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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피에트로와 몽골피에, 그리고 윤석열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레전드급 검사들이 있다. 어지러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권력과 ‘맞짱’을 뜨며 실세들을 떨게 했다. 한국의 한 검사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반어적으로 추천한 ‘힘센 쪽에 붙는 편한 길’을 마다했다. 그래서 이름을 떨쳤다.
 

정치인 된 피에트로는 꿈 못 이뤄
몽골피에, 박해 견디며 자리 지켜
“총장이 사표내는 것 가장 쉬운 길”

먼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마흔둘이었던 1992년 부패한 정치인들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포진한 밀라노 검찰청 검사들이 1년 반 동안 상·하원 의원 절반 이상을 기소했다. 이 전쟁은 ‘깨끗한 손(마니 풀리테)’ 운동이라 불렸다. 정치인들의 혐의는 대부분 기업체의 수주·납품에 끼어들어 뒷돈을 받은 것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환이 이뤄졌다.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물 정치인도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전직 총리이자 당시 사회당 총수 베티노 크락시에 대한 수사였다. 크락시는 뇌물 수수 혐의가 드러나자 “정치적 비용”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표적 수사라고 주장했다. 권력을 방어막 삼아 소환에 불응했다. 이탈리아 시민은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 학교에 다녔고, 경찰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흙수저’ 검사 피에트로를 열렬히 응원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크락시는 튀니지로 도주했고, 2000년에 눈을 감을 때까지 다시는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피에트로와 동료 검사들 때문에 이탈리아 정당 4개가 해체됐다. 새로 총선을 치러야만 했다.
 
다음은 프랑스의 에리크 드 몽골피에. 1994년 프로축구팀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의 구단주이자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의 소유주였던 베르나르 타피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승부 조작에 그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을 확보한 몽골피에는 타피를 기소했고, 징역 2년형을 받아 냈다. 타피가 조사를 받을 때 몽골피에에게 “여기에 오기 직전에 엘리제 궁에서 대통령(프랑수아 미테랑)을 만났다. 다음에는 당신 얘기를 잘 해주겠다”며 거만을 떨었다는 얘기가 회자한다. 수년 뒤 몽골피에는 규정을 위반하며 재판을 미뤄 재력가들을 비호한 판사들을 수사해 다시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선 두 강골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당연히 평탄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걸어간 길은 180도 달랐다.
 
피에트로는 정치인 수사 때 특정 세력은 봐줬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정치권 반격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2년간 재판과 정치적 공격에 시달리다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검찰을 떠나 정치권으로 갔다. 로마노 프로디 정부 때 장관으로 발탁됐고, 1999년 보궐선거를 통해 상원의원이 됐다. ‘가치의 이탈리아’라는 당을 만들어 정치 개혁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하원의원과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했으나 만년 야당 의원 신세에 머물렀다. ‘원조 트럼프’ 격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맞서 개혁을 외쳤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몽골피에는 지방을 전전했다. 자크 시라크 정부와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가 그를 변방에 묶어뒀다. 그래도 또 ‘사고’를 쳤다. 니스에서 근무하던 2009년에 스위스 HSBC 은행의 비밀계좌 정보가 든 자료를 한 은행원의 아버지 집에서 압수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전역의 부자 수천 명이 수사 또는 세무조사를 받거나 자진해 납세했다. 그즈음에 사회당 실세들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2012년에 집권한 사회당 정권은 그를 지방 검찰청장으로 승진시켰다. 정년퇴직 1년 전이었다. 그는 “발령을 사양하려 했지만 나 죽은 뒤 아내가 받을 연금 액수를 생각해 수락했다”고 프랑스 언론에 말했다. 그는 회고록에 ‘강물 위로 시체가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을 다리 위에서 가만히 보고 있기가 어려웠다’고 썼다. 불의를 방관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자리에서 쫓아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의 동반 퇴진, 조 장관 수사가 끝난 뒤 사퇴 등의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연일 노골적으로 불신과 불만을 표출하니 윤 총장 스스로 사표를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권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기도 했던 한 전직 검찰총장은 “사표는 사실 가장 쉬운 길이다. 자신을 믿고 일한 후배 검사들을 위해 총장이 버팀목이 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이 ‘책임지는 길’은 과감한 사직이 아니라, 울분을 삼켜가며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 규모 12위권, G15(주요 15개국) 회원국, 류현진과 손흥민을 배출한 이 나라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의 불법과 비리를 끝까지 파헤친 월드 프리미엄급 검사다. 이젠 한 명쯤 나올 때가 됐다.
 
사족=꿈을 이루지 못한 피에트로보다 퇴임 뒤에도 꾸준히 국민의 존경을 받는 몽골피에가 더 멋져 보인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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