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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R의 공포’ 넘어 ‘J의 공포’ 스멀거리는 한국경제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9월 말 기준 코스피 지수(KOSPI)가 지난해 말보다 1% 상승하고, 원화 환율은 7% 절하됐다. 이로써 세계 주요국 가운데 한국은 주가 상승률은 가장 낮으면서 환율은 가장 큰 폭으로 절하됐다. 한국 경제의 비관적 단면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통계에 따르면 세계 10대 수출국의 지난해 동기 대비 올해 상반기 상품 수출증가율은 한국이 가장 높은 감소율(-8.6%)을 기록했다. 그 결과 한국은 지난해 5위 수출국에서 올해 6위로 밀려났다.
 

착한 정책들, 시장에는 나쁜 결과로
민간부문 성장 동력이 꺼지는 한국
세계화 틀 무너지고 반세계화 역풍
환경 불확실할 땐 정책 유연성 절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듯 유튜브에는 각종 ‘경제 위기론’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경제 위기가 다시 일어나야 한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한국 경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1997년 말과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 그래도 위기는 예방이 최선이다.
 
한국 경제가 표류하고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2.8%에서 올 상반기에 1.9%로 추락했다. 성장률 급락보다 더 심각한 양상은 민간부문의 성장 동력이 거의 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분기 성장 기여도에서 정부 부문이 1.8%p로 성장률의 90%를 차지했다. 반면 민간 부문은 0.2%포인트로 10%에 불과했다.
 
수출과 설비투자 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10개월 연속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8월 기준으로 제조업에서 반도체를 제외한 생산 활동 수준은 2010년 8월 이래 가장 낮다. 경기 상태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09년 8월 이래 지금이 가장 낮다. 한마디로 경제활동 수준이 꼭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상반기 수준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침체 상황은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것인가. GDP의 55%를 차지하는 수출의 감소세가 이어지고, 수출 감소세가 투자 부진을 선도하고 있다. 경기가 저점에 이르렀다는 전망도 있다. 당초 정부는 하반기에 반도체 주도로 수출이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반세계화’(Deglobalisation)의 거센 역풍은 한국의 수출을 압박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새로운 후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강해짐에 따라 경기후퇴(Recession)를 의미하는 ‘R의 공포’를 넘어서 일본 경제와 같은 장기 구조적 불황을 의미하는 ‘J(Japanification)의 공포’가 거론되고 있다. 잘 나가던 미국 경제조차 서서히 식으면서 내년에는 침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중 무역 전쟁과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과 불확실성이 세계 무역을 위축시키고, 그 결과 세계 경제는 침체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계 경제의 침체 양상에는 경기 순환의 차원이 아니라 세계 경제와 국제 정치 틀의 와해로 인한 구조적인 원인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세계화의 틀이 무너지고, 반세계화의 역풍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포기함에 따라 지구촌 곳곳에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세계 패권을 둘러싼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의 성격을 띤 미·중 무역 전쟁은 쉽게 끝날 수 없다. 관세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증대함에 따라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간 벌기 차원의 잠정적 타협(Small deal) 가능성은 있지만, 근본적인 타협은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는 지금 정치와 경제의 지배구조가 총체적인 혼란에 빠진 ‘천하 대란’의 진통을 겪고 있다. 이 혼란이 무언가 새로운 틀로 정리돼 안정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직 알 수 없다.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중국 경제가 고성장 혜택을 최대한 누렸고, 한국 경제는 중국의 굴기 덕을 봤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위축됨에 따라 대중국 수출 감소와 세계 무역 위축으로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듯 세계 경제에 역풍이 부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재벌 개혁, 부동산 규제 등 대내 지향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해 왔다. ‘착한 정책들’이 시장의 반작용을 초래해 역설적으로 ‘나쁜 결과’를 만들어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세기적 전환기의 혼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 전쟁은 물론 지정학적 위험과 불확실성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세기적 혼란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의 판도와 국가의 명운이 결정된다.
 
국제 정치 틀의 변화와 세계 경제의 거센 역풍을 외면하고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해 왔던 대내 지향적이고 적폐 저격식 정책만을 계속 고집한다면, 한국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을 벗어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정책의 유연성이 필요하고, 시장의 신뢰를 튼튼하게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정권의 반환점을 앞둔 시점에서 세계 경제와 국제 정치 틀의 변화를 무겁게 인식하고, 국정 기조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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