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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술사 말에 용의자 몰려 극단적선택···이춘재 누명 쓴 3000명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1990년 12월 19일. '화성 사건 용의자가 자백했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나왔다. 여성을 추행한 혐의로 붙잡힌 A군(당시 19세)이 ‘9차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경찰은 A군이 용의자와 같은 ‘B형’이고 성추행으로 적발됐으며, 화성에 산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범인이라고 실명을 공개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 [중앙포토]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 [중앙포토]

그러나 A군은 현장검증을 하던 중 "나는 범인이 아니다. 경찰이 시켜서 자백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목격자로 지목된 이들도 "당시 A군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A군이 진범인지를 밝히기 위해 A군의 혈액과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체액을 일본 과학경찰연구소로 보냈다. 결과는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였다. 검찰 조사 결과 A군은 경찰들에 의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전기고문을 하겠다'는 위협 등에 거짓 자백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군은 여성을 추행한 혐의만 인정받아 1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다 간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린 피해자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범행을 자백하면서 과거 용의자로 몰렸던 이들의 사연도 주목받고 있다. 화성 사건이 처음 일어난 86년 9월부터 93년 9월까지 경찰에 용의자로 몰려 실명이 공개된 이들만 10여명. 이 중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다.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렸던 이들을 변호한 김칠준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범죄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범인으로 볼 수 있는 건데 당시 경찰은 아무런 증거 없이 이들을 불러서 자백을 강요하기도 했다”며 “살인이란 중대한 범죄에 중요한 증거가 없으니 자백을 받기 위해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백만으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관된 원칙임에도 수사 기관인 경찰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결과다.
 

강압수사에 거짓 자백, 극단적 선택도

1990년 12월 18일 화성군(현 화성시) 병점역에서 3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20일 전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횡설수설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던 그는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며 불안증세를 보이고 "자수하겠다"고 경찰서로 뛰어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 관련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던 고교생이 정신불안증세 등을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고교생은 “두 차례 화성 수사본부에 연행돼 치안본부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받고 풀려났으나 다시 연행됐다”라며 “범행을 계속 부인하자 경찰이 가혹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전도사 B씨(당시 33세)는 88년 교회 부지를 알아보러 화성지역을 찾았다가 용의자로 몰렸다. 술에 취한 한 여성에게 길을 물었는데 이 여성이 B씨가 자신을 추행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B씨는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 등으로 교회를 떠나야 했다. 고문 후유증도 앓았다  
 
심령술사의 말만 듣고 용의자로 몰리는 일도 있었다. C 씨(당시 40세)는 92년 6월 화성 연쇄살인 4.5차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다. 심령술사를 자처한 재미교포(당시 47세)의 제보 때문이었다. 이 재미교포는 “꿈속에서 화성사건의 범인 이름을 적은 편지봉투를 건네받았는데 그가 바로 용의자 C씨”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C씨를 6개월간 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듬해 서울의 다른 경찰서로 같은 내용의 제보가 들어갔고 또 조사를 받았다. 소문이 나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이웃들의 시선도 차가웠다. 괴로워하던 그는 가족에게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C씨의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소송에 함께했던 김칠준 변호사는 "당시 경찰에서 C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가 석방하고 다시 부르는 행위를 반복하며 증거도 없는데 7주간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말했다. 
C씨 가족이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재미교포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C씨가 화성사건의 진범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C씨 가족은 2009년 이 재미교포를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해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실제로 처벌이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10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10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3000여명 조사했는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진안동(태안읍 진안리)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당시는 밤늦은 시간에 집 앞에만 나가도 의심을 받았던 것 같다"며 "용의자로 몰려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다가 동네를 떠난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0년 11월 22일 자 중앙일보는 "여자들은 살인 공포에, 남자들은 경찰의 무더기 연행, 사생활 추적조사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썼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 대조는 4만116명이었고, 용의자로 몰려 조사받은 사람은 3000여명에 이른다. 무고한 시민이 수사를 받으며 용의자로 몰렸지만, 경찰은 DNA 검사 등 과학수사가 본격 도입되기 전까지 연쇄살인을 막지 못했다.

이춘재는 최근 모방범죄로 결론이 난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8차 사건 범인은 2003년 '시사저널'과 가진 옥중 인터뷰에서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억울하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8차 사건 범인은 감형돼 2009년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갑용 경찰청장은 4일 열린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이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 사건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국민께 알리고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용ㆍ최모란ㆍ최종권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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