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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은 원래 하나였다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20>

1. 1922년 오스카 슐레머가 디자인한 바우하우스 로고는 불완전한 정보들을 조합해 의미 있는 형태를 구성한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완결성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클레를 비롯한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게슈탈트 심리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1. 1922년 오스카 슐레머가 디자인한 바우하우스 로고는 불완전한 정보들을 조합해 의미 있는 형태를 구성한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완결성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클레를 비롯한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게슈탈트 심리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가끔 중얼거릴 때가 있다. 그런 내 목소리를 행여 누군가 들었을까 화들짝 놀란다. 도대체 왜 중얼거리는 걸까?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화가 날 때, 아니면 몹시 창피할 때, 우리는 중얼거린다.
 

바우하우스, 게슈탈트 심리학 영향
그림으로 생각하는 ‘시각적 사고’
색채를 문학과 결합하려 한 클레
시적인 제목 붙여 대중 인기 얻어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자기중심적 언어’라고 부른다.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이 현상을 “내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고’는 타인과의 대화가 내면화된 ‘내적 언어’이며, 성인의 중얼거림 현상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내적 언어’가 은연 중에 외부로 새어나오는 것이라는 거다(이 현상을 철학적 개념으로 바꾸면 ‘자기성찰’이 된다).
 
‘혼자 중얼거리기’는 우리가 ‘문장’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장을 통한 생각’은 대부분 ‘연역법’이나 ‘귀납법’이라는 논리적 추리방식에 기초한다. 미국의 논리철학자 퍼스는 주어진 명제를 통해 결과를 이끌어내는 연역법을 ‘설명적 추론’이라고 정의하고, 주어진 사례를 통해 결과를 이끌어내는 귀납법을 ‘평가적 추론’이라고 평가한다. 연역법은 어떤 것이 ‘반드시(must be)’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고, 귀납법은 무엇이 ‘실제로(actually)’ 어떻게 작동한다는 것만 보여줄 뿐,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적 사고와는 아무 관계없다. ‘문장을 통한 생각’은 새로운 것의 창조와는 크게 관계 없다는 이야기다.
 
창조적 사고는 ‘혹시나(may be)’의 ‘유추법(abduction)’이라는 또 다른 사유체계를 통해 가능하다고 퍼스는 주장한다. 창조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혹시나’라는 질문의 사유체계는 대부분 ‘그림을 통한 생각’과 관련되어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이를 ‘시각적 사고(visual thinking)’라고 명명한다.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 매개되는 생각이다. 오늘날의 지각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심상(mental imagery)’이라고 부른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통찰(insight)적 경험은 논리에 기초한 ‘문장을 통한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멍하니 있을 때 날아다니는 생각도 대부분 이미지적이다. 멍하니 있을 때가 가장 창조적이라는 이야기다.
 
생각은 ‘문장’일까? ‘그림’일까?
 
2. 1922년 오스카 슐레머가 디자인한 바우하우스 로고는 불완전한 정보들을 조합해 의미 있는 형태를 구성한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완결성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클레를 비롯한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게슈탈트 심리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2. 1922년 오스카 슐레머가 디자인한 바우하우스 로고는 불완전한 정보들을 조합해 의미 있는 형태를 구성한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완결성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클레를 비롯한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게슈탈트 심리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바우하우스에서 클레는 학생들과 철저하게 그림을 통해 소통했다. 자신의 생각도 그림을 통해 정리했다. 클레는 ‘시각적 사고’의 대가였다. 무척 소심했던 그는 바우하우스 초기에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다. 강의에서 해야 할 모든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준비했다. 바우하우스 시절 그가 남겨놓은 수천 장의 강의 자료는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고 있다.
 
그중 일부가 『조형적 사고(Das bildnerische Denken)』라는 제목으로 1956년에 출간됐다. ‘조형적 사고’는 아른하임의 ‘시각적 사고’와 같은 맥락이다. 우연이 아니다. 클레를 비롯한 바우하우스의 선생들은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psychologie)’에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사진 1, 2)
 
바우하우스와 동시대에 독일 심리학계의 혁신적 흐름을 이끌었던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의 사고과정은 자극의 선택적, 적극적 구성과정에 기초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게슈탈트(Gestalt)’는 ‘형태(Form)’라는 뜻을 갖지만, ‘형태’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의미다. 인간의 감각은 지각된 ‘부분’과 ‘요소’를 적극적으로 통합하여 ‘좋은 형태(Gute Gestalt)’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영어의 ‘design’은 독일어로는 ‘gestalten’이 된다).
 
이때 ‘좋은 형태’는 ‘유사’, ‘근접’, ‘대칭’과 같은 게슈탈트 원리에 따라 구성된다. 이에 관해 게슈탈트 심리학의 리더인 막스 베르트하이머는 “부분의 합은 단순한 전체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클레는 실제로 베르트하이머의 원리에 따라 다양한 실험적 그림을 그렸다.
 
