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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계 논리 깨는 카타르시스…드라마에도 ‘병맛’이 뜬다

 
tvN 금요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마트 사장 정복동(김병철)이 ’오늘 하루 다같이 꽃이 되자“며 해바라기 꽃탈을 쓴 모습이다. [방송캡처]

tvN 금요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마트 사장 정복동(김병철)이 ’오늘 하루 다같이 꽃이 되자“며 해바라기 꽃탈을 쓴 모습이다. [방송캡처]

드라마도 ‘병맛’ 시대가 오려나. B급 마이너 감성으로 치부됐던 병맛이 주류 문화인 TV 드라마까지 파고들고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 '멜로가 체질' 등
왁스 바르면 자동차에 털 나고
간접광고 밝히며 노골적인 PPL

뜬금없고 어이없어 황당한 웃음을 불러오는 ‘병맛’은 웹툰과 유튜브 세대에겐 이미 익숙한 문화 코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됐던 책 『90년생이 온다』(임홍택 지음)에서도 병맛은 ‘단순함’ ‘솔직함’과 함께 90년대생의 3대 특징으로 꼽힌 바 있다.  
지난 20일 첫 방송을 한  tvN 금요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어떤 게 병맛 드라마인지를 한눈에 보여준 작품이다. 누적 조회 11억 뷰를 기록한 김규삼 작가의 인기 웹툰이 원작으로, 웹툰의 병맛이 TV 속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논리에 따른 기승전결이 아니라 황당함으로 치닫는 ‘기승전병’이다.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TV 홈쇼핑에서 광택제를 발라 자동차에 털이 나는 과정을 시연하는 장면이다. [방송캡처]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TV 홈쇼핑에서 광택제를 발라 자동차에 털이 나는 과정을 시연하는 장면이다. [방송캡처]

드라마는 대한민국 1등 기업 대마그룹 회장이 중역 회의에서 “바르면 자동차에 털이 나는 광택제를 앞으로 우리 대마그룹 주력상품으로 출시할 생각”이라고 발표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어 경쟁사에서 털 나는 왁스를 한발 앞서 출시해 초대박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TV 홈쇼핑에선 왁스를 발라 털이 난 자동차 모습을 보여준다.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임금 옷을 입은 마트 고객만족센터 직원이 용상에 앉아 바닥에 꿇어엎드린 고객의 고충사항을 듣고 있다. [방송캡처]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임금 옷을 입은 마트 고객만족센터 직원이 용상에 앉아 바닥에 꿇어엎드린 고객의 고충사항을 듣고 있다. [방송캡처]

황당한 전개는 이날 방송 내내 계속됐다. ‘직원이 왕’인 천리마마트에선 임금 옷을 입은 고객만족센터 직원이 높은 용상에 앉아 바닥에 꿇어엎드린 고객의 사연을 듣는다. 또 국적 불명의 ‘빠야족’들이 정직원으로 채용돼 손님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운반해주는 ‘인간 카트’ 역할을 하고, “오늘 하루 다같이 꽃이 되자”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이 꽃탈을 쓰고 마트 안을 돌아다닌다. 이런 맥락 없고 뜬금없는 설정의 병맛 효과는 이순재(대마그룹 회장)ㆍ김병철(천리마마트 사장) 등 정극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 덕에 한층 강화됐다. 시청자 반응도 좋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드라마 보고 이렇게 웃기는 오랜만” “너무 신선하다” “완전 취저(취향저격)” 등의 호평이 이어졌고, 20일 1화 시청률은 3.2%(닐슨코리아 조사 결과)를 기록했다. 역대 tvN 금요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로선 가장 높은 수치다.  
JTBC '멜로가 체질'. 간접광고 장면이란 사실을 노골적으로 밝히며 안마의자 PPL을 내보내고 있다.  [방송캡처]

JTBC '멜로가 체질'. 간접광고 장면이란 사실을 노골적으로 밝히며 안마의자 PPL을 내보내고 있다. [방송캡처]

영화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첫 드라마로 주목받는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병맛의 재미가 두드러진다. 우여곡절 끝에 사귀기로 합의한 주인공 커플(안재홍ㆍ천우희)의 달달한 연애 첫 에피소드로 ‘방귀 트기’를 내세웠을 만큼 이야기 전개 방식이 엉뚱하다. 드라마 흐름을 방해하기 일쑤인 간접광고 PPL까지 병맛으로 소화했다. 극 중 드라마 제작사 직원 재훈(공명)이 “생뚱맞게 개연성 없이 한 신만 들어가면 된다”며 제안한 아이디어를 빙자해 노골적으로 간접광고임을 드러낸 간접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상상 속 장면에서 아들과 함께 등장한 한주(한지은). 간접광고 상품인 안마의자에 누워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엄마 엄마, 내가 심심하다는데 왜 엄마가 여기 누워계시죠?” “어차피 맥락은 없는 거잖니.” “우리집에 갑자기 안마기라니? 조금 뜬금없는 거 같아요.” “세상엔 여러가지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때론 거부할 수 없는 이유들이 우리의 신념을 바꿔놓기도 해. 15초 노출돼야 하니 잠시만 기다리렴.” 병맛의 허탈한 웃음을 넘어 감탄까지 자아내게 한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JTBC '멜로가 체질'. CF 감독 상수(손석구)가 허무개그 식 자문자답을 일삼으며 병맛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방송캡처]

JTBC '멜로가 체질'. CF 감독 상수(손석구)가 허무개그 식 자문자답을 일삼으며 병맛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방송캡처]

최근 ‘멜로가 체질’ 병맛의 중심축은 스타 CF 감독 상수 역으로 특별 출연 중인 손석구다. ‘욕쟁이’에 ‘싸움 대장’인 그가 다큐멘터리 감독 은정(전여빈)에게 “내가 왜 결명자차 마시는 줄 아냐”고 물었을 때 극 중 은정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잔뜩 긴장했었다. 하지만 한참을 뜸 들인 뒤 나온 그의 대답은 “고소해”.  이런 어이없는 자문자답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보육원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나한테는 이게 노는 거야. 노는 거는 중요해. 균형을 위해서. 균형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라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상수. 그리고 역시 한참을 뜸 들인 뒤 “넘어져”라고 스스로 답을 한다.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장면은 아니지만 웃음의 여운은 길다.
전문가들은 이런 병맛이 주요 문화 코드로 부상한 데 대해 “일종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격”이라고 해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성사회의 체계를 뒤집으며 그 질서에서 해방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며 “앞으로 주류 문화 코드로 정착할 가능성 크다”고 말했다. 또 “예전의 병맛 콘텐트는 아마추어들이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정상급 제작진ㆍ출연진들이 참여해 퀄리티가 점점 좋아지면서 저변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미 평론가도 “전통적인 희극 콘텐트들은 주로 풍자와 해학을 통해 웃음을 끌어냈는데, 이는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 등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을 때 가능한 방식이었다”며 “이제 그 가치 기준이 무너져버린 시대에서 의도와 의미ㆍ판단 등이 배제된 허무개그 식 병맛이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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