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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집착' 화성경찰…"용의자 데려가라"했지만 그냥 뒀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씨가 사건 발생 장소 일대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30년을 살았다.
 

10차 범행 뒤엔 가족만 학대?
화성연쇄살인에 남은 의문

하지만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이들은 "이씨가 수사 선상에 올라있지 않았던 것 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200만명이 넘는 경찰이 투입되고 2만1200명이 넘는 용의자를 조사하는 등 대대적으로 이뤄진 경찰 수사를 이씨는 어떻게 피한 걸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씨(오른쪽)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인한 혐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씨(오른쪽)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인한 혐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9건 모두 이씨 본적지 근처에서 발생    

이씨는 화성 토박이였다. 그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로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1993년 충북 청주로 이사를 하기 전까진 화성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1990년엔 수원지법에서 강도예비와 폭력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 범행이 모두 진안리 반경 10㎞에서 이뤄졌다. 2·6차 사건은 이씨의 본적지인 태안읍 진안리에서 피해자들의 시신이 발견됐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화성 연쇄살인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찰이 생존자와 목격자를 통해 만든 '보통 체격의 20대'라는 용의자의 특징도 당시 20대였던 이씨와 같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을 오래 추적한 하승균(73) 전 총경은 "이씨는 당시 용의 선상에 없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당시 수사에 나섰던 다른 경찰 관계자도 "이씨가 화성에 살았다면 당연히 조사했을 텐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경찰의 혈액형 집착이 수사망 피한 열쇠 됐나  

이씨가 경찰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혈액형'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찰은 4·5·9·10차 사건 범인의 정액과 혈흔·모발 등의 감정을 통해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당시 DNA 분석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혈청학적 방법으로 감정했는데, 그마저도 혈액이 아닌 감정물들이다.
    
반면 이씨의 혈액형은 O형이다. 그가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항소심 판결문엔 "범행 현장에서 수거된 모발 중 피고인(이씨)의 혈액형과 같은 O형의 두모 2점, 음모 1점 등이 나왔다"고 적혀 있다. 이씨가 당시 경찰의 의심을 샀어도 다른 혈액형으로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경찰이 혈액형에 집착한 정황은 이씨가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1994년 충북 청주서부경찰서(현 청주흥덕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았을 당시에도 드러난다. 청주 경찰이 이씨의 화성 본가를 압수수색하자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팀은 "이씨를 화성으로 데려와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주 경찰이 "직접 데려가라"고 하자 수사팀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이씨의 처제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김시근(62) 전 형사는 "화성 경찰에서 찾은 건 혈액형 B형의 용의자였는데, 우리가 채취한 이씨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며 "혈액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성수사본부가 청주로 내려와 공조수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 집착했던 B형 혈액형은 잘못된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7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의뢰로 화성의 현장증거물을 조사한 결과 사건 당시 물품에서 채취된 성분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감정물에서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용의자의 DNA를 분리했다"며 "용의자의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시료가 체성분이 오염이나 혼합됐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화성 5차 사건 현장 살펴보는 경찰   [연합뉴스]

화성 5차 사건 현장 살펴보는 경찰 [연합뉴스]

  

이씨, 10차 범행 이후 범행 중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91년 4월을 마지막으로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도 2006년 4월로 끝났다.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를 한 이씨가 이듬해 처제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해하기까지 2년 9개월의 공백이 있는 셈이다. 공백 기간 이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1991년 7월 A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1992년 아들을 낳았다. 범행을 멈춘 대신 그는 가족을 학대했다.
 
이씨의 항소심 판결문엔 "피고인(이씨)은 내성적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아들(당시 2세)을 방에 가두고 마구 때려 멍들게 하는 등 학대하고 아내 A씨에게도 상습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가 저지른 범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다른 미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19일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범, 다른 용의자는 없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증거물 중 이씨의 DNA가 검출된 것은 5·7·9차 사건과 관련된 3건에서다. 경찰은 이씨가 모든 사건을 저질렀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건의 증거물도 국과수로 보내 DNA 분석 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공범이나 다른 용의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범행수법이 사건에 따라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이씨의 DNA가 검출된 5·7·9차 사건에선 피해자들의 목이 졸렸고 스타킹이나 블라우스 등으로 손과 발이 결박된 상태였다.
  
반면 1차 사건은 피해자의 하의가 벗겨져 다리를 X자로 꺾인 채 발견됐고 2차 사건은 흉기로 살해됐다. 6차 사건은 상의가, 10차 사건은 하의가 벗겨진 형태였다.
 
5·7·9차 사건과 비슷한 형태의 범행은 3·4차 사건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공범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다른 증거물에서 제3의 인물의 DNA가 나올 수도 있으니 다른 용의자가 없다고는 확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가해자라는 경찰의 판단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이 18~20일 부산교도소에 있는 이씨를 접견해 혐의를 추궁했지만 이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과거 수사 기록을 들여다보는 등 이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이라 이씨가 자백을 해도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해야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씨를 계속 조사해 진술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최모란·최종권·김민욱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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