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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중국서 건너간 유럽 여인의 사치품

17세기, 중국을 방문했던 유럽 동인도회사의 관계자와 선교사, 군인들은 중국에서 차와 비단, 도자기를 수입하는 동시에 기념품으로 중국의 부채들을 구입해 유럽으로 가져갔다. 상아나 거북껍데기, 칠기와 같은 다양하고 귀한 소재로 제작된 중국의 부채는, 유럽에서 제작한 부채들과는 다른 형태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럽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속 한 장면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속 한 장면

당대 유럽에 수출돼 여성들의 손에서 화려함을 과시하던 중국 부채를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됐다. 2020년 2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화정박물관에서 2019년 하반기 특별전 <유럽으로 건너간 중국부채>가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부채 60여점과 유럽 부채 20여 점, 중국 회화 공예 10여점 등이 전시된다.  
 
유럽에서 부채는 15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중국·일본에서 부채를 들여오기 시작한 뒤, 16세기 유럽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으로 치면, 샤넬백이나 롤렉스와 같은 사치품이었다. 루이14세에 이르러 중국 부채 제작 기술이 도입됐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반에 부채가 퍼졌다.
 
17·18세기 무렵에는 유럽여성들 사이에서 부채는 신분의 상징이자 개인의 미적 취향, 수준을 드러내주는 필수품이 됐다. 부채는 장식으로써의 기능 외에도 무언의 대화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부채를 왼쪽 뺨에 두면 '아니오', 오른쪽 뺨에 두면 '네', 부채를 왼손으로 돌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있어요'라는 의미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작품 '부채를 든 소녀(Girl with Fan)'(1881)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작품 '부채를 든 소녀(Girl with Fan)'(1881)

이렇듯 당시 부채의 용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당시 교역의 중심지였던 광저우 일대의 상인들과 부채 장인들은 중국의 다양한 부채들을 수출하는 동시에, 서구 시장의 요구에 호응하여 수출용 부채를 따로 제작했다. 서구 시장에서 유행하는 크기와 형태 및 소재들을 반영한 것. 완성된 부채는 물론, 갓대나 부챗살, 또는 부채그림과 같은 반제품들도 수출되어 유럽에서 나머지 부분을 덧붙여 부채를 완성하는 일도 흔했다. 한편으로 광저우를 출입하는 상인들을 통해 가문이나 개인의 문장, 이니셜을 넣어 부채를 제작할 수도 있었다. 이는 당시 유럽인들의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브리제 부채 Brise Fan, 중국, 19세기, 상아象牙 부채의 중앙에는 이니셜, 왼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그리스신화 주제의 내용이, 오른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왼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있는 기독교의 성인聖人 마르코 복음사가福音史家가 묘사되어 있다. 의자 다리에는 사자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상징이다.

브리제 부채 Brise Fan, 중국, 19세기, 상아象牙 부채의 중앙에는 이니셜, 왼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그리스신화 주제의 내용이, 오른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왼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있는 기독교의 성인聖人 마르코 복음사가福音史家가 묘사되어 있다. 의자 다리에는 사자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상징이다.

브리제 부채 Brise Fan, 중국, 19세기, 상아象牙 부채의 중앙에는 이니셜, 왼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그리스신화 주제의 내용이, 오른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왼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있는 기독교의 성인聖人 마르코 복음사가福音史家가 묘사되어 있다. 의자 다리에는 사자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상징이다.

브리제 부채 Brise Fan, 중국, 19세기, 상아象牙 부채의 중앙에는 이니셜, 왼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그리스신화 주제의 내용이, 오른쪽의 원형 문양판에는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왼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있는 기독교의 성인聖人 마르코 복음사가福音史家가 묘사되어 있다. 의자 다리에는 사자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상징이다.

특히 유럽에 수출된 대표적인 부채는 '채색 풍속화 접선(彩色風俗畵摺扇)'과 '상아 부채'다. 채색 풍속화 접선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 일대에서 수출용으로 제작된 부채 중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부채의 앞면에는 인물풍속을, 뒷면에는 꽃과 새를 주로 그려 넣었다.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화려하게 채색됐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얼굴은 상아를 작고 얇게 잘라 붙이고 의복은 비단을 오려 붙여 장식했다. 이를 두고 서구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붙였다고 하여 ‘어플라이드 페이시스 팬(Appplied Faces Fan)’이라 했는데, ‘만다린 팬(Mandarine Fan)’이라고도 통용됐다. 
브리제 부채 Brise Fan, 중국, 18세기 말-19세기, 상아象牙

브리제 부채 Brise Fan, 중국, 18세기 말-19세기, 상아象牙

상아를 조각해 제작한 부채 또한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다.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의 교역을 책임지던 본항행(本港行)과 서양 상인과의 교역을 전담하던 광저우의 공행(公行)등을 통해 전세계 각지의 상아가 광저우로 수입됐다. 일찍이 상아조각 기술이 발달했던 광둥성 일대의 장인들을 기반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상아 부챗살과 갓대 등이 활발히 가공됐다. 동시에, 부채 전체를 상아로 조각하여 장식한 브리제 부채도 다량 수출됐다. 이는 특히 18세기 후반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큰 인기였다.  
 
이외에도 대모(玳瑁, 거북)와 단향목(檀香木), 자수(刺繡), 법랑(琺瑯), 칠기(漆器), 나전(螺鈿)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 부채들이 널리 제작, 수출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부인 '올가 코클로바'의 사진(Olga Khokhlova in Picasso's Montrouge studio) 1918

파블로 피카소의 부인 '올가 코클로바'의 사진(Olga Khokhlova in Picasso's Montrouge studio) 1918

스페인 출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그림 속에도 유럽에 수출된 중국 부채가 등장한다. 피카소는 부인 '올가 코클로바'를 찍은 사진을 보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사진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림에서는 올가 코클로바가 손에 쥔 부채가 선명하게 표현됐다. 그녀가 갖고 있던 부채는 채색 풍속화 접선이다.  
 
이들 부채들은 특유의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당시의 서구 사회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며, 상당한 수량이 수출되어 현재도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전시관에 진열된 중국 부채를 통해, 생산 지역으로서의 중국과 소비 지역으로서의 유럽 모두의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볼 수 있으며, 광저우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중국과 유럽의 치열한 교역의 흔적, 그리고 당시의 미술과 공예의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다.  
 
차이나랩 임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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