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논설위원
사업가 김기형씨의 열정
대규모 유의어사전 완성
온라인 문장교정 기능도
“말글만큼 재미난 것 없어”
지역별 방언을 살펴보는 기능도 재미있다. 예컨대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에서 ‘이제’의 사투리로 ‘곰방’ ‘시방’ ‘금시’ ‘금세’ ‘이자’ 등이 제시된다. 다국어 사전도 눈길을 끈다. 문장 번역까진 아직 안 되지만 우리말 개별 단어를 영어·중국어· 몽골어·아랍어 등 11개국 언어로 전환해준다.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과 간단한 필담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가 경쟁력으로 떠오른 시대, 이 문장검사기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사실 영어권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 10년 전 선보인 그래머리(grammarly.com)다. 어색한 단어, 그릇된 문장 등을 바로잡아준다. 고급 기능을 사용하려면 일정액을 내야 하지만 문장력을 키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단어·문법·문장 데이터베이스가 방대하게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의어·반의어·방언 등 다양한 국어사전을 만들어온 김기형 대표. ’사전이란 평생의 친구가 있어 현업 은퇴 후에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9/26/b47d580b-d386-4214-ac70-1dc91b59b3fc.jpg)
유의어·반의어·방언 등 다양한 국어사전을 만들어온 김기형 대표. ’사전이란 평생의 친구가 있어 현업 은퇴 후에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중앙포토]
여기서 퀴즈 하나. 유의어가 가장 많은 단어는? 정답은 동사 ‘생각하다’다. 낱말창고를 검색해봤다. 원인·고향·이익·앞일·이웃 등 ‘생각하다’의 대상을 분야별로 나눠보니 1차 유의어가 78개, 2차 유의어가 855개 제시됐다. ‘(원인을) 생각하다’의 경우 1차 유의어로 가늠하다·고려하다·궁리하다 등 25개 단어가, 또 ‘가늠하다’의 2차 유의어로 견주다·헤아리다·어림하다 등 16개 단어가 펼쳐졌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왜 ‘생각하다’의 유의어가 가장 많은 걸까. 산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할 게 많다는 뜻일까.
이들 사전은 한 사업가의 열정 덕분에 탄생했다. 주인공은 ‘낱말공장 공장장’ ‘낱말 창고지기’를 자처하는 김기형(58) 대표다. 그는 2000년 ㈜낱말을 차린 이후 종이·인터넷·모바일 국어사전 20여 종을 만들어왔다. 2009년 전 7권으로 완성한 『우리말 유의어 대사전』을 지난 10년간 의미별로 재분류해 이달 초 다시 온라인에 올렸다. 국어학자·IT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한 단어 한 단어를 일일이 살폈다. 흥미롭게도 그의 본업은 석유화학공장·발전소 등 플랜트 컨설팅. 유의어·반의어를 연구한 친형 김광해 서울대 교수가 2005년 타계하면서 사전 편찬을 ‘제2의 업’으로 물려받았다. 컨설팅으로 번 돈을 사전 제작에 집어넣었다. 국가·외부 후원은 전혀 받지 않았다.
- 사전은 거의 수익이 남지 않는데.
- “좋아서, 즐거워서 한 일이다.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형님의 유업을 90%쯤 이룬 것 같다. 이제 마음이 편하다. 일부 유료 서비스도 있지만 일반인도 큰 불편 없이 쓸 수 있다. 언젠가는 100% 무료 개방할 계획이다.”
- 앞으로도 할 일이 많겠다.
- “완벽한 사전은 없다. 사용자 제안을 반영하는 개방형으로 꾸려갈 것이다. 무엇보다 용례를 늘려가야 한다.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했기에 분야·용도별 다양한 사전을 만들 수 있다. 옛날에 나온 좋은 종이사전도 디지털화하고 싶다. 사장되기에 안타까운 게 많다. 곧 한글날이다. 우리말을 풍부하게 썼으면 한다. 세상을 담는 말과 글만큼 재미난 게 또 있을까 싶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