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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72%, 의원 44%···대한민국은 386의 나라

기획을 시작하며 

1985년 미국의 반도체 회사 인텔은 최초의 32비트 중앙처리장치(CPU, 컴퓨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장치)인 80386 CPU를 출시했다. 당시 80386 CPU를 장착한 PC를 386 PC라고 불렀다. 386 PC는 이전 모델이었던 286 PC(16비트인 80286 CPU)를 밀어내고 1990년대 초반 한국의 PC 시장을 장악했다. 386 PC는 90년대 중반부터 후속모델인 486 PC가 등장하면서 짧은 전성기를 마감했다.
  

정치·경제 권력 15년간 틀어쥐어
조국·안희정 등 논란도 잇따라
“기득권 급급” 거센 반발 터져나와
“불평등 치유자 아닌 수혜자됐다”

그런데 97년 경부터 정치권과 언론에 ‘386 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386 세대는 단순한 ‘60년대 출생자’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80년대는 대학 취학율이 평균 30% 안팎에 불과한 시절이었고, 당시 대학가는 민주화투쟁과 진보이념이 휩쓸고 있었다. 
 
따라서 386 세대라는 신조어엔 장차 사회의 상층부로 진입할 가능성이 큰 고학력층이란 의미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경험을 직ㆍ간접적으로 공유한 집단이란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2000년 4.13 총선에 출마하는 민주당 386세대 공천자들.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이인제(가운데) 전 의원과 함께 이인영(오른쪽 셋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임종석(오른쪽 둘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자리했다. [중앙포토]

2000년 4.13 총선에 출마하는 민주당 386세대 공천자들.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이인제(가운데) 전 의원과 함께 이인영(오른쪽 셋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임종석(오른쪽 둘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자리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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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386 세대는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 총선때 80년대 학생운동 지도부가 대거 정계에 입문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386 세대는 2004년 총선때 탄핵 역풍에 힘입어 단박에 정치권의 신주류로 떠올랐다. 뒤이어 관계ㆍ기업ㆍ법조ㆍ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386 세대는 수퍼파워로 부상했다. 
 
386 세대가 486(40대가 된 386세대)을 거쳐 586이 되면서 이들은 한국 사회의 핵심부를 공고히 장악했다. 386 PC는 고대의 유품(遺品)이 됐지만, 386 세대는 문재인 정부에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15년 넘게 이어지는 386의 장기집권은 최근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386 세대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해 ‘헬조선’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속 세대에게 배분돼야 할 부와 권력을 386 세대가 오랫동안 독점하면서 ‘세대간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석도 나왔다. 20대때 분배정의를 부르짖던 386 세대가 “지금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니라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6일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조국 법무부장관. 오종택 기자.

지난 6일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조국 법무부장관. 오종택 기자.

나아가 조국 법무부 장관,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대표적 386 인사들을 둘러싼 추문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386 세대의 도덕적 권위까지 크게 실추됐다.
 
이제 한국 사회의 질적 도약을 위해 386 세대의 프레임을 극복하는 건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탐사하다 by 중앙일보’는 7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를 통해 386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집중 해부한다.
 

학생운동 지도부, 소련 붕괴후 대거 정치권으로 

386 세대의 진격은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80년대에 급진적 변혁론을 추구했던 386세대의 학생운동은 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에 큰 충격을 받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학생운동 지도부의 상당수는 기성 정치권에 투신해  변신을 모색했다.
  
386 세대(1960~69년생)의 국회입성은 1996년 총선에서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민석(82학번, 당시 32세)이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386세대의 등장이 본격화되건 2000년 총선부터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과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새 피 수혈’이란 명분아래 386세대(당시 31~40세)를 대거 공천했고 이중 14명이 금뱃지를 달았다. 전부 지역구 당선자였다.
 
