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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보다 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자
백만기 사진 백만기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43)

80대 노인분께 취재 일화를 듣게 된 적 있었다. 실컷 이야기하다 어두워지시더니 최근 우리나라의 정세가 너무 걱정된다고 하셨다. [사진 pixabay]

80대 노인분께 취재 일화를 듣게 된 적 있었다. 실컷 이야기하다 어두워지시더니 최근 우리나라의 정세가 너무 걱정된다고 하셨다. [사진 pixabay]

 
어느 기관에서 후원하는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80대 노인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신문기자 출신의 언론인이었다. 같은 신문사에 근무했던 지인의 이름을 말하자 자신도 잘 아는 후배라고 반긴다. 우리 사회는 나라가 작아선지 한 사람만 건너면 거의 아는 사이다. 노인은 젊었을 적 세계 각국을 돌며 취재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한참 지나간 시절을 얘기하다가 국내 정세에 이르자 그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지금처럼 나라가 걱정된 적이 없다고 한다. 암울한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도 희망이 있었는데 요즘엔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세대는 한국 전쟁 후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아프리카로 날아가 신발을 팔았고 중동 모래바람 속에서 땀 흘려 번 돈을 고국에 보낸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셈이다. 선배 세대가 이룩한 경제적 안정을 뒤에 오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 같아 공연히 죄송하다.
 

생명의 끈 길다고 좋은 걸까?

화제를 바꾸어 나이를 여쭈어보았다. 올해 82세라고 한다. 친구들의 근황을 물었더니 10명 중 6명은 생을 마감하였거나 와병 중이었다. 얼마 전 친구가 동창회 명부를 보며 15%의 동기 이름이 지워졌다고 하는데 10여 년 후면 그 숫자가 60%로 늘어날 터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기대수명이 79세이니 그럴 만도 하다. 노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5년만 더 살고 싶다고 한다. 지금의 건강상태로 미루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옛날부터 장수를 오복의 하나로 꼽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를 보면 동서를 막론하고 모두 오래 살기를 원했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마땅히 그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노인보다 일찍 생을 마감한 6명은 현재 생존해 있는 4명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인가. 만약 그가 5년 더 생존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마침 페이터의 산문으로 유명한 영국의 비평가 월터 페이터가 답을 해주었다.
 
“누가 내일 너는 죽을 것이라고, 아니, 늦어도 모레는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일 죽는 것보다 모레 죽는 것이 너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되겠는가? 따라서 내일 죽지 않고 일 년 후 또는 이년 후, 아니면 십년 후에 죽는 것이 더 귀한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없애도록 해라.” 
 
순조의 막내딸인 덕온공주 돌상에 올랐던 오색실타래. 아이가 장수를 하기 바라는 마음에 올린 것이다. 오래전부터 장수는 오복의 하나로 꼽으며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진 단국대]

순조의 막내딸인 덕온공주 돌상에 올랐던 오색실타래. 아이가 장수를 하기 바라는 마음에 올린 것이다. 오래전부터 장수는 오복의 하나로 꼽으며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진 단국대]

 
사람마다 신장이 다 다르듯이 생명의 끈도 다 다를 것이다. 신장이 크다고 행복한 것이 아닌 것처럼 생명의 끈이 길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복은 길고 짧음으로 가늠할 문제가 아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나 충실히 살았는가로 판단할 일이다.
 
나이 지긋한 환자가 병원에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사에게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죽고 사는 것은 인생의 문제이지 의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일 뿐이다. 특별히 인생 수업을 받았거나 죽음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젊은 의사는 이렇다 할 인생 경험도 없다.
 

죽음, 스스로가 주도적 자세 보여야

죽음에 관해서는 오히려 노인 스스로가 주도적인 자세를 보이고 의사는 그를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임종은 나이 든 사람이 남은 가족에게 가르침을 남기고 떠날 마지막 기회다. 그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느라 놓쳐서는 안 된다. 가족도 노인이 위엄을 잃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야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을 바꾼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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