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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마지막 피아니스트의 영면, 91세 바두라 스코다의 삶

25일 별세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25일 별세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가 2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별세했다. 91세. 20세기 피아니스트의 계보에 있었던 바두라 스코다는 프리드리히 굴다, 외르크 데무스와 함께 ‘빈 삼총사’로 불렸다. 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의 도시인 빈의 정통성을 잇는 인물이었다. 투병 중에도 5월 빈에서 독주회를 했던 바두라 스코다는 10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내한 공연도 앞두고 있었다.

세상 떠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를 추억하며

바두라 스코다에게 빈에서 4년동안 배웠던 피아니스트 박상욱(29)이 고인을 기억하는 글을 보내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피아니스트 박상욱과 생전의 파울 바두라 스코다, 신박 듀오의 멤버인 피아니스트 신미정.(왼쪽부터). [사진 박상욱 제공]

피아니스트 박상욱과 생전의 파울 바두라 스코다, 신박 듀오의 멤버인 피아니스트 신미정.(왼쪽부터). [사진 박상욱 제공]

19일 전세계 음악계가 시끌벅적했던 사건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많은 사람이 놀랐고, 결국 오보로 밝혀졌다. 나는 선생님이 암으로 고생하시고 계신 걸 알고 있었기에 이 잘못된 소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부인이신 엘리자베스 사모님이 사람들에게 “아픈 건 맞지만 아직 돌아가시진 않았다. 그는 병과 아직 사투중이다. 그 기사는 오보이니 믿지 말아라” 이런 답을 보내왔을 때야 안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였다. 선생님은 결국 25일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선생님께 배울 게 아직 많았는데…. 선생님 건강이 안 좋아져서 마음 한켠에는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 준비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항상 계실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고 함께 했던 시간을 새벽까지 떠올렸다.
 
많은 빈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그와 공부했고 그의 모차르트ㆍ슈베르트 음악은 빈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말 그대로 빈 음악 그 자체였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런 것들을 배우고자 또 느끼고자 전세계 피아니스트들은 그의 마스터클래스 혹은 그의 연주회와 음반에 매달렸다. 내가 속한 피아노 듀오 팀인 신박듀오는 운 좋게도 빈 유학 시절 바두라 스코다 선생님의 마스터클래스(공개 레슨)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ARD 국제 콩쿠르 참가를 앞두고 있었다. 다른 피아니스트 친구들은 모차르트의 솔로 피아노 협주곡을 가지고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지만 우리는 모차르트의 두 대 피아노 협주곡 KV 365를 선보였다.
 
고인이 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고인이 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 스코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앞의 솔로 협주곡을 레슨하실 때와는 달리 선생님은 한껏 밝아진 표정을 지으셨다. 이 곡에 남다른 애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듣는 내내 흐뭇해하셨다. 연주가 끝나고 선생님은 “이 곡은 내가 예전부터 아주 오래도록 연주했다. 외르크 데무스와, 또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수없이 작업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좋아하는 곡”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마스터클래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사실 바두라 스코다는 그때도 연세가 꽤 있으신 노년의 피아니스트이셔서 우리는 활기차거나 에너지 넘치는 레슨은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의 큰 오산이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피아노 두 대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것도 빠른 걸음으로) 열정 넘치는 레슨을 보여주었다.  
 
음악 앞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해맑게 웃었고 또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시고 중간중간 목소리로 노래하며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셔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자신도 오랜 시간 데무스와 피아노 듀오곡들을 많이 연주했었고 그때의 시간이 행복했고 좋았다며 회상했다. 오늘 너희들과의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고 하시며 그렇게 바두라 스코다 선생님과의 마스터클래스는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아마 선생님은 자신이 듀오 연주 했을 때를 잠시 떠올리셨던거 같았다.
 
선생님을 다시 만난건 2015년 9월에 열린 ARD 국제 콩쿠르였다. 선생님은 그해 콩쿠르 심사위원장으로 나오셨는데 나중에 콩쿠르 기간 중 지나치다 뵙게 되면 “몇개월 전 학교에서 마스터 클래스 받았던 아이들이 저희에요!”하고 인사나 드려야지 했는데 워낙 ARD 콩쿠르 자체가 규모도 크고 나름의 경비가 삼엄하다보니 세미 파이널 연주 전까지는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이 말한마디를 섞을 수 없었다.  
 
그러다 세미파이널이 끝나고 파이널리스트를 호명한 후에 처음으로 심사위원들과 파이널리스트들이 서로 인사하는 자리가 잠깐 생겼다. 신박듀오는 세미파이널에서 브람스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34b를 포함한 한시간정도의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바두라 스코다 선생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오셔서 “너희 예전에 나한테 마스터클래스 받았던 친구들이지? 잘 기억하고 있다”면서 세미 파이널에서 연주한 너희의 브람스가 아주 좋았다면서 본인이 더 흥분된 상태로 우리에게 칭찬을 하셨다. “너희가 빈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연주를 할수있는거 아니겠느냐”며 선생님은 빈 출신 피아니스트로서의 자부심을 보이셨다. 그만큼 빈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셨고 그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했다.
 