민주당에선 임종석(한양대 86, 전대협 3기 의장)ㆍ송영길(연세대 81, 총학생회장), 한나라당에선 오세훈(고려대 79)ㆍ원희룡(서울대 82)ㆍ김영춘(고려대 81, 총학생회장) 등이 당시 초선으로 국회에 들어온 대표적 386세대 인사들이다. 참고로 2016년 총선때 30대 이하 당선자는 지역구 1명, 비례대표 2명에 불과했다. 그보다 16년전 386세대 14명의 국회 진출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탄핵 역풍 등에 엎고 대거 국회 입성  

386세대의 전성기는 2004년 총선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선거판을 덮친 탄핵역풍으로 진보적 성향의 386세대(당시 35~44세)가 국회에 대거 입성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때 386 세대 당선인은 68명으로 4년전 선거에 비해 급증했는데 특히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서만 44명이나 됐다. 열린우리당 386세대 의원들에겐 탄핵역풍 때문에 손쉽게 뱃지를 달았다는 의미로 ‘탄돌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당시 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울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한열 기념사업회 제공]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당시 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울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한열 기념사업회 제공]

이인영(고려대 84, 전대협 1기 의장), 오영식(고려대 85, 전대협 2기 의장)ㆍ우상호(연세대 81, 총학생회장), 윤호중(서울대 81), 김현미(연세대 81), 서갑원(국민대 81), 강기정(전남대 82), 조정식(연세대 82), 이광재(연세대 83), 김태년(경희대 83), 최재성(동국대 84), 정청래(건국대 85), 백원우(고려대 85), 한병도(원광대 86, 총학생회장), 복기왕(명지대 86, 총학생회장) 등이 그들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386세대(당시 39~48세)는 68명이 당선해 다소 주춤했다. 통합민주당(열린우리당의 후신)에선 이때 특별히 주목할만한 뉴페이스가 없었지만, 오히려 한나라당에선 권영진(고려대 80)ㆍ신지호(연세대 81)ㆍ정태근(연세대 82, 총학생회장)ㆍ신성범(서울대 82)ㆍ권택기(서강대 84)ㆍ김용태(서울대 91) 등의 386세대가 대거 초선으로 국회에 들어와 보수진영내 개혁블럭을 형성했다.
 

386이 누린 새 피 수혈 혜택, 후속세대는 못누려 

역대 총선별 당선인 연령대 분포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역대 총선별 당선인 연령대 분포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12년 총선때 386세대(43~52세) 당선인은 100명으로 급증했다. 당선자 3명중 한명이 386 세대가 됐다. 민주통합당에서 유은혜(성균관대 81)ㆍ전해철(고려대 81)ㆍ은수미(서울대 82)ㆍ박수현(서울대 83 중퇴)ㆍ서영교(이화여대 83)ㆍ진선미(성균관대 84)ㆍ김기식(서울대 85)ㆍ진성준(전북대 85)ㆍ임수경(외국어대 86) 등이, 통합진보당에선 이석기(외국어대 82)ㆍ이상규(서울대 83) 등이 등장했다.
 
2016년 총선에선 386세대(당시 47~56세) 당선인이 132명으로 전체의 44.0%를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국회의 대세가 된 것이다. 특히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23명의 당선인 가운데 386세대가 66명(51.2%)으로 과반을 넘었다. 
 
주목할 대목은 386세대는 30대 때부터 국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386세대 이후의 세대는 아직도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30대 당선인의 수는 1996년 9명→2000년 13명→2004년 23명으로 증가세였지만 386세대 대부분이 40대에 진입한 2008년 총선에선 7명으로 확 감소했다. 
 
이후엔 2012년 9명→2016년 3명(20대 1명 포함)으로 씨가 마를 지경이 됐다. ‘새 피 수혈’의 혜택은 386 세대만 고스란히 누리고, 후속 세대에겐 국물도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다.
 

정치권 발맞춰 기업도 386 강세 

이런 현상은 청와대ㆍ행정부 등에서도 비슷하다. 대통령이 최측근에게 맡긴다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경우, 김대중 정부에선 장성민(서강대 86)이 36세에 임명됐고, 노무현 정부에선 이광재가 38세에 발탁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정상황실장은 386 세대(윤건영, 국민대 88)가 맡고 있는데, 임명 당시 나이가 47세로 과거 정부때보다 10살 가량 많아졌다.
 
노무현 정부 출범때 40세의 박주현(서울대 81)이 국민참여수석에 임명된 것을 비롯, 당시 청와대 1ㆍ2급 비서관의 평균 연령이 45세였다. 상당수가 386세대였다. 서울대 78학번으로 ‘범386 세대’로 분류되는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에서 47세에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고, 이명박 정부에선 이주호(서울대 79)가 49세에 교육부 장관이 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선 40대 장관이 실종된 상태다. 초대 내각의 평균연령도 노무현 정부는 52.2세였지만 문재인 정부는 61.5세다. 세대교체가 늦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386세대가 정치권에서 부상한 2000년대 중반부터 기업에서도 386세대의 강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386 세대의 장기집권 현상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은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한국의 기업들은 정치권ㆍ국가부문의 세대교체에 맞춰 국가권력에 ‘연줄이 닿는 동기’들을 이사진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정치권ㆍ국가부문의 386 세대가 장기집권을 할 경우, 기업부문의 386세대가 장기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분석했다.
 

