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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길 양 쪽엔 시궁창이 있을 뿐이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불황에도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회계감사관이 놓친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경기가 호황이어서 주머니가 두둑할 땐 작은 구멍으로 동전 몇 닢 새나가는 정도는 신경도 안쓰지만, 불황으로 주머니가 비면 꼼꼼히 살펴 터진 곳을 꿰매게 된다는 말이다. 미국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의 말인데 생각할수록 명언이다. 경제뿐아니라 세상만사가 그렇다. 국민은 반으로 갈리고 국가는 길 잃고 표류하고 있는 오늘 이 땅에서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보수 몰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가짜 진보 드러나 다시 평평해져
분노는 상대 아닌 가짜를 향하고
좌우가 길 가운데서 함께 달려야

얼마 전 우리는 속절없이 무너진 보수의 잔해속에서야 비로소 속 빈 얼치기 우파들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었다. 무너진 경제를 살려줄 걸로 기대했던 대통령은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이었고, 흔들리는 보수를 바로 세워주길 바랐던 대통령은 자신을 왕조시대의 공주로 착각하는 얼뜨기였다.
 
그런 사이비 지도자 옆에서 아첨으로 눈 가리고 술수로 기생하며, 국민은 안중에 없고 패거리의 이익만 골몰하는 정상배들의 맨얼굴들이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반성 없이 재기만 도모하는 모리배들의 후안무치를 생생히 봤다.
 
보수의 자멸로 언감생심 꿈도 못 꿨던 권력을 거저 주웠던 진보도 찬란한 호황으로 시작했다. 인상 좋은 대통령이 ‘정의’를 외치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약속할 때 사람들은 감동했다.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표를 뒤따라가 안아주고, 김정은과 판문점 벤치에서 격의 없이 회담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캠코더 인사’ 때 갸우뚱했던 고개는 ‘조국 인사’로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은 그저 말 뿐이었고, 행동은 모두 허상이었던 거다.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던 호언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고 검찰총장을 핍박하면서 누더기가 됐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겠다”던 약속도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입만 정의로왔던 조국을 끌어안음으로써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수 없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아도 되며 결과는 당연히 정의롭지 않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사정이 급하니 패거리들이 떨쳐 일어섰다. 처음에 놓쳤던 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회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진보와는 거리가 먼 뜨내기 좌파들의 실체 말이다. 범죄 집단을 방불케하는 조국 가족의 말과 행동은 재론할 가치도 없다. (그들은 좌파도 아닌 기득권층일 뿐이다.)
 
선데이 칼럼 10/12

선데이 칼럼 10/12

‘싸가지 없는 진보’의 원조인 인물이 늘어놓는 궤변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울고 갈 정도다.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유투브 언론인이라 ‘취재’를 위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주장, 조국 부인이 검찰 압수수색 전에 연구실 컴퓨터를 빼돌린 것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궤변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말이다. 이런 사람의 말 한마디에 자기 후배기자들을 모조리 부인한 공영방송의 사장의 가벼움도 참으로 참기 어렵다.
 
“검찰총장으로 윤석열만한 인물이 없다”고 치켜세우던 여당은 윤 총장의 칼끝이 자기 편을 겨누자 그를 바로 적폐로 몰았다. 그들이 인사 청문회 때 보여준 ‘조국 일병 구하기’는 그야말로 어이없다 못해 안타깝기까지 했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 드라마였다. “내로남불도 유분수”라는 야당 비판에 여당 의원이 “내가 조국이냐”고 발끈하는 코미디이기도 했다. ‘데스노트’로 재미를 보던 정의당은 정의를 언제든 이익과 바꿔먹을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정의없당’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차라리 잘됐다. 속은 검고 입만 살아있는 ‘조국 좌파’들의 민낯이 여실히 까발려졌으니 말이다. 그런 사이비 좌파가 전 정권에서 국정을 농단했던 사이비 우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영원히 원상을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았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제 도로 평평해졌으니 말이다.
 
갤브레이스는 이어 말한다. “불황은 통렬할수록 좋다. 하지만 길 필요는 없다.” 지금은 통렬의 순간이다. 조국이 이 정권 내내 장관을 할지, 가소롭지만 대선 후보까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그저 회계감사관이 놓쳤던 부정이 더 큰 실체를 드러내는 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이 길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길의 양쪽 끝으로 달려봤다. 가운데는 뭔가 밋밋하고 양끝에 보다 멋진 풍경이 있을 듯 했는데 알고보니 양쪽 모두 똑같은 하수도밖에 없었던 거다. 이제 가운데로 올라올 시간이다. 가장 평평하고 잘 닦인 길 한복판으로 달려야 할 시간이다. 겉과 속이 달랐던 가짜 보수, 사기 진보는 양쪽 시궁창 그들 자리에 쳐 박아두고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가 가운데로 와야 한다.
 
궁극의 목표가 같은데 못할 게 없다. 분노는 상대편이 아니라 내 몸에 달라붙어 단물만 빨던 가짜들에게 향해야 한다. 진짜 진보와 진짜 보수가 경쟁할 건 경쟁하고 협조할 건 협조하면서 함께 달려야 한다. 발목 잡던 기생충들을 떨쳐버린 가벼워진 몸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드는 진정한 길이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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