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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시대가 386을 '사교육 큰 손' 만들었다

“386세대는 학생 시절 계층 간 평등을 외치고, 못가진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기성세대가 되자 사교육 시장을 장악, 떼 돈을 벌고 교육 격차를 조장했습니다. 한국 교육을 망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창간기획] 386의 나라 대한민국 ②
운동권 출신 취업 막혀 학원가로
생계형 시작, 18조 시장 큰손으로
“기성세대 되자 교육격차 조장”

‘사교육 일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사교육 시장에 염증을 느끼고 떠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실제로 386세대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논할 때 사교육 이슈를 빼놓을 수 없다.
 

계층 평등 부르짖던 그들, 사교육 ‘큰 손’ 되다

취업준비생들이 학원에서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취업준비생들이 학원에서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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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사교육 시장의 ‘1세대’로 불린다. 전두환 정권이 1980년 ‘교육개혁조치’를 통해 과외교습과 학원 수강을 전면 금지하면서 한국의 사교육은 암흑기를 맞았다. 하지만 1989년 방학 중 학원 수강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1991년에는 학원 수강 허용이 각 교육감의 재량에 맡겨지면서 사교육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386세대들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이 애초부터 ‘대박’을 노리고 학원가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창기엔 상당수가 생계형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취업 시기를 놓쳤거나, 구속 경력 등으로 일반 직장 취직이 힘든 이들에게 사교육 시장은 진입문턱이 낮은 일터였다. 전교조 해직교사 상당수도 학원가로 흘러갔다. 운동권 출신으로 2000년대 초 대치동 등지에서 학원강사로 활동했던 A(51)씨는 “처음부터 큰 돈을 벌겠다거나 기형적인 교육 시장을 만들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달에 수천만원을 우습게 버는 상황이 생기면서 점점 사교육 시장의 논리에 매몰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신념과 현실의 괴리를 느낀 일부 강사들은 ‘사교육 블랙홀’에서 빠져나왔지만 이미 사교육 시장의 ‘큰손’이 돼 돌아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이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386세대와 사교육.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86세대와 사교육.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교육 1세대로 명성을 떨친 대표적 386세대는 조동기(고려대 85학번) 대표다. 고려대 총학생회 집행위원장 출신인 그는 1993년 강남대일학원의 스타 강사로 명성을 쌓은 뒤 ‘조동기국어논술학원’을 운영했다. 현재 웹툰, 웹소설 제작 유통회사인 ‘이야기뿌리와 나무’를 운영 중이다. 대일학원의 뒤를 이은 메가스터디를 설립한 손주은(서울대 81) 메가스터디 회장은 대표적 ‘학원 재벌’로 꼽힌다. 한때 ‘강동의 맹주’로 불린 서울 강동지역의 청산학원도 1980년대 ‘자주민주통일’이란 운동권 조직에서 활동한 박영재(서울대 84) 전 경기방송 대표와 최원극(한국외대 84)씨가 설립했다. 대치동에서 유명했던 ‘유레카논술학원’을 운영했던 장민성(성균관대 84)씨도 과거 사노맹 사건으로 투옥됐다.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출신인 위종욱(서울대 86)씨는 지금도 공단기(공무원단기시험) 스타 강사로 통한다.
 
정치권에 입성하기 전에 사교육 시장에서 꽤 이름이 나있던 정치인들도 있다. 정청래(건국대 85)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마포 지역에서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명성이 높았던 길잡이학원을 운영했고, 정봉주(한국외대 80) 전 민주당 의원도 외대어학원을 약 10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다.
 

‘386이 교육 시장 교란’ VS ‘교육 제도가 문제’

386세대는 교육 정책이나 입시 지형이 바뀔 때마다 누구보다 빨리 적응해 사교육 시장을 선점해왔다. 특히 90년대 초반 대학별 논술고사가 본격화되고, 논술이 대입을 가르는 중요 평가 기준이 되면서 서울 대치동을 중심으로 386세대들이 주도적으로 세운 논술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초암, 유레카논술아카데미, 조동기국어논술학원 등이 대표적이다. ‘운동권식 토론 문화’에 익숙한 386세대들에게 수천억원에 이른다는 논술 시장은 ‘금광’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게 당시 교육시장 인사들의 평이다.
 
