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오늘의 '미담 뉴스' …신문에서 이런 코너 보고 싶다

기자
양은심 사진 양은심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0)

“죄송한데 이 장소를 설명해 주세요. 119에 전화를 했는데 너무 느려요. 다시 한번 전화를 할 테니 설명 잘 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어떤 여자가 자꾸 강에 들어가려 해서 위험해요.”
“알았어요.”
 
강가를 저녁 산책 중이었다. 젊은 흑인이 유창한 일본어로 누군가에게 강가로 오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 또한 외국인이기에 ‘일본어를 참 잘하네’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한참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젊은이가 나에게 부탁해 온 것이다.
 
119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너무 늦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본어가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전해주는 휴대폰을 받아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늦어진 이유는 ‘관할’의 문제였다. 강을 끼고 구역이 달라지는데 경찰은 우리가 있는 강 건너에서 찾고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두 번째 전화로 이쪽 구역 경찰이 왔고 문제는 해결됐다.
 
강가를 산책하던 중 젊은 외국인이 급하게 다가와 119에 전화를 부탁했다. [사진 양은심]

강가를 산책하던 중 젊은 외국인이 급하게 다가와 119에 전화를 부탁했다. [사진 양은심]

 

강에 들어가려는 20대초반 여자

한번 철책을 넘은 것을 끌어냈다는데, 내가 전화를 하는 사이에도 그 여자는 다시 강가로 들어가려고 철책을 넘으려 했다. 그 흑인 청년은 뛰어갔고, 철책 너머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끌어냈다. 그 행동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화하는 도중 옆에 있던 청년에게 가 도우라고 했다.
 
자살하려는 것이라면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 해도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가는 어두컴컴했고 길가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야 했다. 그 여자가 흰 셔츠를 입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검은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 여자는 "소중한 물건을 떨어뜨렸어요"라며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버렸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실수로 떨어뜨렸단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의 눈에는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20대 초반의 여자아이. 어떤 사연이든 어떠한 시련이든 잘 견디고 이겨내기를 바라고 바랐다. 인생이 끝난 게 아니라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안경집에는 일본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경찰은 신고한 사람의 인적 사항을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직업 등이다. 먼저 질문에 대답한 청년이 “무직입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착한 일 했는데 누가 알선 좀 해주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직’이란 말을 듣고 나서 그의 핸드폰이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나온 접는 식이라는 걸 떠올렸다.
 
오래간만에 잡아보는 그 느낌이 전화하는 내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다. 유행에 민감할 나이의 청년, 외국 생활의 경제적 어려움은 작은 사치의 기회도 빼앗는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을 빼앗지는 않는다. 그와 나는 웃는 얼굴로 서로 수고했다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앞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가 아니라 '어디 사세요'라고 묻게 될지 모른다. [사진 pxhere]

앞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가 아니라 '어디 사세요'라고 묻게 될지 모른다. [사진 pxhere]

 
글로벌이라는 말이 친숙해진지도 오래다. 경제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일상이 국제적인 사회가 됐다. 특히 도쿄는 그야말로 ‘국제사회’다. 예전에는 외국인 쪽이 필사적으로 일본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곳곳에 외국인 직원이 있어 일본인 또한, 외국인을 이해하고 맞추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여러 나라의 사람과 공생해야 한다. ‘국적'이라는 말도 행정적인 문제 외의 분야에서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어느 나라 사람이세요’가아닌 ‘어디 사세요?’라고 묻게 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야간 대학에 다닐 때, 교육학 시간의 한때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수업 내용은 다 잊었는데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교수의 말이다. “선행과 미담만 다룬 신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외국 어디엔가 이미 있더라.” 요즘 자꾸 이 장면이 떠오른다.


국적은 죽은 말 돼야 할 단어

종이 신문보다 전자 신문이 더 읽히는 세상이다. 사진기자가 아니어도 일반인의 사진 수준도 높아졌다. 부정적 자극과 비판이 난무하는 미디어 세상에 '미담 코너'를 하나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다. 특집 코너가 아닌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담들을 다룬 코너가 있다면 각박한 세상 속의 오아시스가 되지 않을까?
 
구급차에 너도나도 길을 터준 괴산 이평터널 모습. [연합뉴스]

구급차에 너도나도 길을 터준 괴산 이평터널 모습. [연합뉴스]

 
사회적 조건을 떠나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세상. 누군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흥분할 것이 아니라 뛰어들어 도와주는 세상. 누군가가 식사 시간에 찾아왔을 때 실례라고 비판하지 않고, 숟가락 하나 얹으며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세상.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주먹밥이라도 사 와서 함께 할 수 있는 세상. 어쩌면 우리는 농경사회의 미덕을 되살려 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책을 마친 후 살짝 흥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강가에서의 일을 이야기했다. 아들이 말한다.“결과적으로 신고하고 도운 사람은 다 ‘외국인’이었네”라고. 그랬다. 솔선수범해서 도운 것은 외국인이었다. ‘이방인’이 아니다. 그 사회의 일인인 것이다. ‘국적’이나 ‘민족’같은 말은 사어(死語)가 되어도 될 단어이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