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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타란티노는 정치적으로 변절했을까?

 
 

오동진의 라스트 필름6. (오동진 평론가의 영화 에세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는 내내 궁금증이 일었다. 타란티노는 왜 1969년으로 돌아갔는가. 그것도 미국 현대사의 가장 참혹하면서도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기록돼 있는 ‘찰리 맨슨’ 사건으로. 
그 사건은 그에게 평생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켰는가. 그렇다면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얘기를 통해 현 시대의 어떤 현상을 빗대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왜 이 영화는, 타란티노의 전작과는 달리, 상당 부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삽화 임진순

삽화 임진순

 
찰리 맨슨은 1960년대 이른바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와 히피(hippie)운동에 편승해 발흥했던, 변종 종교집단의 교주 격 인물이다. 마약과 그룹섹스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탈(脫)기성의 정치사회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맨슨 패밀리라 불리는 추종 세력을 거느리며 절도와 강도 행각 등 각종 범법 행위를 저지르던 그는 자신을 신처럼 떠받드는 4명의 남녀에게 새로운 세상이 오게 하고 구 체제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로 할리우드 유명인사를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결국 이들은 비벌리 힐즈의 한 집에 침입해 사람들을 난도질해 살해하는 데 이때 희생된 인물이 당시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 샤론 테이트이다. 샤론은 살해될 당시 만삭의 몸이었으며 태아도 죽임을 당했다. 이 엽기적인 살해 행각은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60~70년대 히피 운동, 진보적인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회는 폐쇄적인 도덕률에 다시 사로잡혔고 정치권은 급격한 우경화, 보수화의 길로 치닫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바로 이 찰리 맨슨 사건의 핵심을 다루되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라는 한물간 할리우드 스타와 그의 스턴트 대역 배우인 클리프 부쓰(브래드 피트)를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빙빙 돌린다. 릭 달튼의 비버리 힐즈 집이 폴란스키의 옆 집이라는 설정이어서 맨슨 패밀리에게 살해 당할 예정인 샤론 테이트의 일상은 마치 주변부 스토리처럼 펼쳐진다. 
이야기의 시작은 릭 달튼이 새로운 배역을 찾아 다니느라 전전긍긍해 하고 그가 주연급에서 밀리자 덩달아 일을 잃은 클리프가 소일거리 마냥 릭 달튼의 운전기사로 살아가는 모습을 추적한다. 근데 그 과정이 나름 흥미로워서 ‘옆집 여자’ 따위나, 클리프가 운전을 하면서 휙휙 지나치며 만나는 히피 걸들 따위에 대해서도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는 척 한다. 릭 달튼은 자신의 집에 주차를 하는 클리프에게 조수석에 앉아 지나가는 말투로 말한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폴란스키 감독 와이프래.”  
마침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와 그녀의 남자 친구인 제이(에밀 허쉬) 역시 막 컨버터블을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다(샤론 테이트는 남편인 로만 폴란스키의 동의 하에 애인도 두고 사는 것으로 나온다.프리 섹스가 넘쳐 나던 이때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 어쨌든 넷 모두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한 톨만큼의 예상도 못하고 있는 참이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타란티노의 영화답게 이야기는 직진 코스를 밟지 않는다. 빙빙 도는 것은 기본이고, 장황스럽기 그지없는 데다, 수다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요란법석스럽기가 더 할 나위없다. 영화는 큰 결론, 엄청난 사건(엽기 살인 행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자유로운 보폭을 껑충거리며 내딛으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그와 동시에 영화 자체에 대한 의심도 그 보폭의 속도만큼 점점 더 급박해지기 시작한다. 
그 의구심의 내용은 이렇다. 타란티노가 왜 이렇게 됐는가. 타란티노가 정치적으로 변절했는가, 아니면 변절한 척 사실은 제5열의 노릇을 하며 거꾸로 ‘릭 달튼이나 클리프 같은 인간들=현재의 트럼프주의자들’에게 독설을 날리려고 하는 것인가. 그 구분과 경계가 너무 애매해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의심의 이유는, 릭 달튼과 클리프의 입과 행동을 통한 인종차별주의, 백인 우월주의, 정치적 우경화가 극에 달해 있다는 것 때문이다. 촬영장 스태프들로 일하는 멕시칸, 히스패닉들에 대한 기괴한 태도(릭 달튼이 자신의 연기 인생이 하향세라며 질질 짜자 클리프는 멕시칸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고 말한다)를 시작으로 이 둘이 드러내는 히피들에 대한 경멸감, 혐오감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아니 그 이전에 히피 캐릭터들에 대한 표현 자체가 금도(襟度)를 넘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히치 하이킹으로 만난 히피 걸은 클리프에게 차 안에서 오럴 섹스를 제안한다. 여자의 나이는 16살이고 클리프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은연 중에 도덕적 편가르기를 완벽하게 해내는 셈이다. 16살의 길거리 창녀(자유주의자, 반전주의자, 민주당 지지자, 좌파 진보주의자)와 그녀를 안스럽게 여기는 잘 생긴 백인 남자(애국주의, 공화당 지지자, 우파 보수주의)라는 이분법이 그것이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클리프는 베트남전 출신으로 보이는데, 클리프의 아시안에 대한 편견 역시 거기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촬영장에서 당시 막 떠오르는 스타였던 아시아계 배우 브루스 리와 한판 싸움을 벌인다. 클리프는 브루스 리와 그의 무술을 허풍이라고 비웃는데, 근데 그건 이상하게도 타란티노가 오랜 동안 이소룡을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줄기차게 국가관이나 도덕관이 없는 젊은 ‘애들’=히피이거나 애초에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는 이민자=멕시칸이나 이민 중국인들을, 대놓고까지는 아니지만, 철없는 인간들로 치부하며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게 꼭 현재의 트럼프 풍(風)처럼 느껴져서 타란티노가 지금 시대를 비꼬고 풍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데올로기로 경도된 것인지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런 관점은 히피 걸에 이끌려 맨슨 패밀리로 보이는 추종자들의 농장에 들어 서는 클리프의 시선을 통해 극대화 된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집단 생활을 하는 히피=루저들의 모습들을 잇따라 보여주며 그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는 농장의 원주인이자 노인인 조지(브루스 던)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백인 중산층을 마약과 감언이설(이단 종교 혹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취하게 해서 모든 것을 강탈해 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곧 지나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미국이라는 국가가 방치되고 있으며 체제가 붕괴 직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그렇다고 뭐 꼭 굳이 어쩌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미국식 개인주의가 짙게 배어 나온다. 
클리프는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남자로, 폭력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거나 종종 그것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 그를 통해 영화는 개인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을 동일시하고 정당화하려는 듯이 보인다. 클리프가 영화 속에서 폭력을 쓸 때는 자신이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할 때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건 아니다. 결국 일방적 폭력이다.
 
