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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고문" "그런 적 없다" 가혹행위 공방 번진 화성8차

화성 연쇄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는 이춘재(56)의 자백에 이어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윤모(52)씨도 "당시 고문으로 허위 자백했다"고 밝힘에 따라 당시 수사가 왜곡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과거 경찰관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검사 결과에 따른 증거를 가지고 수사를 했기 때문에 고문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엇갈린 주장에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본부는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을 조사하면서 과거 윤씨의 수사 경위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억울하다'는 윤씨, 재심 준비 

10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8차 화성 살인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윤모씨를 2차례 만났다. 윤씨는 "사람을 죽인 적 없다. 억울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8차 화성 살인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의 한 가정집에서 중학생 A양(당시 13세)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윤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조사했고 자백을 받았다.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던 중 감형돼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2003년 시사저널과의 옥중인터뷰에서 "고문 등 가혹 행위로 허위 진술을 했다. 억울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윤씨의 구속을 알리며 '화성 사건 미궁에서 벗어나려나'를 기대한 1989년 7월 29일자 중앙일보 기사. [중앙포토]

윤씨의 구속을 알리며 '화성 사건 미궁에서 벗어나려나'를 기대한 1989년 7월 29일자 중앙일보 기사. [중앙포토]

 
그는 최근 "경찰에 체포된 직후 경찰서가 아닌 야산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하고 협박을 당했다"며 "3일 동안 잠을 자려면 깨우고 물도 주지 않고 알아서 자백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당시 자신을 고문한 경찰관이 '장 형사' '최 형사' 등이라고 기억했다. 과거 경찰은 윤씨를 검거한 뒤 수사 경찰관 4명에게 특진 등 포상을 했는데 이들 중에 실제로 장 형사와 최 형사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씨는 재심 전문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와 과거 화성 살인사건에서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렸던 이들을 변호한 김칠준 변호사와 손잡고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형사들 "명백한 증거 있는데 왜 고문하냐" 

당시 윤씨를 조사했던 경찰관들은 대부분 퇴직한 상태다. 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최근 이들을 잇달아 접촉했는데 대부분 "국과수 결과를 믿고 수사를 해 고문을 할 이유가 없다"며 가혹 행위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한 전직 경찰도 중앙일보와의 통화해서 "당시 범행 현장에서 나온 음모 등을 가지고 국과수가 감정했다. 당시로선 최첨단 수사였던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이라는 것을 도입해 나온 결과였고 이를 토대로 윤씨를 검거했다"며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왜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경찰은 범행 현장인 A양의 방에서 음모 8가닥을 발견했고 이를 국과수에 넘겼다. 국과수 조사에서 B형 혈액형으로 중금속인 타타늄 등이 다량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용의자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수 백명의 남성 음모를 채취했다. 이 중에는 이춘재도 포함됐다. 이춘재한테선 2차례나 음모를 채취했는데 처음 결과에선 "B형 혈액형인데 형태가 다르다"는 결과가, 2차 조사에선 "혈액형이 O형이고 형태도 다르다"는 결론이 나왔다.   
 
반면 윤씨는 4차례에 걸쳐 음모를 채취해 조사했다. 용의자를 50명, 10명으로 추리는 과정에서도 윤씨의 이름은 계속 남았다. 최종 용의자로 보고 윤씨의 음모로 방사성 동위원소 조사를 했는데 범행 현장에서 나온 음모와 일치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검증에서 범행 현장의 음모가 윤씨의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이를 신뢰해 수사했다"며 "이 결과를 가지고 용의자를 특정했는데 윤씨가 '가혹 행위로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 우리가 국과수 조사 결과까지 조작해 범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당시 가혹수사로 허위 진술을 했다가 번복하던 일이 종종 발생했던 만큼 실제 고문 등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비싼 비용이 든다고는 하지만 윤씨만 방사성 동위원소 조사를 했다는 점 등도 부실 수사가 있었다고 보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윤씨를 수사한 내용이 적힌 과거 기록 사본과 당시 판결문에선 윤씨가 경찰에 잡혀 온 지 4시간 40분 만에 자백했다고 나와 있다. 윤씨의 음모만 별도 조사한 이유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수사본부는 당시 국과수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과거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 등 대한 재검증을 요청한 상태다.
 

이춘재, 살인은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 [JTBC 캡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 [JTBC 캡처]

경찰은 10일까지 14차례에 걸쳐 이춘재를 조사했다. 이춘재는 14건의 살인 사건과 관련해선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범행 장소 등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그림으로 그렸다고 한다. 일부 살인사건의 경우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0여건의 성범죄에 대해선 진술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가 살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기억에 의존한 내용이라 과거 사건들과 이춘재의 자백을 비교하며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춘재가 논란이 된 8차 사건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려 설명하고 범인만 알 수 있는 진술을 한 부분도 있긴 하다"면서도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을 조사하면서 과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모란·최종권·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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