박재원 소장은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하는 건 386세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특정 주제를 가지고 수강생들과 릴레이 토론을 벌이거나, 밤 늦게까지 뒤풀이를 하며 이야기하는 386세대의 문화가 입시 상황과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대치동의 유명 논술학원에서 일했던 한 운동권 출신 강사는 “대치동 논술학원이 이른바 ‘SKY’ 대학을 많이 보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도 무리를 해서라도 학원에 등록하는 일이 많았다”며 “당시 논술학원들은 논술, 면접은 물론 심리적인 면까지 관리해주는 선생이 있을 정도로 기업형으로 운영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손에 쥐어진 수입은 일반 대기업 월급의 5배 이상일 때도 있었고, 스스로도 놀랐다. 신념과 현실 사이에 어느정도 타협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최근 “사교육 시장에 몸담은 인생을 후회한다. 사회에 진 빚을 갚고 싶다”며 사재 300억원을 출연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물론 사교육 시장이 18조6000억원(2018년 통계청 자료) 규모로 비대해진 책임을 모조리 386세대에게 돌리는 건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다. 한때 연 18억원의 수입을 기록할 정도로 대치동 ‘스타강사’로 활동하다가 2003년 학원가를 떠난 이범 교육평론가는 “386세대가 사교육 시장의 큰 손이 된 것은 사교육 허용, 대입 제도 변경 등 시대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우연이었다”며 “특히 386세대가 도입한 인터넷 강의의 경우, 값비싼 대치동 강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누구나 들을 수 있게 하는 등 교육 기회를 넓히는 순기능도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강남 지역 재수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한 강사는 “다양한 교육 수요를 공고육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교육이 대체재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며 “매번 오락가락 했던 입시제도 등 정부 정책의 잘못은 뒤로 하고 386세대가 조성한 사교육 시장에만 책임을 돌리는 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대물림’ 비판하더니… 남다른 ‘자식 사랑’ 도마 위

조국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그럼에도 386세대와 사교육 문제를 떼놓기 힘든 건 이들이 사교육 시장의 ‘공급자’ 뿐 아니라 ‘구매자’로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386세대 부모들은 90년대 경제적 지위가 급속히 상승하자, 자녀의 ‘신분 상승’을 위해 사교육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엔 대학 졸업장만 쥐면 일자리 걱정은 없었지만 IMF 사태 이후 고용 사정이 악화되자 자녀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386세대 부모들의 경쟁이 극심해진 것이다. 이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진학에 큰 영향을 미쳐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강남을 중심으로 조기유학 붐이 생기면서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세대도 386이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연세대 86)는 “죽어라고 대치동까지 가고, 그게 안 되면 지역의 비싼 학원이라도 가는 흐름을 내 친구들이 선도했다. 외고·특목고 열풍은 386들이 부모가 되면서 생겨났거나 강화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공정·정의의 이미지를 앞세운 386세대 인사들이 자녀 교육이나 입시에서 편법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는 일이 적잖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 사회 정의를 내세우며 ‘흙수저’ 학생들의 멘토를 자처했던 조 장관은 딸의 입시 비리 논란이 불거지면서 코너에 몰려있다.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19일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 아크로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19일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 아크로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386 인사 중 한명인 유은혜 사회부총리도 청문회 과정에서 딸을 명문 공립초등학교인 서울덕수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질타를 받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 세대는 교육 형평성이나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고, 이같은 도덕적 정당성을 자신들의 이미지로 내세워 사회 기득권으로 오른 세대”라며 “이같은 386 세대의 앞뒤가 다른 모습에 국민들의 분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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