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내 복에 산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쫓겨난 가믄장아기

기자
권도영 사진 권도영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42)

많은 사람이 추석 명절에 가족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연합뉴스]

많은 사람이 추석 명절에 가족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연합뉴스]

 
추석 명절을 얼마 전에 보냈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단란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었으면 더없이 좋았겠다. 일가를 이루고, 집안 살림도 안정되고, 자식들이 보기 좋게 장성한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은 뿌듯한 기분도 느꼈다면 좋았겠다. 뿌듯해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녀들은 고마움과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명절이었으면 좋았겠다.
 
그러나 우리 밥상머리에서 대화는 종종 어긋나고, 그 어긋남이란 욕망의 방향이 서로 달라 생기는 것인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여기, 모든 것이 뿌듯했던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세 딸을 차례로 불러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잘 사느냐?”
첫째 딸 은장아기, 둘째 딸 놋장아기는, 말 그대로 답정너, 아버지가 듣고 싶어 했던 꼭 그 말을 다소곳하게 올린다.
 
“하늘님도 덕이고 지하님도 덕입니다만, 아버님 덕이고 어머님 덕입니다.”
한껏 흥이 오른 아버지는 막내딸 가믄장아기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가믄장아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님도 덕이고 지하님도 덕입니다. 아버님도 덕이고 어머님도 덕입니다만 저는 제 배또롱 아래 선그믓 덕으로 먹고 입고 잘 삽니다.”
이쯤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자. 내가 아버지라면 이 딸을 어찌할 것인가?
 
이 이야기, 〈삼공본풀이〉 속 부자 아버지는 크게 화가 나서 가믄장아기를 쫓아냈다. 그러자 가믄장아기는 검은 암소에 먹을 양식을 싣고, “어머님, 잘 사십시오. 아버님, 잘 사십시오.” 인사하고는 집을 나섰다.
 
요즘 딸바보 아빠들이 많다. 예쁘고 귀한 자식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넘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사진 pixabay]

요즘 딸바보 아빠들이 많다. 예쁘고 귀한 자식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넘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사진 pixabay]

 
요새 딸바보 아빠들 참 많으시다. 이제 한 세 살쯤 된 딸을 물고 빨고 아끼며, 이 녀석이 자라서 남자친구 데리고 오면 다 쫓아내 버릴 거라고, 딸 보내고는 못 살 거라며 벌써 호들갑이다. 물론 귀하디귀한 자식에게 넘치는 애정을 쏟아붓는 게 어디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 무엇이든 너무 넘쳤을 때 문제가 되는 법이니 마냥 순진한 아빠들의 애교로만 보아주기도 힘든 노릇이다. 적당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세상 구경도 하고 남자 구경도 하고, 연애도 해 보고, 실연도 해 보고, 그러면서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것일 테다.
 
“너는 내 덕에 먹고 입고 잘 사는 나의 예쁜 딸이야.”를 주입하는 부모의 서사는, 스무 살이 넘은 딸에게 엠티는커녕 통금시간을 정해 주고 저녁 아홉 시 안에는 집에 들어오라고 으름장을 놓고 그 시간을 넘기면 딸이 어떤 곤란한 상황에 빠지건 말건 전화를 수십 통 해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이 험악하여 귀한 딸 보호하겠다는 정성도 갸륵하다.
 
그러나 도리어 그렇게 자란 딸들은, 물론 음으로 양으로 자기 할 짓들 다 하며 영악하게 자라기도 하지만, 세상 아무 이치도 깨달을 틈 없이 이 집 딸에서 저 집 아내, 며느리로 위치 이동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야기 속의 당돌한 막내딸 가믄장아기는 그걸 박차고 나섰으니 이제 험한 세상을 저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가믄장아기는 하염없이 길을 가다 날이 저물어 마퉁이 삼 형제네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중 막내인 자근마퉁이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데, 자근마퉁이가 마를 캐던 곳에 가보니 금덩이, 은덩이가 가득하였다.
 
자근마퉁이는 그게 자갈인 줄로만 알고 던져 놓은 채 그저 마만 캐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믄장아기는 금덩이, 은덩이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고는 거지 잔치를 열어 부모를 찾으니, 가믄장아기를 만난 부모는 놀라 눈을 뜨고, 가믄장아기를 내쫓았던 부모와 가믄장아기는 그렇게 다시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 정도면 가믄장아기가 애초에 말했던 “내 배또롱 아래 선 그믓 덕”이라고 한 말의 뜻을 혹시 명확히 몰랐던 독자일지라도 가믄장아기는 누구 덕이라기보다 그저 자기 복으로 잘산다고 답한 것임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잘사는 부모를 만난 것도 자기 복이라고 할 만하다. 누가 그랬다고 하지 않은가.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그러나 이 대사가 발화된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어떤 자질을 갖춘 이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인가에 따라 그 이후의 서사가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맥락이 갑질의 정신상태에서 나온 것이라면 부모 잘 만나지 못한 이들을 자기 아래 두고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 된다.
 
그러나 하늘님, 지하님, 어머님, 아버님 덕도 다 인정하지만, 나는 내 복으로 잘산다고 대답했을 때에는 자신의 근본을 헤아리면서 그 안에서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리어왕 역시 가믄장아기의 아버지처럼 자기애가 충만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리어왕 역시 가믄장아기의 아버지처럼 자기애가 충만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가믄장아기의 아버지처럼 다소 철없고 자기애 충만한 아버지가 또 한 사람 있다. 리어 왕이다. 리어 왕은 세 딸을 불러다 놓고, 부모를 사랑하고 효심이 깊은 딸에게 가장 큰 은혜를 내리겠다고 했다.
 
첫째, 둘째는 리어 왕에게 자신의 효심을 증명해 보이려고 열심히 아양을 떨어 큰 재산을 받았지만, 막내딸 코딜리어만은 자식의 의무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하여 한 푼도 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크게 분노한 리어 왕은 코딜리어를 프랑스 왕에게 시집보냈다. 코딜리어는 결국 모함으로 사형에 처하고, 거듭되는 불운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리어 왕은 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딜리어와 리어 왕이 맞이한 비극은 세상에서 요구된다고 믿어지는 원칙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할 뿐 부모의 존재나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이해를 보여주지 못했기에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믄장아기는 다 자기 복으로 먹고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부모를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하늘님, 지하님, 어머니, 아버지 두루두루 자신의 근원이며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근본임을 잘 깨닫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부모덕에만 전적으로 기대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 코딜리어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 있는 존재로서의 나를 찾기

금덩이는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게만 눈에 띈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구렁이나 돌 같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이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사진 pixabay]

금덩이는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게만 눈에 띈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구렁이나 돌 같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이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옛이야기에서 보통 금덩이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자의 눈에만 띈다. 그걸 알아보는 눈을 갖지 못한 자에게는 구렁이로 보이기도 하고, 그저 흔한 돌덩이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복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는 진정 가치 있는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 캐던 땅에서 금덩이, 은덩이를 발견하는 눈으로 증명 된다.
 
그렇게 자기 복을 증명한 이후 가믄장아기는 거지 잔치를 통해 부모를 찾고 부모는 그 덕에 개안하였다. 가믄장아기는 자기 복에 대한 믿음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힘으로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자기 안에 이미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자기 삶의 중심을 제대로 알고 인식했을 때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