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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무력케한 셰일패권···국제유가, 이제 트럼프가 주무른다

중동이 기침하면 국제 유가가 폭등하며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리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드론 테러를 당한 사우디아라비아 정유 시설은 역사상 가장 큰 원유 손실을 봤지만, 세계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에너지 패권이 이미 중동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 드론 테러, 오일쇼크·쿠웨이트 침공보다 피해 커
국제유가 테러 당일 19% 치솟고 2주만에 원상 복귀
미국 내년 에너지 순수입국 전환…수출 1위국까지 노려
트럼프 "미국 더는 중동 경찰 자처 안해"…각자도생 예고
저유가 지속 어려워…유가 오르면 미 석유화학기업 환호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피격 소식에 국제유가는 장중 19%까지 치솟았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2주 만에 세계 3대 원유 가격은 모두 원상 복귀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오히려 드론 테러 전보다 낮은 배럴당 52달러까지 내렸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유 생산 피해 규모가 작았던 것은 아니다. 사우디 드론 테러는 1973년 오일쇼크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보다 20~30% 더 큰 하루 생산량 570만 배럴을 증발시켰다. 하지만 시장은 과거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유가가 더는 중동 긴장의 척도가 아니라는 증거는 이미 수차례 드러났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높아진 지난 7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영국의 유조선을 나포했지만, 오히려 WTI는 5일 연속 하락했다. 
 

미국, 내년 에너지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 전환  

미국 텍사스주의 셰일오일 생산시설. [사진 로이터]

미국 텍사스주의 셰일오일 생산시설. [사진 로이터]

세계 최대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국은 2015년 셰일(shale) 혁명을 기반으로 에너지 패권까지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초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빼앗은 것은 물론 최대 석유 수출국까지 넘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6월 한 달간 일시적으로 사우디를 제치고 석유 수출국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우디에서도 지난 5월 미국 액화천연가스(LNG)를 연간 500만t씩 20년간 사들이기로 계약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경제적 이유와 함께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셰일은 지하 3000m 지역의 암반층에서 뽑아낸다. 이 돌덩이 곳곳에 원유와 가스가 잘게 흩어져 있는데, 이를 셰일오일, 셰일가스라고 부른다. 인류가 이 지역에 자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1800년대 일이지만, 기술력도 부족하고 채산성도 맞지 않아 200년 가까이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수천m를 파고 내려간 뒤 90도를 꺾어 다시 수천m의 수평 시추공을 박고, 여기에 모래·화학품을 섞은 고압의 물을 쏘아 바위를 깨는 셰일 생산의 혁신을 이뤄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현재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 증가분의 97%가 셰일오일로 파악된다. 미 에너지 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일평균 약 650만 배럴의 원유가 셰일오일로 추정됐다. 전체 원유 생산분의 59%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 미국이 67년 만에 에너지 순수입국에서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돌아서는 것은 물론 셰일오일 수출로 국제 원유 가격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셰일 생산량 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셰일오일 생산지인 미국 남동부 퍼미안 분지에서 멕시코만을 잇는 수송관을 건설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이다.  
 

달라진 중동 지정학…분쟁 리스크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에너지 독립뿐 아니라 에너지 지배를 추구한다“고 공언했다. [사진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에너지 독립뿐 아니라 에너지 지배를 추구한다“고 공언했다. [사진 로이터]

셰일혁명 덕에 아킬레스건이던 중동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미국은 중동 평화 수호에 관심이 떨어진 기색이 역력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시리아 철군을 선언하면서 “미국은 중동에서 싸우고 경찰 역할을 하는 데에 8조 달러(9599조원)를 쓰는 최악의 결정을 했다”며 원유 수입국들이 국제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안전을 각자 알아서 책임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러한 미국의 중동 정책 변화는 세계 질서까지 바꿔놓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보호 아래 중동의 맹주로 군림했던 사우디 사례가 대표적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기업공개(IPO)를 놓고 유가 끌어올리기에 사활을 걸었지만, 생산시설 테러에도 차분한 원유 시장 반응에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여전히 유가를 주물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고 전했다.  
 
미국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에너지 수입이 필요 없게 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온갖 일을 다 처리해주는 수퍼 파워 역할을 포기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유례없는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 정세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터키는 미군 철수선언 이틀 만인 지난 9일 시리아 북부 지역의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작전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이 때문에 미군과 함께 5년 동안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벌여온 동맹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와의 중재를 러시아 측에 요청했다. 미국으로부터 배신당한 쿠르드족이 이젠 미국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시리아 알 아사드 정부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   
 

앞으로 유가 향방은…저유가 지속 장담 못 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셰일혁명 이후 국제유가는 5년째 80달러 선을 넘지 않는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저유가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이제는 유가가 올라도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와 다르게 유가 상승이 반가울 수 있고, 트럼프로선 더욱 그렇다. 미 공화당의 ‘돈줄’이자 자신의 지지자인 석유업자들이 환호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이터는 미국의 셰일혁명에 대해 “트럼프의 복수가 시작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우리 정부는 이제 에너지 독립뿐 아니라 에너지 지배를 추구한다”고 공언했다.  
 
더욱이 현재 미국 경제 호황에는 셰일산업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가 한몫하고 있다. 유가가 오를수록 셰일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기 때문에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미국은 세계 화학산업 주도권까지 접수하는 2차 패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향후 유가를 예측하기 더 어려워졌다.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95%가 중동산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납사)를 원료로 에틸렌을 만드는 데 비해 미국 기업의 85%는 셰일가스를 통해 대량 생산된 에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미국 석유화학사들은 앞으로 더 공격적인 수출에 나설 전망이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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