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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통 벗은 ‘근육질’의 백조…여성 뺨치는 섹시한 날갯짓

[아티스트라운지] ‘백조의 호수’ 안무가 매튜 본

남자 백조와 영국 왕실스캔들을 소재삼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9년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한국을 찾는다. [사진 LG아트센터]

남자 백조와 영국 왕실스캔들을 소재삼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9년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한국을 찾는다. [사진 LG아트센터]

순백의 튀튀를 입고 수줍은 듯 날개 밑으로 숨는 우아한 여자 백조 대신 야성미 넘치는 깃털바지에 웃통을 벗고 유혹하듯 날개를 비트는 섹시한 남자 백조.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10월 9~20일 LG아트센터)가 9년 만에 한국 무대를 찾는다. 1995년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탄생해 2013년까지 세계를 누벼온 매튜 본의 ‘백조’가 이번 시즌 꽃단장을 새로 하고 투어를 재개한 것이다.

9년 만에 방한, 내달 9~20일 공연
여자 대신 남자 무용수로 재해석
발레 통념 깨 지각변동 일으켜

“작품에 변화준건 흥미로운 도전
관객들 즐겁게 만드는 게 우선”

 
프로덕션 측은 “무대·조명·의상을 업그레이드하고 뉴페이스를 보강했다”며 변화를 내세우지만, 사소한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초연 2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남자 백조의 존재 자체가 무용계를 넘어 문화계 전체에 커다란 지각 변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발레의 이데아 격인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혁명의 아이콘으로 뒤집은 힘의 원천은 뭘까. 매튜 본에게 e메일로 물었다.

 
“우리는 고전발레가 아니라 현대무용을 하는 단체잖아요.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할 아이디어가 필요했죠.”

  
가장 현재적이고도 영원한 소재

 
남자 백조와 영국 왕실스캔들을 소재삼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9년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한국을 찾는다. [사진 LG아트센터]

남자 백조와 영국 왕실스캔들을 소재삼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9년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한국을 찾는다. [사진 LG아트센터]

1995년, 컨템포러리 무용단을 이끄는 젊은 안무가로서 ‘백조의 호수’ 재해석에 도전한 매튜 본의 아이디어는 ‘시사적인 주제’였다. 당시 연일 언론을 도배하던 뉴스는 다이애너비와 찰스 황태자, 사라 퍼거슨과 마가렛 공주에 관한 왕실 스캔들이었다. “작품을 만들 당시 그 이야기가 매일 같이 들려왔어요. ‘진짜 자신의 모습, 혹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는 왕자’란 매우 시사적인 주제였죠. 초연 때 저는 이 내용이 주목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론 남자 백조가 더욱 주목 받았어요.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정치와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그의 말대로 대중이 주목한 건 남자 백조의 등장이었다. 남성적 강인함과 여성적 섬세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백조의 안무는 성에 대한 이분법을 넘어선 ‘제3의 성’으로 읽혔고, 양성성과 섹슈얼리티의 전복은 매튜 본 작품세계의 중요 코드가 됐다.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백조의 호수’ 이미지를 지워버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남자 백조들이 그 역할을 잘 해냈어요. 남자 백조가 춤추는 이미지는 매우 상징적이었고,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던 거죠.”

 
‘남자 백조’의 위대함은 발레에 있어 남성성의 스펙트럼을 넓힌 데 있다. 여성 무용수 중심의 고전발레에 대한 도발로서 섬세한 남성서사를 성공적으로 펼쳐낸 것이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의 클라이맥스는 남녀주인공의 사랑의 파드되지만, 그의 ‘백조’에서 두 남자의 파드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으로 보인다. 그도 “사랑받지 못한 외로운 남자의 이야기”라고 인정했다. “제게 있어 그 듀엣은 사랑 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장면입니다. 제 작품 속 ‘왕자’는 아주 냉정하게 양육되어 사랑과 보살핌을 어디서도 찾지 못한 사람이고, ‘백조’는 ‘왕자’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를 상징하죠.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라 생각해요.”

 
발레를 향한 소년의 꿈을 담은 성장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는 발레리노가 된 성인 빌리(아담 쿠퍼)가 ‘백조’로 도약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담 쿠퍼가 연기한 매력적인 남자 백조가 모든 남자무용수들의 로망이 된 것이다. 매튜 본은 애초부터 ‘원조 남자 백조’로 당시 로열발레단의 떠오르는 스타였던 아담 쿠퍼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함께 실제 백조를 찍은 비디오를 보며 백조의 움직임에서 거칠고 공격적인 면을 포착했고, 이를 미적으로 아름답고도 긴장감 넘치게 표현할 방법을 함께 고심했다.

