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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거장 김선욱, 정명훈과 함께 ‘황제’의 전율 재연한다

[아티스트라운지] 피아니스트 김선욱

김선욱은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명훈이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베토벤 ‘황제’를 연주한다. [사진 빈체로]

김선욱은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명훈이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베토벤 ‘황제’를 연주한다. [사진 빈체로]

정명훈과 김선욱이 연주하는 ‘황제’를 다시 듣는다. 2013년 두 사람이 서울시향과 협연한 실황녹음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해 화제를 모았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471년 전통의 세계 최고(最古)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들려주는 것이다(9월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12년부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창단 이래 최초의 ‘수석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명훈은 이번 공연에서 독일 정통 레퍼토리 브람스 교향곡 2번과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선택했고, 협연자로 김선욱을 초청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협연
471년 전통의 최고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협주곡 5번 함께 연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베토벤 음악
인간의 깊은 감정 건드리는 듯해요”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한 이래 꾸준히 베토벤에 도전하며 ‘젊은 거장’ 반열에 오른 김선욱 음악의 현재를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의 협조로 확인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다.  
 
베를린에 머물고 있어 e메일로 미리 만난 김선욱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짙고 풍부한 소리와 중후한 색깔을 가진 오케스트라이며 정통 독일 작곡가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서 “예전에 본 소설이나 영화가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듯, 자주 연주했던 곡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번 협연을 통해 곡에 대한 나의 관점에 새로운 충돌과 놀라움이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설렘을 전했다.
 
“정명훈과 연주는 머리와 가슴 완벽히 일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아시아투어에 나선 정명훈. [사진 세종문화회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아시아투어에 나선 정명훈. [사진 세종문화회관]

음반과 영상으로 익숙한 2013년 연주 당시와 지금은 연주자로서나, 인간 김선욱으로서나 많은 변화가 있을 터다. 그가 바라는 변화는 ‘여유’다. “항상 스스로의 틀을 깨고 넓히려 노력하는데, ‘여유’는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더군요. 지름길은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예전과 현재의 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거죠.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색깔, 감정의 폭도 넓어지고 여유도 생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임할 생각입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의 협연은 2007년 이후 20차례 이상 경험했지만 여전히 설레는 일이다. 김선욱은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가 아닌 지휘를 전공했기에 두 사람의 케미는 완벽에 가깝다. “음악을 연주하는 우리에게 음악이 어떤 존재이고 우리네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정명훈 선생님과 같이 연주하며 많이 배웠어요. 그와 함께 연주할 때면 머리와 가슴이 완벽히 일치되는 초현실적인 감정을 항상 느껴왔죠. 이번에도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황제’에서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건 로맨틱한 클래식 선율의 대명사와도 같은 2악장 연주다. 침묵처럼 고요한 상태에서 완벽히 몰입해 보석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멜로디를 직조해내는 피아니스트의 머릿속엔 그순간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매 상황마다 달라요. 개인적인 감정 상황에 따라 다른 그림이 그려지죠. 포근할 때도 있고 너무 소중해서 다가가기 어려울 때도 있고, 슬픔을 꾹꾹 참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리움이 느껴질 때도 있고, 따사로운 정적이 감돌 때도 있구요.”
 
베토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영화 ‘불멸의 연인’에선 베토벤이 연인에게 남긴 편지 장면마다 2악장이 흐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혹시 러브레터가 아닐까. 하지만 그는 단순한 해석을 거부했다. “항상 사랑을 갈구해오던 베토벤이지만 그의 음악을 한 가지의 감정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것 같아요. 베토벤은 모든 작품에 혼을 쏟아부으며 작곡을 했거든요. 제 자신이 베토벤의 친구나 동료라고 해도 베토벤을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거예요. 베토벤의 전기와 편지들을 숙지하고 있어도 음악의 언어는 또 다른 영역이거든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청자들에게 살아 숨쉬는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 제 직업이라 생각해서, 저부터 그 어떤 틀을 설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느끼고 갈망하려고 합니다.”
 
‘황제’와는 색다른 인연도 있다. 민병훈 감독이 만든 영화 ‘황제’(2017)에 배우로 직접 출연한 것이다. 개봉 당시 민 감독은 그의 ‘황제’ 연주에서 치유의 감동을 느끼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베토벤의 음악은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복잡하죠. 기승전결이 매우 명확한 듯 보여도 그 안에는 철저하게 고심한 흔적이 보이거든요. 그 무결점함이 결점으로 작용해 인간의 깊은 감정을 건드린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완벽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서 걸쳤다 해도 결국 인간의 몸이 제일 아름답지 않나요. 베토벤 음악이 가진 힘도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그 감정이 감독님에게 ‘치유’라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겠죠.”
 
김선욱은 곧 지휘자 데뷔를 앞두고 있다. 내년 초 영국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베토벤 교향곡 4번과 에그몬트 서곡, 그리고 ‘황제’를 지휘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지휘자로서 욕심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기회일 뿐이라는 것이다.
 
“학교 졸업 후 지휘와 피아노를 동시에 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고 피아노에만 전념해 왔죠. 그런데 10년 정도 함께 연주해 온 본머스 심포니가 ‘지휘를 하고 싶다면 우리와 처음으로 하자’고 응원해줘서 데뷔를 하게 되었네요. 지휘자로서 정식 첫 무대인 만큼 학교에서 공부했던 곡 위주로 택했어요. 협주곡 5번의 경우는 평소 꼭 지휘를 겸해 연주해보고 싶었구요. 이번에 스스로 지휘자로서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판단해보고, 없는 것 같으면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동물이나 곤충처럼 알 깨고 허물 벗는 중”
 
거장 백건우는 최근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자기 세계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젊은 거장’ 김선욱은 자기 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사람이 다 취향이 다른 것처럼, 연주자가 원하는 음악세계의 취향도 개인적이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왜 그런지에 대한 질문을 멈추면 안 되는 이유기도 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2008년 대학 졸업 이후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해야 했죠. 그러다 보니 원하는 방향과 색깔이 일찍 생겼고, 확신을 갖고 지금도 음악공부를 계속 해오고 있어요. 음악은 스포츠도 아니고 절대적인 최고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정말 좋은 음악과 연주는 구별이 가능하거든요. 후배들도 항상 최선을 다해, 차분히 좋은 연주를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많은 분들이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올 거예요. ‘제뉴인(Genuine)’ 한 것은 내가 알리려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주니까요.”
 
지난해 10년 동안의 런던 생활을 청산하고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는 최근 많은 변화를 겪고 초심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엔 “동물이나 곤충처럼 알을 깨고 허물을 벗는 중”이라고만 답했다.  
 
“베를린은 런던만큼 아름답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훨씬 자유롭고 예술가들이 존중받는 곳이에요. 독일은 겉치레에 관심이 없는 나라라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들고요. 한국은 유년 시절부터 제 연주를 지켜봐 오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무대는 늘 조금 더 상기되죠. 제가 감사드리는 많은 분들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고,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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