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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힐링을 부르는 담다디 언니

가수 이상은이 ‘릴랙스’ 등 6곡이 수록된 미니앨범을 냈다. ’팬들과 여행 가느라 30주년을 놓쳤다“면서도 연신 웃는 얼굴이다. 최승식 기자

가수 이상은이 ‘릴랙스’ 등 6곡이 수록된 미니앨범을 냈다. ’팬들과 여행 가느라 30주년을 놓쳤다“면서도 연신 웃는 얼굴이다. 최승식 기자

가수 이상은(49)이 5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놨다. “릴랙스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내려놔 놓아”라며 천천히 가는 삶을 권하는 ‘릴랙스’, “라라라 오늘은 우리동네 여행하는 날”로 시작되는 ‘일상 노마드’ 등 여섯 곡이 수록된 미니앨범 ‘플로(fLoW)’다.
 

이상은 5년 만에 새 앨범 ‘플로’
강이채 등 젊은 뮤지션 편곡 참여
영화 ‘벌새’와 협업한 뮤비도 화제
“벼락스타 된 게 힘들기도 했지만
마음 다독이는 법도 잘 알게 돼”

2일 앨범 발매에 앞서 그가 20년째 동네 터줏대감으로 정박해 있는 서울 홍대앞을 찾아갔다. 그는 앨범명을 ‘플로’로 정한 이유에 대해 “흐르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답했다. “딱딱하게 굳어지면 멈출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흘러가게 되는데.”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지 30여년이 지났어도 그에겐 여전히 소녀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30주년을 맞아 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팬들이 ‘언니만 30주년 아니고 저희도 30주년이에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사에 다니는 친구를 필두로 30명이 모여 지난해 봄에 태국 코팡안에 다녀왔어요. ‘섬’(2010)이라고 제가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노래가 있거든요. 그랬더니 너무 좋다며 여름에 2차로 제주도로 또 떠나고. 제 팬들이 좀 극성맞아요.”
 
2일 발매된 ‘플로’ 앨범 재킷. [사진 브리즈뮤직]

2일 발매된 ‘플로’ 앨범 재킷. [사진 브리즈뮤직]

덕분에 앨범 발매가 생각보다 늦어졌다면서도 그의 얼굴엔 웃음꽃이 떠날 줄을 몰랐다. 30년 차 뮤지션이 됐다 해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유대관계이기 때문이다. “곡 작업을 하려면 조용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집 안에 손님이 바글바글하니 도저히 잔칫상을 차릴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추석 다 끝나고 전 부치는 셈이 됐네요.”
 
하여 그의 시선도 항상 팬들을 향한다. 자신을 위로하고자 읊조린 말도 이내 이들에게 건네는 응원이 된다. “살다 보면 마음 다칠 일이 많잖아요. 저도 그랬고. ‘담다디’로 벼락스타가 된 게 힘들어서 떠났는데 많이 외롭더라고요. 1990년대 일본이나 영국이 한국 여자 혼자 살기에 녹록한 곳은 아니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상처를 잘 받다 보니까 마음을 잘 다독이는 법도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느덧 홍대 살이 20년에 접어든 이상은은 ’여기서는 어떻게 하고 다녀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며 ’주머니가 가벼워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은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어느덧 홍대 살이 20년에 접어든 이상은은 ’여기서는 어떻게 하고 다녀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며 ’주머니가 가벼워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은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노래하는 그 스스로 음악이 지닌 치유 효과를 믿어서일까. ‘비밀의 화원’(2003)을 듣고 우울증을 이겨냈다거나 하는 간증도 유독 많은 편이다. “듣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쓰면 오히려 거리감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음악을 듣다 보면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데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거죠. 내가 먹고 있는 걸 너도 같이 먹고 힘내자, 그게 더 설득력 있다고 해야 할까요. 식약처에서 정식 인증받은 건 아니지만요. 하하.”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팬들이 새로운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15집 ‘루루’(2014)가 작사·작곡부터 믹싱까지 홀로 책임지고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한 외로운 싸움이었다면, 이번에는 이규호·이능룡·박성도·강이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뮤지션들이 편곡자로 참여했다. 6집 ‘공무도하가’(1995)에 매료돼 매니저로 함께 일했던 김기정씨가 두 팔 걷고 나선 것.
 
언니네 이발관·브로콜리 너마저 등과 작업해온 마당발인 김씨는 이번 앨범 프로듀서를 맡아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친구 덕에 이번에 공부를 많이 했어요. 혼자 작업하는 게 익숙해져서 있었는데 다른 편곡자들로부터 좀 또박또박 불러 보라고 보컬 코치도 받고 신세계였죠. 저는 나무늘보처럼 리듬도 뒤로 타는 스타일이거든요. 덕분에 목소리가 13살쯤 어려진 것 같아요.”
 
신곡 ‘넌 아름다워’ 뮤직비디오. 영화 ‘벌새’의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신곡 ‘넌 아름다워’ 뮤직비디오. 영화 ‘벌새’의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레트로와 시티팝 붐을 타고 ‘언젠가는’(1993) 같은 초기 곡들이 재조명받으면서 젊은 팬들도 부쩍 늘었다. 남성듀오 1415가 최근 ‘그대 떠난후’(1989)를 리메이크해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 영상으로 만든 앨범 타이틀곡 ‘넌 아름다워’ 뮤직비디오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월 개봉한 ‘벌새’는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중이다.
 
“가사에 ‘허밍 버드’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영화랑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마치 준비한 것처럼. 저 역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타이틀 안에 갇히는 게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여성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반갑죠. 영화 속 주인공이나 관객들에게 ‘같은 얼굴의 꽃은 없어’ ‘같은 길을 가는 별은 없어’ 등의 노래 가사를 전해주고 싶기도 했고요.”
 
앨범을 준비할 때면 습관처럼 여행을 떠났던 그는 이번에는 일상에 머무르며 작업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좀 편찮으시기도 했고 이제 부모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나이가 됐잖아요. 5년 동안 음반이 안 나온 게 저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일상을 완전히 중심에 놓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평화롭기도 하고. 이 정도 순산이면 곧 또 음반 낼 수 있겠다 싶던데요.” 오는 9~10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5년 만의 단독 공연 ‘슬로 플로’도 준비돼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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