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노들섬이 온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한강예술섬 탄생! 이런 문구의 광고가 서울 곳곳에 나붙은 적이 있다. 그 섬은 노들섬이었다. 오페라극장·음악당·미술관이 포함된 문화단지를 조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예술섬은 결국 탄생하지 않았다. 서울시 의회에서 근거 조례를 폐지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의회를 설득해야 할 시장은 엉뚱하게 학생 무상급식 문제로 사퇴해 버렸다. 예술은 사라지고 섬만 남았다.
 

좌초한 한강예술섬 사업
새 노들섬은 사람을 담는 그릇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공간
성패의 판단은 다음 세대가

저 단어 ‘문화·예술’은 만병통치약인지라 문화시설 조성하겠다면 반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문화시설의 치명적인 문제는 위치였다. 멀리서 관광객들 사진 찍을 배경이 되기는 좋아도 시민의 일상에서는 멀어 막막한 곳. 접근성 개선하려면 대중교통 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럴 때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고 한다. 운영관리비는 계속 보조되어야 하는데 이럴 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고 한다. 의회가 동의할 리가 없었다.
 
거대문화시설은 도시거점공간이다. 그 거점은 주변 도시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그 거점이 사람을 모으고 주변의 일상이 문화도시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 주변 동네경제도 좋아져야 한다. 그것이 공공투자의 선순환구도다. 거점은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노들섬에는 바꿔놓을 주변이 없다.
 
노들섬이 서울시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다음 시장은 훨씬 신중한 사람이었다. 위원회 발족·여론조사·아이디어 공모·학생 디자인캠프·전문가 워크샵이 선행작업으로 이어졌다. 사업을 추슬러야 할 때가 되었고 노들섬사업의 총괄기획가(MP, Master Planner)가 임명되었다. 직책·임무·권한이 뚜렷이 규정되지는 않았으나 공무원이 책임지기 곤란한 판단을 대신하는 자리였다.
 
총괄기획가가 설계할 대상은 건물이 아니라 사업방식이었다. 대상이 뭐든 설계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사업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사업 가치를 확인하면 사업의 방향이 드러난다. 방향이 정해지면 사업방식도 정해진다. 다음이 사업진행이다. 그래서 설계의 시작점은 항상 인문학적 질문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대상의 존재의미를 묻는 질문.
 
선행작업들의 의견은 다양했으나 공통 인식을 추리면 간단했다. 고립된 섬은 거점공간 건립에 최악이지만 이상한 실험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그러기에 율도국·네버랜드·유토피아도 모두 섬이 상정되었을 것이다. 노들섬은 접근이 어려우니 오히려 도시 내의 해방구가 되기 좋은 곳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를 보는 곳. 지구의 위협은 외계인 침공이 아니라 기후변화이며 슈퍼맨이 아니고 우리가 모두 나서야 하는 문제라고 깨닫는 곳. 압도하는 구조물이 아니고 사람들이 먼저 보이는 곳.
 
사업 순서가 바뀌었다. 건물부터 짓고 운영주체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고 운영제안을 받아 사업내용을 우선 결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공모를 거쳐 운영자가 결정되었다. 이들은 대중음악을 거점기능으로 한 문화공간을 제안했다. 공모참가자에는 대기업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경험은 없지만 이를 뛰어넘는 당선자의 에너지를 금방 파악했다. 운영자가 섬에 필요한 공간을 주문했고 이를 기반으로 건축공모전이 열렸다. 운영자만큼이나 새로운 건축가들이 당선되었다.
 
당선된 운영자가 이후 겪어야 했던 길은 단계마다 가시밭길이었다. 목적지가 옳다고 다들 동의해도 가보지 않은 길은 여전히 위험했고 사업은 비틀거리며 조금씩 전진했다. 운영자는 그 거친 길을 결국 다 헤쳐나갔다. 노들섬에 살던 맹꽁이 서식처 확보해줘야 한다는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던 신기한 상황은 이전보다 분명 한발 더 전진한 사회의 모습이었다. 공모전으로 주연 배우들이 결정되었으니 총괄기획가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한가하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화려한 오페라하우스의 예술섬 광고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기 도대체 뭘 만든 걸지 궁금할 수도 있다. 총괄기획가로서 선행작업들에서 추려내 공모전에 제시했던 가치는 이렇다.
 
“사회가 시민이 모여서 이루는 집단이라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사회와 도시는 위대한 엘리트에 의해 완결되지 않으며 완성되는 순간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섬에 다음 세대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들의 흔적을 퇴적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민주사회는 결론이 담은 가치를 넘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가치를 판단한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화려한 구조물이 아니고 가장 민주적 과정이라는 기념비다. 거기 세워진 특정한 구조물이 아니라 섬 전체가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후대에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이 공모전의 진정한 심사위원은 다음 세대의 시민들이 될 것이다.”
 
개장하는 노들섬은 물리적으로 보면 바둑판에 가깝다. 기보에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줄눈이 아니고 바둑알들이다. 노들섬에서는 섬을 채우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우리의 사회는 완성되지 않고 도시도 준공되지 않는다. 조금씩 더 나아진다고 믿으며 변화할 뿐이다. 노들섬도 결국 준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 사업의 철학이다. 노들섬은 개장일만 기억될 것이다. 그게 9월 28일 바로 내일이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