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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감염 경로 미스터리···이번엔 '파리'가 의심받는다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가 발생해 방역당국이 살처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가 발생해 방역당국이 살처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의 한 돼지농장에서 식욕부진 증세를 보인 어미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확진되면서 지난달 17일 이후 국내에서 ASF 발생 건수는 총 14건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첫 발생 이후 20여 일이 되도록 정확한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방역 당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북한 가까운 곳에서 집중 발생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금까지 ASF가 발생한 지역은 파주·연천·김포·강화 등 경기 북부와 인천 등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다.
 
특히, 지난 3일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폐사한 야생 멧돼지 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이미 ASF가 창궐한 북한에서 야생 멧돼지를 통해 남쪽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 이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환경부]

지난 2일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 이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환경부]

하지만 지난 9일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1월 이후 전국적으로 1157건의 야생 멧돼지 시료를 분석했지만, 모든 시료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고, 하천수나 하천 토양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DMZ 철책선 남쪽 야생 멧돼지는 감염된 사례가 없고, 분변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방부도 "DMZ 내 야생 멧돼지가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뚫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야생 멧돼지가 원인이 아니라면?

2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의 한 양돈농가에서 국내 10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이 살처분 작업을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연합뉴스]

2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의 한 양돈농가에서 국내 10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이 살처분 작업을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여전히 "야생멧돼지가 아니라고 단정을 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환경부의 조사 결과는 야생 멧돼지가 아닌 다른 매개체가 존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에서는 살아있는 멧돼지가 철장으로 막혀 있는 DMZ를 넘어올 수 없다고 해도, DMZ 내에 방치된 멧돼지나 혹은 멧돼지 사체가 확산의 '원흉'이라고 지목한다.
 
새·쥐·파리·고양이 등 야생동물들이 돼지 열병에 감염된 멧돼지나 멧돼지 사체, 배설물 등에 접촉했을 때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침파리 먹은 돼지 감염돼

침파리

침파리

지난 7월 발간된 국제 수의학 학술지 '월경성·신흥 질병(Transboundary and Emerging Diseases)'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침파리(축사 파리, 학명 Stomoxyscalcitrans)의 ASF 매개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동물복지·질병관리과의 르네 보커 선임연구원 등은 이 논문에서 "ASF 바이러스에 노출된 침파리를 먹은 돼지가 쉽게 ASF에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침파리는 국내에도 서식한다.
 
보커 박사는 논문에서 "방역이 철저한 동유럽 농장에서도 ASF가 발생한다는 사실과 여름철에 감염이 많이 늘어난다는 점에 착안해 실험을 진행했다"며 "ASF 바이러스가 든 돼지 피를 먹은 파리를 먹인 결과, 일부 돼지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침파리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길 수도 있다는 내용의 르네 보커 박사 등의 논문.

침파리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길 수도 있다는 내용의 르네 보커 박사 등의 논문.

그는 "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의 피를 먹은 침파리가 축사로 들어가고, 돼지 먹이에 파리가 들어갈 경우 ASF에 감염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에선 파리 많은 여름에 ASF 창궐

중국 쓰촨성 광안의 한 농가에서 돼지우리를 소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 전역을 휩쓸며 중국은 돼지고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쓰촨성 광안의 한 농가에서 돼지우리를 소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 전역을 휩쓸며 중국은 돼지고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보커 박사는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야생 멧돼지와의 접촉도 없고, 철저하게 방역을 하는 데도 ASF가 발생하는 것은 파리 때문일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침파리는 돼지 사체는 먹지 않고 살아있는 돼지 피만 빤다"며 "파리가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야생 멧돼지의 바이러스를 가까운 축사로 옮길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파리 체내에서 바이러스는 몇 시간(12시간 정도)만 살아 있을 수 있다"며 "유럽 사례를 보면 야생 멧돼지 사이에서 ASF 감염은 연중 일어나지만, 사육 돼지의 ASF 감염은 파리가 많은 여름철에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ASF가 남쪽까지 확산하지 않고, 경기 북부와 강화도 등지를 중심만 전파되는 것도 파리가 매개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덴마크의 다른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감염된 돼지 피를 먹은 파리의 입 주변에서 12시간까지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고, 머리와 몸에서는 최대 3일 후까지도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축사 환기구로 못 들어오게 막아야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상황실에서 열린 ASF 방역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상황실에서 열린 ASF 방역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결국, ASF를 막으려면 차량 이동으로 인한 ASF 전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파리로 인한 전파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보커 박사의 주장이 맞는다면 당장 축사 환기구를 통해 파리가 들어오는 것부터 막아야 하는 셈이다.
4일 경기도 파주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양돈농가에서 방역차량이 소독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경기도 파주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양돈농가에서 방역차량이 소독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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