클레는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아버지를 따라 독일이었다(후에 나치의 억압을 피해 스위스 국적을 신청하지만, 그의 소망은 사망한 직후에 이뤄졌다). 미술가로서의 삶은 대부분 독일에서 보냈다. 음악을 포기하고 미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클레는 독일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집합소였던 뮌헨으로 옮겨왔다. 뮌헨 제세시온의 리더였던 뮌헨 아카데미의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밑에서 회화공부를 시작하지만, 진지하고 무거운 슈투크의 스타일은 클레의 ‘즐거운 그림’과는 맞지 않았다(바로 그 옆 반에 칸딘스키가 있었다. 칸딘스키 역시 슈투크의 가르침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서로 몰랐던 둘은 10년 후 ‘청기사파’ 전시회에서 만나 평생을 ‘절친’으로 지낸다). 클레는 슈투크의 회화반을 이내 그만두고 방황한다.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의 편집
 
클레가 인상파 화가들의 화려한 그림을 접하며 자신의 그림에 절망하던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됐다. 절망의 이유인즉 자신이 ‘선’에는 능숙하지만 ‘색채’에는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선을 쓰지 않고, 색채의 대비를 통해 자연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인상파 그림들 앞에서 클레는 한없이 주눅이 들었다.
 
3. 순수한 색채와 형태만으로 회화를 구성한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의 ‘창’(1912).

3. 순수한 색채와 형태만으로 회화를 구성한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의 ‘창’(1912).

그러던 어느 날, 클레는 자신도 색채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와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1912년 봄, 파리 방문 당시 알게된 들로네의 ‘오르피즘(Orphism)’은 클레에게는 그때까지 막연했던 ‘음악적 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르피즘’은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가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순수한 색채와 형태만으로 회화를 구성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들로네의 그림, 특히 ‘창’시리즈는 클레에게 구원이었다.(사진 3)
 
4. 들로네의 색채를 도입해 그린 클레의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1917/18).

4. 들로네의 색채를 도입해 그린 클레의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1917/18).

문학적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클레는 들로네의 색채를 도입해 시와 결합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917/18년에 그린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라는 작품이다(사진 4). 클레 자신의 시를 화면 가득 채워 놓고 그 사이사이를 수채화 물감으로 꼼꼼하게 칠한 작은 수채화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 타오르는 불처럼 무겁고, 귀하며, 강하게 되어 / 신으로 충만한 저녁으로 기운다 / 이제는 푸른 하늘에 둘러싸여 만년설 위를 떠돈다 / 현명한 별을 향하여.”
 
이때 시작한 문학과 그림의 편집, 활자를 모티브로 하는 그림에 대한 실험은 클레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들로네의 색채를 경험하고 다양한 실험을 계속하던 이 무렵 클레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즐거운 그림들’이 1913년 베를린의 슈투름 화랑에서 전시되며 드디어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아내가 피아노 교습으로 돈을 벌어오는 동안, 집안일과 아이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그림을 그려야 했던 ‘전업주부’ 클레에게 드디어 ‘전업화가’로서의 가능성이 열렸다. 독일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후원자였던 베를린 슈투름 화랑의 헤르바르트 발덴(Herwarth Walden)이 클레의 ‘즐거운 그림들’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졌던 발덴은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차리기 힘든 클레의 그림에 시적인 제목들을 붙이라고 요구했다. 하여 클레는 ‘추상 1914’란 그림을 ‘운동적인 풍경’으로, ‘추상적 수채화’라는 그림은 ‘검은 파토스’로 바꿨다. 이런 식으로 전시회 그림들 제목을 시적으로 다시 붙였다.
 
발덴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의 무겁고, 비관적인 그림들에 지쳐있던 베를린의 대중들은 클레의 ‘기분 좋아지는 그림들’에 푹 빠졌다. 이후로 클레의 그림들은 죄다 시적인 제목을 갖게 된다: ‘도시의 보석’, ‘노란 반달과 Y자가 있는 구성’, ‘숲의 리비도’, ‘풍경 속의 검은 기둥들’, ‘현재의 여섯 경계 안에서’ 등등. 이후로 클레는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별명은 단지 그림을 팔기 위한 상업적 의도에서 생겨난 것만은 아니었다. 클레에게 ‘그림’과 ‘글’은 원래 하나였다(흥미롭게도 한글에서 ‘글’과 ‘그림’의 근원은 같다. 그리다! 그리고 한글에는 하나가 더 포함된다. 바로 ‘그리움’이다. 종이에 그리는 것이 ‘글’과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는 것이 ‘그리움’이다).
 
클레가 끊임없이 시대의 문학자, 철학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사상을 자신의 그림에 담고자 노력했던 시도는 ‘음악과 그림의 편집’이라는 차원과 맞물려 ‘조형적 사고’, 혹은 ‘시각적 사고’의 완성을 향해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클레의 예술세계는 한국에서 너무 저평가되어 있다. 다음호에 계속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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