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논설위원
사랑·혁명의 시인 신동엽
타계 50년 추모 문학기행
“큰 소리 떠든다고 정치냐”
오늘의 편 가르기 꾸짖어

배우 김중기(왼쪽)와 시인 김응교(가운데)가 지난달 28일 충남 부여 백마강 기슭의 신동엽 시비 앞에서 역할극을 펼치고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
이날 자리에선 깜짝쇼도 열렸다. 배우 김중기가 신동엽으로, 시인 김응교가 신동엽보다 한 해 먼저 숨을 거둔 시인 김수영(1921~68)을 맡아 역할극을 펼쳤다. 모더니즘(김수영)과 리얼리즘(신동엽)이라는 각기 다른 얼굴로 60년대를 수놓은 그들은 서로의 가치를 알아봤다. 아홉 살 많은 김수영은 신동엽에게 “소월의 정조와 육사의 절규가 함께 있다”고 칭찬했고, 신동엽은 김수영 타계 당시 추도사 ‘지맥 속의 분수’로 응답했다. 신동엽은 이 글에서 김수영이 어느 날 대폿집에서 한 말을 잊지 못한다고 적었다. “신형, 사실 말이지 문학하는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무슨무슨 주의의 노예가 될 순 없는 게 아니겠소?”

부여 신동엽 생가 옆에 세운 문학관 입구에 놓인 시인의 흉상.
이날 참가자들은 신동엽 문학이 싹튼 부여 일대를 돌아봤다. 시인이 다닌 부여초등학교, 시인이 태어난 옛집과 그 곁의 문학관, 서사시 ‘금강’을 구상한 곳으로 알려진 백마강변과 낙화암·고란사 일대를 찾았다. 어제에 멈춘 시인이 아닌 내일을 열어가는 시인을 다시 불러냈다. 기자의 눈엔 문학관에 전시된 ‘산문시1’이 확 들어왔다. 평등한 세상을 소망한 신동엽이 다가왔다.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구절이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퇴근 때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잔하며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약속이 겹쳤다. 문 대통령은 이 시를 지난 6월 스웨덴 의회에서 낭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머나먼 꿈 얘기처럼 들린다. 조국 사태로 나라가 둘로 갈라진 요즘, 더욱 아스라하기만 하다.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는 정녕 현실정치에선 기대할 수 없는 신기루일까. ‘큰 소리 떠든다고 세상 정치가 잘 되는 것이 아니듯이 바삐 서둔다고 내 인생에 큰 덕이 돌아오진 않을 것’(‘서둘고 싶지 않다’)이란 시인의 마을에서 한 가닥 위로를 받는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