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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관 기어 탈출···옆엔 아가씨도 있었는데, 이춘재 짓 같다"

1987년 1월 화성연쇄살인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987년 1월 화성연쇄살인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호리호리한 남자가 갑자기 목덜미를 확 잡더니 공사장 하수관에 밀어 넣었어요.”
 
1991년 1월 26일 오후 8시50분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택지개발공사장. 약국에 들러 집으로 향하던 김모(60·당시 32세)씨는 낯선 남성에 의해 2m 아래 공사장 웅덩이에 고꾸라졌다. 이 남성은 웅덩이에 빠진 김씨의 바지를 벗겨 머리에 씌웠다. 스타킹 등으로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남성이 한눈을 판 사이 콘크리트 하수관을 기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김씨는 “어렴풋하지만 최근 화성사건 용의자로 조사를 받는 이춘재와 그 남성의 얼굴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3돈짜리 금반지를 빼앗겼지만, 범행 현장을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탈출한 공사장서 이튿날 방직공장 10대 숨진 채 발견

공교롭게도 김씨가 강도를 당한 이튿날 근처에서 방직공장 직원이던 박모(당시 17세)양이 1.5m 깊이로 매설된 콘크리트 하수관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양이 전날 오후 8시30분쯤 누군가에 의해 공사장 하수관에 끌려가 살해된 것으로 봤다. 범인은 박양의 양말과 속옷 등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타킹으로 양손과 양발을 묶었다.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화성 사건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목 졸려 숨진 것이다.

 
화성연쇄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는 최근 박양 사건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는 화성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과 30건의 강간·강간 미수 사건을 경찰에 자백했다. 범행 수법으로 미뤄 김씨의 강도 사건 역시 이춘재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욕설, 피해자 옷가지 이용 결박 "이춘재 짓 같다"  

김씨는 지난 1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한 범행이 이춘재의 짓일 거라고 추측했다. 김씨는 “당시 약국에서 약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맞은 편에서 달을 등지고 한 남성이 걸어왔다”며 “가로등이 없어서 얼굴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는데 갸름하고 예쁘장했다. 체구는 작고 마른 편이었다”고 말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 남성은 김씨의 목을 잡아채 공사장 웅덩이에 처넣었다. 김씨는 “진흙탕 바닥에 내팽개치다시피 던져져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 남성이 ‘ⅩX년아. 가만히 있어. 죽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욕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9ㆍ7살짜리 딸과 아들이 있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이 남성은 김씨의 바지를 벗겨 머리에 씌우더니, 바지 끈을 쭉 빼서 양손을 결박했다. 이후 스타킹을 벗겨 발까지 묶었다. 김씨가 “가진 게 반지밖에 없으니 가져가라”고 하자 이 남성은 결박한 손을 비집고 반지를 뺐다고 한다.
 
김씨는 “그대로 생매장당하는 줄 알고 겁에 질려 숨죽여 기다렸다”며 “바로 옆에 꾸물거리는 물체가 몸에 닿았는데, 아가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천에 덮인 채 신음을 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여자일까 싶어서 나지막하게 ‘어느 집 사람이여’라고 물었더니 입에 뭐가 잔뜩 들어있었는지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고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연합뉴스]

 
김씨는 범행 현장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김씨는 “몸을 꽁꽁 묶더니 그 남성이 망을 보러간건지 웅덩이를 벗어나 길 위로 올라갔다”며 “발을 흔들어 스타킹을 풀고 머리에 씌운 바지를 벗겼다”고 했다. 김씨는 공사장에 매설된 150m 길이 하수관을 기어 달아났다. 그는 “하수관 사이로 달빛이 보이길래 무작정 앞만 보고 기어갔다. 도망가는 내내 그 남성이 하수관 위로 따라올까 봐 무서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 초동 수사의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공사장을 내달려 큰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탄 뒤 ‘강도를 당했다. 사람 하나가 더 잡혀있다’며 당시 복대파출소에 신고했지만, 하수관에 있던 여성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며 “경찰관들이 손전등으로 하수관을 몇번 훑어보더니 조서를 작성하자며 파출소로 다시 데려갔다. 그때 공사장을 꼼꼼히 수색했다면 그 여성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목격한 여성이 숨진 박양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굳은살 하나 없는 부드러운 손…" 

경찰은 최근 김씨를 만나 당시 범행 상황에 관해 물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 남성의 손이 굳은살 하나 없이 부드러웠다. 손과 발을 묶을 때는 결박되는지 모를 정도로 능숙했다. 이춘재가 한 짓인 것 같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은 91년 가경동 박양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박모(당시 19세)군을 특정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박군이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그해 6월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은 화성연쇄살인 사건 전후 수원과 청주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 등을 재조사하고 있다.
 
청주·수원=최종권·최모란·심석용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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