IMF가 오히려 전화위복 

386세대는 IMF 사태 때 사회 초년병으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갔다. 사진은 IMF 당시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실직자들의 모습. [중앙포토]

386세대는 IMF 사태 때 사회 초년병으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갔다. 사진은 IMF 당시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실직자들의 모습. [중앙포토]

 
특히 IMF사태도 기업의 386세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고임금이었던 40~50년대생이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고 대거 기업에서 밀려났지만, 초년병이었던 386세대는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게다가 밑으로도 한동안 정규직 채용이 급감하면서 “386세대는 졸지에 위아래가 모두 잘려나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철승 교수)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저서 ‘불평등의 세대’에서 1998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 100대 기업 임원 9만3000여명의 출생 세대별 분포와 시기별 변화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과거엔 기업 임원진의 연령 비율이 50대 초ㆍ중반이 가장 많고 50대 후반으로 가면서 급감하는 패턴을 보였다. 가령 1945~49년생은 1990년대 후반 33.8%였다가 2000년대 초반 19.8%로 줄었다. 마찬가지로 1950~54년생은 2000년대 초반 34.3%에서 2000년대 후반 21.1%로, 1955~59년생은 2000년대 후반 38.3%에서 2010년대 초반 25.5%로 감소했다. 후속 세대가 올라오면 자연스레 윗세대가 물러나는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100대 기업 이사진 중 386세대 비중 변화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00대 기업 이사진 중 386세대 비중 변화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런데 386 세대가 임원진에 진입하면서부터는 이런 흐름이 막히기 시작했다. 1960~64년생은 2010년대 초반 41.3%였으나 2010년대 후반에도 38.1%로 여전히 건재하다. 이 와중에 1965~69년생도 2010년대 후반 35.2%로 증가해 100대 기업에서 386 세대 임원의 비중은 72.2%에 달한다. 1990년대 후반에 1940~49년생 임원이  50.5%, 2000년대 후반에 1950~59년생 임원이 59.4%였던 것에 비하면 386 세대의 독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386 세대에 와서 부모·자녀 소득차 가장 심화 

386 세대가 자리를 독점하면서 후속 세대는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임원진에서 386 세대의 비율은 29.6%였으나 2010년대 후반에 1970~79년생의 비율은 10.4%밖에 안된다. 청와대ㆍ정부 요직에서 40대의 실종 현상이 기업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부모세대(50대) 대비 자녀세대(20대)의 가구소득 변화추이. 1990년대엔 20대가 50대 대비 49.2~76.8%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였지만 2010년대엔 20대가 50대 대비 44.3~52.4%에 불과한 소득을 기록했다. 386이 부모세대가 되자 자녀세대인 20대와의 소득 격차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의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부모세대(50대) 대비 자녀세대(20대)의 가구소득 변화추이. 1990년대엔 20대가 50대 대비 49.2~76.8%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였지만 2010년대엔 20대가 50대 대비 44.3~52.4%에 불과한 소득을 기록했다. 386이 부모세대가 되자 자녀세대인 20대와의 소득 격차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의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간의 소득비율은 세대간 불평등을 보여주는 또다른 지표다. 1990년대에 40년대생 부모와 70년대생 자녀의 소득비율은 49.2%(1990년)에서 76.8%(1999년)로 상승했다. 2000년대에 50년대생 부모와 80년대생 자녀의 소득비율은 53.4%(2000년)에서 79.5%(2009년)로 올랐다. 
 
그런데 386 세대 부모와 90년대생 자녀의 소득비율은 2010년 44.3%에서 2016년에도 52.4%에 머물렀다. 386 세대에 와서 부모와 자녀의 소득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386 세대 부모는 다른 세대의 부모 보다 소득이 높고, 386 세대의 자녀들은 다른 세대의 자녀들 보다 소득이 낮다는 이중적 요인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모두 장악한 386 세대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는가? 데이터는 ‘그렇다’고 답한다”고 결론지었다.
 
탐사기획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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