영화는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해 치닫는다. 남녀 히피 4명을 상대로 한 클리프와 릭 달튼의 폭행 장면은 실로 끔찍하지만 영화적으로는 걸작이다. 타란티노가 초기작인 <저수지의 개들>의 재기(才氣)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무엇보다 그 폭력의 수위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면서도 이른바 이것을 ‘폭력의 미학’으로 봐야 할 지는 두고두고 논쟁 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란티노는 정말 자유주의자들을 응징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극단적 화염방사기 장면을 통해 역설적으로 현 시대의 가공할 폭력의 실체를 증빙하려 했을까. 타란티노가 그간 보여 준 세계관을 보면 전자는 결코 아닐 터이나 영화 전반적으로는 후자일 것이라 용인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결국 영화 전체적으로는 이념적으로 많은 혼란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는 얘기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지는, ‘옛날 옛적에 할리우드에서 있었던 일’은 옛날 옛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 시대 미국사회에서 똑 같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아니 그 때의 일이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건 일종의 백인 우월주의, 혹은 백인 지배 집단의 반동(反動)이자 현재의 트럼프 정치권력이 추구하는, 시대를 역행하는 동력에 따른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트럼프 시대의 위기적 징후를 풍자와 해학으로 진단한 작품으로 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타란티노의 가설과 설정은 좀 위험한 구석이 있다. 릭 달튼과 클리프처럼 히피들에 대한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응징이 제 때 이루어졌다면 ‘폴란스키家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미국의 현대사는 달라질 수 있었다’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조차 타란스키 식 냉소와 조소였을 수 있다. 영화는 매우 양가(兩價)적이다. 한편으로 타란티노가 보수주의로 경도된 것이 아닌 가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지금의 세상을 바라 보는 당신의 ‘태도=세계관’에 달려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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