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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라 불리는 추적팀 "경제사망 선고 아니면 체납자 잡힌다"

중국산 조명기구를 수입하는 김모(54)씨는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실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물품을 들여왔다고 신고했다. 관세청은 이를 적발해 3억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김씨는 “돈이 없다”며 추징액 납부를 피했다. 그는 폐업 신고를 하고 부인 이모(45)씨와 이혼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혼한 뒤에도 이 씨 명의 아파트에 살면서 이씨 승용차로 출퇴근했다. 이씨가 신규 사업자로 등록해 같은 사업을 이어갔다. 관세청 체납추적팀은 재산 분석과 주변 탐문 조사를 통해 부인 명의의 땅ㆍ건물과 고가의 수입차 보유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가택 수색을 통해 장롱 속에 숨겨둔 현금 1억4000만원과 명품 가구ㆍ시계ㆍ가방 등 동산 10건을 압류했다.
2016년 방영한 드라마 '38사기동대'의 한 장면. [OCN 캡처]

2016년 방영한 드라마 '38사기동대'의 한 장면. [OCN 캡처]

2016년 방영한 OCN 드라마 ‘38사기동대’는 최고 시청률 4.6%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38이란 숫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납세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에서 따왔다. 서울시청 세금징수과를 모티브 삼았다.  위 사례의 주인공인 ‘125추적팀’은 관세청판 38사기동대다. 일반 국세가 아닌 수입 물품 관세 체납자를 추적한다는 점만 차이다. 김덕보(48) 서울세관 125추적1팀장은 “관세 체납자가 숨긴 재산을 조사해 체납액을 추징하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관세청 125추적팀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평소엔 ‘추적’을 한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관세 체납자는 3727명이다. 체납액이 1조267억원에 달한다. 추적팀원 1인당 소액 체납자 약 300명, 5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약 120명을 관리한다. 김 팀장은 “체납자는 대부분 갚아야 할 빚 있는 사람이 고의로 자신 재산을 가족ㆍ친지 등 다른 사람 명의로 바꿔 빚을 피하는 ‘사해(詐害)행위’를 한다”며 “부촌인 서울 강남 3구(강남ㆍ서초ㆍ송파)나 경기도 분당ㆍ판교에 살면서 해외로 자주 드나들거나, 고급 수입차를 가졌는데 1년 이상 체납할 경우 악질 체납자로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악질 체납자가 있을 땐 ‘출동’을 한다. 가택(법인) 수색 전날 미리 경비실에 들러 체납자의 실제 거주 여부를 물은 뒤 수색에 대비하지 못하도록 다음날 오전 8시쯤 찾아간다. 그는 “수색을 나갈 정도면 이미 세금을 안 낼 의사가 확고한 ‘배 째라’ 식인 경우가 많다”며 “1~2명이 나가면 위험할 수 있어 여성 팀원을 포함, 최소 3~4명이 출동한다”고 말했다. 현장은 그의 표현대로 ‘천태만상’이다.
김덕보 서울세관 125추적1팀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관세청]

김덕보 서울세관 125추적1팀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관세청]

“대부분은 체념하고 순순히 수색에 응합니다. 하지만 ‘영장은 가져왔느냐”며 대뜸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 연거푸 우황청심환을 들이켜며 엉엉 우는 사람, 장롱 깊숙이 고가 시계와 외화를 숨겨놓고도 발뺌하는 사람, 사장인데도 천연덕스레 ‘사장님은 나가셨다’면서 빠져나가려다 붙잡히는 사람도 종종 있지요. 심할 때는 ‘당신은 악마다. 죽이겠다’란 욕설이나 ‘훌륭한 서울세관 덕분에 부인에게 이혼당했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멱살을 잡히기도 합니다.”
 
추적은 정보가 많을수록 ‘갑’이다. “지금 체납액이 1000만원인데 안 내면 곤란하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기보다 “당신은 몇월 며칠 부모에게 상속받은 내용이 있고, 몇월 며칠 아파트를 팔았기에 갚을 돈이 있습니다”는 식으로 ‘목줄’을 틀어쥐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정말 티끌 같은 금융 정보라도 단서로 잡아 들이밀어야 체납자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며 “정보를 탄탄히 모아야 체납자를 압박하는 미안함도 덜 하다”고 털어놨다.
 
잠깐 세금 납부를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발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일단 ‘거주지(행방) 불명’이어야 하고 은행ㆍ신용카드를 쓸 수 없는 데다 출입국 기록도 깨끗해야 한다. 납부 소멸시효 기간(5년) 동안 ‘경제적 사망’ 상태가 아니고선 추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고 현금으로만 살면서 5년을 버텨야 한다”며 “붙잡히면 대부분 ‘그동안 불편해 죽을 뻔했다’고 털어놓기 일쑤”라고 전했다.
가택수색에 나선 김덕보(오른쪽) 팀장이 체납자가 숨겨놓은 외화와 귀금속, 고가 시계를 분류하고 있다. [관세청]

가택수색에 나선 김덕보(오른쪽) 팀장이 체납자가 숨겨놓은 외화와 귀금속, 고가 시계를 분류하고 있다. [관세청]

체납자를 쫓는 거친 일인 데다 업무 범위가 수도권뿐 아니라 충청권ㆍ강원권으로 넓어 새벽ㆍ출장ㆍ밤샘근무도 잦다. 관세청 ‘기피부서 1호’로 꼽히는 이유다. 힘들지만 꼭 필요한 일인 만큼 보람도 많다고 했다. 악질 체납자를 끝까지 추적해 체납액을 받아냈을 때가 그렇다. 그는 “추적팀은 체납자를 절대 악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모두 평등하게 사는 데 기여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말 궁금했던 건 마지막에 물었다. “왜 ‘125’가 붙었을까”. “관세청 신고 직통번호가 125”란 답이 돌아왔다. 깎아서 말하면 무심하게 들렸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니 “체납자만 보고 끝까지 쫓는다”는 우직함이 묻어났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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