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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효도, 팔순 아버지와 TV 보기

기자
푸르미 사진 푸르미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4)

불도 안 켜진 골방에서 언니 책을 줄줄이 읽어 내려가 부모님을 놀라게 했던 네 살배기. 아침마다 유치원 가는 언니 따라가겠다고 울어대 선생님께 사정사정해서 유아반에 넣었더니 첫날 노란 모자에 ‘김수일’이라고 당당히 이름을 적었던 막둥이, 그게 나다.
 
물론 내 본명은 ‘김수일’이 아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여의도(지역구로는 영등포구)에 출마했던 국회의원 후보자 이름이 ‘김수일’이었다. 한문을 막 배우기 시작한 큰 언니가 집에 배달된 국회의원 선거 홍보물을 보다 “빼어날 수(秀에)에 한 일(一), 이름 좋다!”(아마도 자신이 읽을 수 있는 한문으로만 구성된 이름이었기에 그렇게 표현했으리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모자에 적는 것으로 개명을 선언한 것이다. 언니들은 깔깔댔지만 부모님은 순간 “애 넷 중의 한 명은 혹시 영재?” 하는 일말의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대기업 입사 준비를 할때 나는 영화제에 빠져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볼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 가서 줄을 섰다. [사진 pexels]

친구들이 대기업 입사 준비를 할때 나는 영화제에 빠져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볼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 가서 줄을 섰다. [사진 pexels]

 
책을 일찌감치 떼어 버린 막내딸은 그 후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드라마와 만화를 좋아해서 고3 때도 독서실을 오가는 앞뒤로 한 시간씩은 만화방에 들러 ‘유리가면’을 반복해서 통독했고, 당시 시청률 60%에 달했던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55편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본방 사수했다. 그렇게 해서 정립된 내 꿈은 ‘문화백수’. 정의하면 ‘문화적인 생활을 향유하며 이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되고자 어려운 교직과목을 수강하거나 대기업 입사,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나는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영화제에 빠져 있었고 매주 씨네21 시사회 쿠폰으로 무료 영화를 보러 다녔다.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볼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 가서 줄을 섰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교통비와 용돈 정도는 아르바이트로 벌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마음껏 보면서, 그렇게 평생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때의 무모한 생각이 지금까지 독립하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근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와 매일 아침 10시에 학교에서 만나 전략회의를 했다. PC 통신을 통해 ‘공모’ 사이트에 접속한 뒤 ‘오늘의 공모’메뉴로 들어가면, 제과 회사에서 신문에 낸 상품명 괄호 넣기 퀴즈부터 언론사 주최 대학생 광고공모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공고가 쏟아졌다.
 
우리는 각자 자신 있는 분야를 나눠 맡아 응모 작업을 진행했다. 매일 2시간 정도 투자해 얻은 성과는 짭짤했다. 성적 장학금은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내가 공모전 상금으로 등록금도 내고, 중국 배낭여행도 무료로 다녀왔다. 돌아보면 그때만큼 창의적이고 즐거웠던 때가 없는 것 같다.
 
언론·홍보 관련 업무를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드라마에선 멀어졌다. 주말에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할 때도 24시간 뉴스 채널을 틀어 놓을 정도였다. [사진 pexels]

언론·홍보 관련 업무를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드라마에선 멀어졌다. 주말에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할 때도 24시간 뉴스 채널을 틀어 놓을 정도였다. [사진 pexels]

 
그런 내가 공무원이 됐다. 사회생활 첫 직장은 ‘문화백수’의 꿈에 어울리는 홍콩영화 전문 수입사였다. 입사 한 달 만에 홍콩에 출장 가 당시 최고 인기였던 왕가위 감독과 배우 금성무를 만난 것까지는 환상적이었는데, 야근을 거의 매일 하다 보니 ‘이러다 막내딸 망치겠다’하는 신호가 아버지 레이더에 잡혔다. 아버지가 회사에 대신 사표를 내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지금은 인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경쟁이 매우 치열하지만, 도서관과 친한 친구들을 안쓰러워했던 나로선 한동안 친구들에게 어디 다닌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뭔가 유행에 한참 떨어진 옷을 입고 동창 모임에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의 위험한 꿈은 종착역을 찾았고, 주말도 없이 분주한 직장인이 되었다. 언론·홍보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던 드라마에선 멀어지고,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외엔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주말에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할 때도 24시간 뉴스 채널을 틀어 놓을 정도로.
 
아버지와 둘이 살며 달라진 것이 TV 시청 습관이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바뀌긴 했지만 가족 간 대화를 위해서 TV를 끄자는 캠페인도 있었는데, 내 경우엔 TV를 함께 보면서 아버지와 대화가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흉악한 뉴스가 나오면 함께 침 튀기며 분개하고, 가성비 높은 맛집이 소개되면 저기 어디냐고 한번 가보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요즘은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해서 함께 먹고, 차 마시는 동안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주로 보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생생정보통’, ‘불후의 명곡’, ‘한국인의 밥상’, ‘우리말 겨루기’, ‘도전 골든벨’ 등이다.(공영방송이 대부분인 것은 광고 없는 채널을 좋아하는 아버지 취향이지 내 취향은 결코 아님)
 
드라마와 만화를 좋아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와 둘이 살면서도 TV를 함께 보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사진 pxhere]

드라마와 만화를 좋아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와 둘이 살면서도 TV를 함께 보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사진 pxhere]

 
우리말 겨루기에 나온 85세 동년배 출연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아버지와 동명의 학생이 최후의 1인으로 남았던 ‘도전 골든벨 원자력마이스터고 편’에선 방송 도중 ‘꼭 골든벨 울리게 해주세요’라고 함께 기도드리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아버지가 선심 쓰며 함께 봐 주시기도 하는데, 최근엔 대한민국 걸 그룹 보컬 NO·1을 뽑는 프로그램을 보시다가 ‘오늘은 가지마’라는 노래 가사를 유심히 보시더니 “가사가 참으로 애닮다. 나는 안 가면 좋겠다. 네가 가지 말라고 전화해라” 하셔서 아버지의 짙은 감성에 놀라기도 했다. 청각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주로 자막으로 보이는 가사 위주로 감상하셨는데도 그 날의 우승팀을 맞추는 기염을 토하셨다.
 
우리 부녀가 매주 꼭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것은 ‘불후의 명곡’이다. 가요계 전설로 꼽히는 분들 노래를 요즘 잘 나가는 가수들이 새롭게 부르니 아버지와 나 모두를 만족하게 한다. 그런데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아버지가 판정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노래가 끝난 뒤 명곡 판정단이 투표하고, 더 많은 표를 받은 가수가 남아 다음 순서와 대결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긴 팀 점수만 표시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연승을 거둘 경우 화면에는 같은 점수가 표시된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또 425점이야? 왜 이렇게 동점이 많아?”하는 반응을 보이시는 거다. 동일한 점수가 또 나온 게 아니라 그 점수를 상대가 넘지 못했기 다시 표시된 것이라는 설명을 매번 해 드리지만 “글쎄, 알아.”하며 얼버무리신다. 내 추리론 여전히 이해가 안 되시는데 은근슬쩍 넘어가시는 듯하다. 혹여 자존심 상하실까 집요하게 캐묻진 않는데, 매주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렇게 계속 넘어가는 게 맞는 것인지, 인지능력 검사를 받아보시도록 하는 게 적절한지 슬며시 걱정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푸르미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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