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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열리면 1만명 몰린다, 대화하는 시장 ‘마르쉐@’

서울 성동구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에서는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시장이 열린다. ‘채소시장’이라는 이름답게 지천이 채소다. 다만 일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채소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포장재가 없고 바코드가 없다. 플라스틱 아닌, 나무 바구니 위에 소담스럽게 담긴 채소는 아름답고 보기 좋다. 토종 오이, 쑥부쟁이, 여주, 사과대추 등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채소도 많다. 무엇보다 앞에 놓인 채소들을 직접 기른 농부들이 직접 나와 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가 생긴다. 간단하게는 채소의 정체부터, 어떻게 기른 채소인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보관은 어떻게 하는지 등이 대화거리다. 바코드와의 대화가 아니라, 내가 먹는 채소를 직접 기른 농부와 대화하며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는 곳, 바로 ‘마르쉐@(이하 마르쉐)’다.  
 

서울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들④
‘마르쉐@’ 시장 기획자 이보은 상임 이사 인터뷰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1차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마르쉐'. 서울 곳곳에서 매달 3번씩 열리는 '마르쉐'에서는 다양한 품종의 농산물을 직접 기른 농부와 대화하며 구입할 수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1차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마르쉐'. 서울 곳곳에서 매달 3번씩 열리는 '마르쉐'에서는 다양한 품종의 농산물을 직접 기른 농부와 대화하며 구입할 수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marché)’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의미다. ‘마르쉐’ 뒤에는 장소를 의미하는 기호(@)가 붙는다. 한 곳에서만 열리는 시장이 아니란 의미다. 현재 정기 시장으로는 매달 두 번째 일요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르쉐 농부시장@혜화’가,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성수동 성수연방에서 ‘마르쉐 채소시장@성수’가, 매달 네 번째 화요일 합정동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에서 ‘마르쉐 채소시장@합정’이 열린다. 물론 이 밖에도 단발성으로 국립현대미술관마당 등에서 이벤트 시장을 열어왔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마르쉐 농부시장@혜화'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매달 두 번째 토요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마르쉐 농부시장@혜화'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성수와 합정에서 열리는 ‘채소시장’이 약 20여개 채소 농가 위주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시장이라면, 혜화에서 열리는 ‘농부시장’은 매회 약 100여 곳의 판매자가 출동하는 꽤 큰 규모의 시장이다. 방문객도 적지 않다. 채소시장에는 약 1000여 명, 농부시장에는 1만여 명이 몰린다. 마르쉐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7년째 열리는 꽤 장수한 시장이다.  
 
명동성당 지하에서 열린 '마르쉐@명동.' 정기적으로 열리는 지역의 시장 외에 단발적으로 열리기도 한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명동성당 지하에서 열린 '마르쉐@명동.' 정기적으로 열리는 지역의 시장 외에 단발적으로 열리기도 한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의 가장 큰 특징은 소규모 농가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이 기른 작물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생산하는 소규모 가족 농가를 비롯해 도시농부, 귀촌 농부, 청년 농부들이 대부분이다. 토마토면 토마토, 사과면 사과 한 가지 품종을 대량으로 기르지 않다 보니 어떤 시장보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물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지난 10월 5일 서울 성수동 성수연방에서 열린 '채소시장 마르쉐@성수'. 농부가 알려주는 제철 채소에 대한 안내가 인상적이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지난 10월 5일 서울 성수동 성수연방에서 열린 '채소시장 마르쉐@성수'. 농부가 알려주는 제철 채소에 대한 안내가 인상적이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30여명 모여 만든 첫 시장, 열자마자 ‘된다’ 확신  

사단법인 농부시장 마르쉐의 상임이사이자 마르쉐를 만든 이보은 대표. 김수향 대표, 송성희 대표가 함께 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사단법인 농부시장 마르쉐의 상임이사이자 마르쉐를 만든 이보은 대표. 김수향 대표, 송성희 대표가 함께 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의 시작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생협과 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던 이보은 대표는 “환경과 건강, 특히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11년 당시 옥상에서 텃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던 중 홍대에서 비건 카페를 운영하던 ‘수카라’ 김수향 대표와 ‘십년연구소’ 송성희 대표가 의기투합했다. 이보은 대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일을 모색하던 시기”였다며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행복한 삶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먹거리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당시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공포 등이 맞물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도시 소비자들도 충분히 정보를 알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내가 먹는 음식은 어디의 누가 어떻게 재배했고 만들었나.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마르쉐를 만들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내가 먹는 음식은 어디의 누가 어떻게 재배했고 만들었나.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마르쉐를 만들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 2012년 10월 지금의 농부시장이 열리는 혜화에서 첫 시장이 열렸다. 첫 시장은 30여명 정도의 판매자로 규모는 크지 않았다. 농사를 짓거나 요리에 관심있는 친구들, 새로운 시장에 관심있는 주변의 친구들이 함께했다. 친구가 친구를 부르고,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부르면서 시장이 넓어졌다. 시장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원하는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최소한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바로 ‘대화할 수 있는 시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장’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 데 만나 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것이 마르쉐의 최대 강점이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 데 만나 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것이 마르쉐의 최대 강점이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최소한의 합의였지만 '대화'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도 했다. 이보은 대표는 “대화를 방해하거나 대화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최소화했다”고 했다. 예를들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일회용품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현수막이나 배너, 소모품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물건을 놓을 바구니는 손님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농산물이 돋보일 수 있도록 캐노피나 파라솔은 흰색으로만 썼다. 이보은 대표는 “첫 시장을 열자마자 ‘이 시장은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마르쉐에서는 일회용품과 소모품을 줄이고 다회용 그릇을 사용하는 손님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에서는 일회용품과 소모품을 줄이고 다회용 그릇을 사용하는 손님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 만나는 도시 시장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약 2년간 매달 시장을 열면서 그야말로 ‘뜨거운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첫 2년간은 판매자들끼리 소통이 활발했다. 이보은 대표는 “농부가 토종 쌀을 가져오면 이를 활용해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등장하고, 요리사들을 생각해 물건을 만드는 수공예가가 찾아왔다”며 “이때만큼은 시장이라기보다 서로서로 가르치는 학교였다”고 했다.  
 
