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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제품 구매 제한 조례 줄줄이 스톱 까닭은

전국 17개 광역시도의회의원들이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일본 전범기업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 제정을 다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국 17개 광역시도의회의원들이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일본 전범기업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 제정을 다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대로 시행하면 행정소송,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역풍이 예상됩니다.”
 

규제대상 명확하게 정하기 어렵고
행정소송, WTO 제소 역풍 가능성
조례 통과 서울·경기 등 5곳 재검토
12곳 지방의회도 입법 보류키로

이시종 충북지사는 23일 충북도의회가 의결한 ‘충북도·충북교육청 일본 전범기업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에 대해 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 지난 2일 충북도의회 소속 전체의원 30명이 만장일치로 의결한 이 조례안을 재의(再議) 요구했다. 재의는 자치단체장 등이 의회 의결에 이의가 있다며 안건을 의회로 돌려보내는 권한 행사다.
 
이 조례는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공공구매를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선미 충북도 의회협력팀장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조례안 검토 결과전범기업 범위가 모호하고, 특정 기업에 계약상 불이익을 제한한 지방계약법(6조 2항)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회가 앞다퉈 발의한 일본 전범기업제품 안 사기 조례가 시행을 앞두고 제동이 걸리고 있다. 전국시도의회의장 협의회는 지난 17일 서울에서 비공개 회동을 열고 관련 조례안이 발의됐거나 검토 단계에 있던 12개 의회에서 입법 절차를 보류하기로 했다. 조례가 이미 통과된 서울·경기·부산·강원·충북 등 5곳 의회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다시 한번 논의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전범기업 공공구매 제한 조례가 벽에 부딪힌 건 집행부가 난색을 보여서다. 조례안을 넘겨받은 상당수 자치단체는 “전범기업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규제대상을 정하기 어렵다”거나 “상위법 근거조항이 없다. 계약 과정에서 소송 여지가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 관계자들 역시 시도 의장들에게 “지방자치법 등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고 향후 일본과의 외교 분쟁 과정에서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례안은 대체로 자치단체·교육청 본청과 직속기관 등이 구매하는 공공물품 중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전범기업은 2012년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미쓰비시 그룹 등 299개 기업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중 현존 기업은 284개 정도다.
 
김혁동 강원도의원은 “외교부에서 우려하는 WTO 국제법 위반은 예외조항을 넣어 문제 될 것이 없다. 이 조례안은 악화한 한일 관계를 떠나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공공기관이 전범기업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학생 등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충북도와 충북교육청은 현 조례안이 정한 전범기업의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정성호 충북교육청 재무과 담당은 “조례에 특정한 284개 전범기업은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의 발표자료일 뿐 상위법에 명시된 대상은 아니다”라며 “지방자치법(22조 조례 부문)는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일본 전범기업을 규제하면서 상위법의 근거 없이 만든 조례는 자칫 지방자치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례가 행정소송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 6조 2항)은 ‘정부 조달협정 등에 가입한 국가의 국민과 이들 국가에서 생산되는 물품, 용역에 대해 차별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WTO 정부조달에 관한 협정(3조)의 ‘다른 국내에 설립된 공급자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위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행정학과)는 “조례를 의결하기 전 규제 대상과 제재 내용을 의회와 집행부가 사전에 구체적으로 논의 했어야 한다”며 “당장 일본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는 중소 무역상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실익을 따져 조례를 다듬든지 결의안 수준으로 변경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주·광주·춘천·대구=최종권·최경호·박진호·백경서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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