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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개띠니까…' 다시 꺼내 본 나에게 보낸 편지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8)

딸네에 들르니 손편지를 한 통 건네며 출근길에 우체통이 보이면 좀 넣어달란다. “요즘도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는 사람이 있나? 그리고 길가에 있는 우체통을 우체국 직원이 열어보기나 할까?”하며 “우체국에 가서 보내줄게”했다.
 
사무적이고 급한 거면 우체국엘 가야 하지만, 손편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칠수록 사랑이 쌓여 도착하는 거라며 조금 느리게 도착하더라도 아날로그식의 가을 편지를 보내고 싶단다. 친구가 마음이 울적하고 우울해 하는 것 같아 늘 메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다가 잠도 오지 않은 가을밤 “이런저런 내 마음을 손편지로 써서 보내는 거라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거야”라고 후렴도 붙인다.
 
손편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칠수록 사랑이 쌓여 도착하는 거라고 한다. 사진은 전남 여수시 화정면의 우체통. [중앙포토]

손편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칠수록 사랑이 쌓여 도착하는 거라고 한다. 사진은 전남 여수시 화정면의 우체통. [중앙포토]

 
나도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써본 적이 언제쯤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1년에 한 번은 써본 것 같다. 요즘은 여행지를 가면 어디서나 편지쓰기 코너가 있고, 그 옆에 느린 우체통을 볼 수 있다. 거의 1년 후에 도착하는 편지통인데, 기가 막히게 1년 후 도착할 때면 1년 전 헤어진 애인과 소식 모르고 지내다가 안부를 엿듣는 것처럼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느리게 가는 우체통 편지쓰기에 동참해 본 사람들은 내 마음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몇 년 전 이맘때쯤이다. 남편이 떠나고 한 달이 지나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의미로 무전여행을 갔다. 돌아올 날짜를 정하지 않아도 되고, 돌아오길 기다려 줄 이도 없다는 것이 묘했다. 밥상을 안 차려도 되는 이상한 기분과 함께 두렵고 불안한 기분을 가득 안고 집을 나섰다. 당시, 『태백산맥』을 읽고 나름 문학기행으로 코스를 짰던 것 같다.
 
한 많은 세상살이 주인공들의 삶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고, 실제 장소에서 숙식하며 어느 날엔 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다음 날 ‘태백산맥 문학관’에 가니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나는 그날 방에서 쓰던 마음 보따리를 문학관 귀퉁이에 펼쳐놓고 나에게 한 통, 하늘로 간 남편에게도 한 통, 아들에게, 딸에게, 한 통씩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란 계획과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홀로된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썼던 것 같다. 주소가 없는 남편에게 보낸 편지는 누군가가 뜯어보고 소각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나를 마음 깊이 격려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년 후 받아본 나에게 온 편지는 심장이 오글거렸다. 그동안 애쓰고 잘살았다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문장들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어찌나 아부를 떨어놨는지 읽으면서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났다. 그중에 재미있는 문장을 옮겨본다.
 
“너는 58년 개띠잖아. 강아지는 사람과 가장 소통을 잘하고 어떤 환경에서나 교류를 잘하고 즐겁게 적응할 줄 알지. 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 개띠니까….”
 
반려견같이 참고 참으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살라고 내가 나에게 부탁한 걸 보니, 그때는 혼자서 세상을 나서는 첫걸음이 많이 불안하고 두려웠나 보다.
 
시간이 지나 받아본 나에게 쓴 편지에는 그동안 애쓰고 잘살았다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문장들이 담겨있었다. [사진 pxhere]

시간이 지나 받아본 나에게 쓴 편지에는 그동안 애쓰고 잘살았다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문장들이 담겨있었다. [사진 pxhere]

 
살다 보면 많은 시간 속에서 가끔 늪에 빠지거나 어둠 속에서 헤매기도 한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마음속 또 다른 내가 나를 외면하고 침묵할 때, 우울하고 힘겨울 때, 때론 멀리 있는 친구가 위로가 되어 줄 때도 있다. 멀리 있는 친구를 위해 연필로 밤새 편지를 쓴 딸이 대견하다. 그 편지가 청량음료가 되고 허기를 면하는 한잔의 막걸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디오에선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라는 노래가 오래된 음반처럼 흘러나온다. 나이 들어 맞이하는 가을은 확실히 다른 계절이다. 그나저나 편지를 넣어둔 저 우체통을 우체국 직원이 꼭 열어봐야 할 텐데….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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