마르쉐가 파한 후 후 판매자들이 모여 리뷰 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가 파한 후 후 판매자들이 모여 리뷰 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 판매자들은 매 시장이 끝나면 작은 리뷰 모임을 갖는다. 또 매년 2회씩 출점자 전체 모임을 열어 마르쉐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한다. 2014년 여름 모임에서 비로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농부시장’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 대표는 “100명의 농부가 있으면 100가지 이야기가 있다”며 “농(農)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농부시장’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달마다 테마를 정해 시장을 열기도 했다. 3월에는 모든 농부가 씨앗을 들고나오는 ‘씨앗장’이, 4월에는 지천으로 열리는 나물을 가져와 판매하는 ‘풀장’이, 7월에는 토종 밀부터 참밀, 금강 밀 등 농가마다 다르게 재배하는 다양한 밀을 보여주는 ‘햇밀장’이 열렸다. 11월에는 이어가는 씨앗의 맛을 선보이는 '토종장'을 매년 열어간다. 
 
4월에는 지천에 피는 나물와 풀을 소개하는 '풀장'이 열린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4월에는 지천에 피는 나물와 풀을 소개하는 '풀장'이 열린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시장이 열릴수록 참여하는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세 번 열리는 플랫폼 덕에 소농이지만 제대로 농사짓는 농가도 늘어나고, 생산력도 늘고, 마르쉐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갖는 농부들도 생겨났다. ‘준혁이네 농장’이 대표적이다. 처음 마르쉐에서 작은 농부로 서툴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밍글스’‘권숙수’ 등 서울의 내로라하는 쉐프들에게 재료를 공급하는 농부가 됐다. 요리사도 새로운 재료,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음식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마르쉐에 참여한 요리사들이 다양한 품종의 밀을 활용해 다양한 맛의 빵을 만들어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에 참여한 요리사들이 다양한 품종의 밀을 활용해 다양한 맛의 빵을 만들어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소비자들도 빠르게 변화했다. 장바구니를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지양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던 처음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레 장바구니와 다회용 그릇을 들고 다니며 종이봉투를 모아오는 손님들이 늘었다. 이보은 대표는 “마르쉐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선한 생각들이 발현되는 공간이 된 것”이라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플랫폼이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그는 또 “시장에선 다양한 농산물을 직접 만져보면서 계절을 느끼고 이야기도 나누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한다”며 “모바일로 모든 걸 다 살 수 있는 시대지만 그것만으론 삶의 근본적 허기는 채우기 어렵다”고 했다.  
 
마르쉐에서는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직접 만져보고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에서는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직접 만져보고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일상적 장보기, 상설 시장 실험 중

어려움도 있다. 역시 장소 문제다. 처음 6개월 정도 장소를 고민하다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앞마당에 초대를 받았고, 그 덕에 마로니에 공원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7년이 된 지금도 매번 시장 개최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한다. 소규모 농가들을 위한 경제적 자립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도 과제다. 영리 목적이 아닌 시장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기관과 협력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마르쉐는 '마르쉐친구들'의 주도 하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꾸려진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는 '마르쉐친구들'의 주도 하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꾸려진다. [사진 농부시장 마르쉐]

 
기후변화도 위기다. 미세 먼지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졌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가을에는 장마도 생겼다. 그래서 요즘에는 야외가 아닌 실내 시장을 고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어떻게 하면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시장을 열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며 “최근에는 일상의 장보기가 가능하도록 보다 자주 열리는 시장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성수동에서 열리는 채소시장이 실험 모델이다. 실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일정한 장소에서 비교적 작은 규모로 매주 열리는 시장을 목표로 한다. 자신의 손으로 장을 보고, 집밥을 즐기는 이들이 신선한 재료를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다. 이 대표는 “‘마르쉐@’ 뒤에 보다 일상적인 공간이 붙었으면 좋겠다”며 “농부들과 도시 소비자들, 요리인들이 도시 곳곳에서 만나고 대화하는 작은 시장을 꿈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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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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