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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운동회 같은 동포 축제, 돈 쓰고 욕도 먹지만 뿌듯

[스포츠 오디세이] 한민족축구대회 16년째 여는 김성수 회장

김성수 회장이 서울 여의도 한민족축구연합회 사무실에서 올해 한민족축구대회 팸플릿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만델라 대통령이 축구로 남아공을 하나로 만든 것처럼 우리 대회가 전세계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작은 구심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김성수 회장이 서울 여의도 한민족축구연합회 사무실에서 올해 한민족축구대회 팸플릿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만델라 대통령이 축구로 남아공을 하나로 만든 것처럼 우리 대회가 전세계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작은 구심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지구촌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은 2019년 현재 740만명에 이른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고국땅에 모여 함께 땀을 흘리고 정을 나누는 스포츠 행사는 얼마나 있을까. 딱 한 개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한민족축구대회다. 전세계한민족축구연합회(회장 김성수)가 주관해 14회째를 맞는 이 대회는 올해 10월 2∼6일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다. 같은 시기에 진행되는 횡성한우축제와 함께 하며, 개막 공연은 평화방송에서 중계한다.  
 

‘한명회’ 등 출연한 탤런트 출신
2004년 시카고 공연 갔다 인연
집장사로 번 돈 털어 대회 맡아

어르신들 숙소·안전에 가장 신경
폭우·태풍 올까 밤새 기도하기도
이젠 더 높은 차원서 발전했으면

올해는 미국·영국·독일·멕시코·중국·일본 등 17개국에서 한인들이 팀을 짜서 참가한다. 팀 수는 50개, 선수·임원은 2000명에 달한다. 독일에서는 70년대 파독(派獨) 광부로 고국을 떠났던 분들이 ‘실버 팀’을 조직해 출전한다. 연예인·의사 등 국내 10개 팀도 합류해 청년부·중년부·장년부·실버부로 나눠 대회를 치른다. 내년 개최지는 10여개 지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경남 합천으로 결정됐다.
 
올 14회 대회는 내달 2∼6일 횡성서
 
이 대회 참가자는 왕복 항공권만 부담한다. 대회기간 숙식비와 운영 경비, 심판비 등은 전액 전세계한민족축구연합회가 책임진다. 2015년부터 문체부에서 재정지원(연 2억원)을 하지만 사실상 김성수 회장이 사재를 털어 대회를 이어 왔다. 충북 충주 출신인 김 회장은  10대 후반 시골에서 상경한 뒤 집을 지어서 팔아 큰 돈을 벌었다. 검정고시를 거쳐 경원대(현 가천대)와 중앙대 대학원(시공관리학)을 졸업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KBS 탤런트로 활동하며 ‘한명회(1994)’ 등 10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이력도 있다.
 
축구를 좋아한 김 회장은 2004년 연예인 축구단을 이끌고 미국 시카고 공연을 갔다가 ‘한민족축구’에 발목이 잡혔다. 이후 16년간 빛나는 중년을 ‘돈 쓰고 욕 먹는’ 일에 바쳤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한민족축구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4명의 직원과 함께 막바지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대회 포스터와 팸플릿은 경비를 아끼기 위해 김 회장이 직접 디자인을 했다. 1분20초 짜리 홍보 동영상도 김 회장이 편집해서 완성했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점은 숙소와 안전 문제다. 김 회장은 “선수단을 횡성에서 다 수용하지 못해 원주와 춘천 쪽 호텔도 빌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어르신들이 들뜬 마음에다 전날 술도 좀 드시고 경기 출전을 강행하는 경우가 있어 겁이 날 때가 많다. 경기가 격해지는 걸 막기 위해 심한 태클의 경우 공만 건드렸다 해도 반칙을 주는 룰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60∼70년대 먹고살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고,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숨죽인 세월을 보낸 분들이 많다. 온갖 고생 끝에 여권을 받아 한국에 나올 수 있게 됐지만 부모형제가 돌아가셔서 갈 곳이 없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분들에게 고국과 고향을 찾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한민족축구대회다. 추석에 고향에 내려온 사람들끼리 모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던 느낌, 그것을 재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김성수 회장이 단장을 맡았던 연예인 축구팀. 앞줄 맨 왼쪽이 탤런트 차태현, 대각선 위쪽이 ‘의리맨’ 김보성이다. 앞줄 오른쪽 다섯째가 김 회장. [사진 김성수]

1990년대 김성수 회장이 단장을 맡았던 연예인 축구팀. 앞줄 맨 왼쪽이 탤런트 차태현, 대각선 위쪽이 ‘의리맨’ 김보성이다. 앞줄 오른쪽 다섯째가 김 회장. [사진 김성수]

김 회장이 2004년 첫 대회 때 얘기를 들려줬다. “연예인 18명을 데리고 시카고에 갔다. 미국 몇 개 지역 팀들과 멕시코 동포 팀이 모여 축구대회를 했는데 이름을 거창하게 ‘한민족축구’라고 붙였다. 연예인들 공연에 무려 1만 명의 교민이 구름처럼 몰렸다. 그만큼 외롭고 정에 굶주렸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대회 마치고 나서 교민들이 내 손을 잡고 ‘이 대회를 꼭 지속시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난 미국에 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어차피 해외동포들이 모이려면 한국에서 대회를 해야 한다. 우리가 뒤에서 힘껏 돕겠다’고 해서 얼떨결에 맡게 됐다.”
 
한민족 명칭 독점? 삐딱한 시선엔 답답
 
2006년 8월에 경기도 고양에서 2회 대회를 열었다. 지자체의 일부 지원을 빼고는 모든 경비를 김 회장이 마련했다. 1년 동안 정성껏 준비했는데 비가 엄청나게 와서 고양시가 물바다가 됐다.  
 
2008년에 3회 대회를 경기도 가평에서 열면서 비로소 자리가 잡혔고, 해외 각국에서 동포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대회를 유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 김 회장은 “왜 ‘한민족’이라는 명칭을 너희가 독점하느냐는 말들이 많았다. 문체부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시켜 법인 등록을 했고, 1회 대회를 창설했던 미국 동포들을 찾아가 일일이 설득했다. 날씨도 늘 걱정이었다. 작년 전남 영광 대회 때는 개막일에 태풍이 올라왔다. 밤새 뜬눈으로 기도했는데 다행히 아침에 태풍이 오른쪽으로 비켜갔다”고 회고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돈도 안 되는 대회를 10년 넘게 붙들고 있는 걸 보니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김 회장은 이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살면서 내가 받은 과분한 사랑을 남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해외동포들이 고국을 찾아 시름을 잊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해 주는 일, 국가나 사회단체·기업이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으니 더 높은 차원에서 대회가 유지되고 발전됐으면 좋겠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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