우리는 그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했다. 시상식 후 심사위원들과 입상자들이 다같이 즐기는 파티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또 찾아 오셔서 첫 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우리가 연주한 모든 곡에 관하여 자신이 느꼈던 것을 세세히 얘기 해주셨다. 이런 부분은 너무 좋았고 이런 부분은 아쉬웠다며 여러가지 생각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매 라운드마다 모든 참가자가 지정곡처럼 연주해야했던 모차르트는 너희가 가장 빼어났다”며 정말 잘 연주했다고 칭찬을 아끼시지 않으셨다. 그러면서 “너희가 빈에서 계속있으면 나와 공부해 보지 않을래?”라고 하셨다. 우리는 너무나 기뻤다. 이런 대가에게 배울수 있는 기회가 언제 있을까. “당연하죠 영광입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유럽에서 중요한 연주를 앞두고 가끔 선생님을 찾아가 2~3시간씩 선생님과 열정적인 레슨을 받았다. 처음 레슨 받으러 가기전 바두라 스코다 선생님과 공부하게 됐다고 빈 음대 은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잘됐다며 좋아하시면서도 걱정어린 표정으로 “선생님이 호랑이 선생님이셔. 내가 예전에 배울 때 선생님은 정말 무서웠거든. 너희도 단단히 각오하고 가거라”고 하셨다. 또 어떠한 말을 들어도 상처로 받아들이지 말아라 신신당부를 하셨다. 레슨가는 게 살짝 두려웠다.  
 
그렇게 긴장하고 처음 선생님 댁에 갔을 때 우리 둘은 선생님의 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도 크고 좋았지만 집 안이 마치 악기 박물관과 음악 도서관을 보는거 같았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뵈젠도르퍼 풀 사이즈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띄었고, 옆에 함머 클라비어가 눈에 보였다.  
여기서 레슨하나 싶었는데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큰 거실 중앙에 스타인웨이와 뵈젠도르퍼 콘서트용 풀사이즈 그랜드 두대가 나란히 마주 보고있었다. 우리는 집안에 콘서트용 피아노가 세대가 있는 것에도 놀랐지만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저기 더 안쪽에는 악기가 더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피아노 부자’ 선생님과의 레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호랑이 선생님이셨다는 말을 잊을 수가 없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선생님도 세월을 드셔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신 건지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항상 밝은 미소를 띄고 계셨다.
 
우리가 처음으로 가져갔던 곡은 모차르트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모차르트가 유일하게 남긴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인데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까다로워서 피아니스트의 실력이 낱낱이 밝혀지는 곡이다. 선생님은 누구보다 이곡에 대해 잘 아셨다.  재미있었던 건 수많은 음악관련 서적을 꺼내오셔서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렇게 치는 것이 가장 옳은 해석이다, 꾸밈음은 이래서 어떻고, 트릴은 저래서 저렇고…. 레슨 중간에도 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으면 책 여러 권을 꺼내와 하나하나 보여주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셨다. 노력하고 공부하는 학자같은 면모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더불어 레슨할 때는 에너지 넘치게 항상 본인이 직접 피아노에 앉아 우리에게 연주를 보여주려 노력했고 2시간 넘게 레슨하는 줄도 모르시고 열정을 다했다. 나중에 시계를 보고 놀라며 우리와 작업하는게 재밌고 즐거웠다고 하셨다. 호랑이 선생님께 혼쭐날줄 알았던 우리의 긴장은 싹 풀렸다.
 
피아노 솔로 곡을 레슨 받았던 시간도 잊지 못한다. 베토벤의 곡이었는데 선생님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에드윈 피셔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피셔는 거의 선생님의 모범 답안 같은 분이셨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들려주고 싶은게 있다며 오디오 쪽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베토벤 소나타 음반 여러 장을 가져와 하나하나 듣고 악보를 같이보면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중 에드윈 피셔의 음반도 있었는데 선생님은 “이 부분 정말 잘 해석하지 않았니, 하지만 다른 이 부분은 좀 별로야 잘못 해석한거 같아. 그치만 본인도 느꼈는지 나중에 이 음반에서는 그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해석했더라고” 같은 식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런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여러 자료, 악보, 논문, 책, 음반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음악에 미쳐야 진정한 음악인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척척박사처럼 답해줄 선생님이 곁에 없다니 너무나 허전하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마도 하늘에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만나 행복해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생님이 연주하셨던 슈베르트 음반을 들으며 선생님을 추모해본다. 그곳에서 아픔없이 좋아하는 음악들으시며 행복하시길.
 
박상욱(피아니스트, 신박듀오의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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