 
매튜 본. [사진 LG아트센터]

매튜 본. [사진 LG아트센터]

“아담과 저는 화보 촬영을 먼저 하며 안무를 함께 짜기 시작했어요. 아담은 이 작품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입니다. 단지 그의 퍼포먼스가 뛰어났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는 당시 우리 무용단에 특별한 뭔가를 가져다주었죠. 당시 독특하고 재미있는 단체로 알려져 있던 우리에게 아담이 진중함을 더해줬고, 작품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백조를 맡은 윌 보우지어와 맥스 웨스트웰도 아담의 춤에 매료되어 댄서가 됐고, 리허설 현장을 방문한 그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고. “‘백조의 호수’는 우리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어려운 작품이에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이며, 그런 극도의 신체성이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죠. 백조들은 넘치는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충분히 섹시해야 해요. 나는 그들에게 강인한 무용수인 동시에 매우 강력한 연기자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매튜 본은 자칭 ‘스토리텔러’다. 단지 아름다운 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춤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흑조의 킬링파트인 ‘32회전 푸에테’ 같은 고도의 테크닉은 없다. “저희는 고전 발레단이 아니고, 관객들이 저희 공연에 기대하는 것도 뭔가 다른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 공연은 발레·현대무용·사교댄스·뮤지컬 등에서 골고루 영향 받은 ‘댄스 씨어터’이고, 제 안무는 늘 이야기에 봉사합니다. 고전발레같은 특정 동작들 보다 이야기와 경험이 핵심이죠.”

  
젠더 이분법 파괴 … 남자발레 재발견

 
이번 공연에서 백조를 맡은 맥스 웨스트웰. [사진 LG아트센터]

이번 공연에서 백조를 맡은 맥스 웨스트웰. [사진 LG아트센터]

그의 스토리텔링은 누구나 아는 고전을 현대적 콘텐트와 결합해 서사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흔한 고전 비틀기 수준이 아니라 동시대 문화코드를 기발하게 적용한 클래식과 모던의 2중 구조로 재미와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백조의 호수’가 히치콕의 영화 ‘새’의 이미지를 차용해 심오한 심리극으로 거듭나거나, ‘호두까기 인형’의 배경을 ‘올리버 트위스트’의 고아원으로 옮겨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고딕소설 ‘드라큘라’와 영화 ‘트와일라잇’의 설정을 덧입혀 공감도를 끌어올리는 식이다.

 
평면적인 캐릭터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진화된다. 단순한 동화 속 왕자가 ‘백조’에서는 동성애를 품은 외로운 남자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뱀파이어가 되면서까지 사랑을 기다리는 남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리허설 과정에서 모든 댄서들은 영화, 소설, 역사책 등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든 것들을 사용해 등장인물에 대한 서브 텍스트를 만들어냅니다. 모든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죠. 그러다보니 작품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가고 모든 움직임 뒤에는 그 동기가 존재하게 됩니다. 관객들은 공연을 볼 때마다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들을 가져가게 되죠. 관객들이 제 작품을 계속 보고싶어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래선지 그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TIME)로 꼽히며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쏟아내고 있다. ‘백조의 호수’는 1996년 런던 피카딜리 극장에서 120회를 올려 웨스트엔드 역사상 최장 공연된 무용 작품으로 기록됐고, 1998년 브로드웨이에서도 124회를 올려 역시 최장 무용 공연 기록을 갈아치웠다. ‘백조’ 뿐만 아니다. 런던에서 8주간 전회 매진으로 자기 기록을 갱신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2012)를 비롯해 2016년작 ‘레드 슈즈’, 올해 초연한 ‘로미오와 줄리엣’도 줄줄이 흥행에 성공했다.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만드는 게 우선이고, 생각할 거리까지 준다면 멋진 이야기가 될 거에요. 하지만 청중에게 사전 지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은 그저 티켓을 사서 즐기기만 해야죠.”

 
이런 ‘관객 제일주의’는 무용 공연의 저변 확대로 이어졌다. 단 한번도 무용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무용팬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이번 시즌 ‘백조’를 업그레이드한 이유도 “아직 못 본 젊은 세대를 위해서”라고 했다.

 
“많이 사랑받았던 작품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흥미로운 도전이죠. 24년이나 지났기에 작품을 리프레시할 좋은 기회였어요.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조명 디자이너 폴 콘스타블의 참여입니다. ‘백조의 호수’를 전혀 본 적이 없던 폴에게 완전히 다른 접근을 요구했고, 완전히 새로운 캐스트들이 등장하죠. 그들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백조’를 계속 살아있게 할 겁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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