 훈련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치님과 일대일로 두세 달, 하루 다섯 시간 기본기를 다졌다. 프로선수들이 봐도 이질감이 없어야 관객들도 이 (이야기) 안에 초대가 될 것 같았다.”
 
배경에 흐르는 판소리는 ‘수궁가’를 토대로 글자 수에 맞춰 정 감독이 개사했다. 영화 ‘곡성’ ‘부산행’의 장영규(어어부밴드) 음악감독, 젊은 소리꾼 안이호·권송희도 걸출한 음색을 보탰다.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은.
“교회 오프닝 장면. 카메라는 가만히 있고 희원 선배님과 둘이 3~4분 자유롭게 놀았다. 가장 좋아하는 악역이 ‘아저씨’의 희원 선배님인데 몇 개 대사만 갖고 같이 호흡 맞춰본 게 배우로서 행운이었다. 병구가 박 관장한테 복싱 복귀 허락받고 울컥 눈 가리며 혼자 흐뭇해하는 건 내 애드리브였다.”
 
영화엔 아무도 찾지 않는 낡은 체육관, 시골 예배당, 필름 사진관 등 병구의 기억처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담았다.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이런 대사처럼 병구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그는 “결말은 보는 분마다 해석이 다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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