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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모자와의 이별,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한성옥(42) 씨가 오는 21일 굴곡진 이승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끝까지 지키고 싶어했던 2013년생 아들 김모(6) 군과 함께입니다. 엄마 한씨의 장례식은 광화문에서 시민애도장(葬)으로 치러집니다. 
고심 끝에 '탈북 모자(母子) 사망 사건'으로 알려진 한씨의 실명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주위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한씨처럼 비극을 맞이하는 또 다른 우리 이웃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사망 후 넉 달의 시간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12일. 광화문 길모퉁이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았다. 국화꽃으로 치장한 조화 옆. 아빠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한 꼬마가 비눗방울을 불었다. 연신 웃음이 터졌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분향소를 지키던 새터민(북한 이탈 주민) 서넛이 아이의 웃는 모습을 지켜봤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허광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 한숨을 쉬었다. 
 

분향소를 지키는 탈북민 가운데 한성옥 씨랑 인연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왜 여기 와있는 줄 압니까?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선 안 되는 거니까요.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은 살 빼고,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대한민국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한씨의 분향소를 찾아 향을 피우는 사람들은 대개 같은 탈북민들이었다. 일면식 없던 한씨의 영정 앞에서 목놓아 울고 갔다. 허 위원장은 가슴을 쳤다. "사람들은 우리가 분향소를 차리니까 정치권에 줄 대려고 한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저런다고 손가락질해요. 그런데 우리는 이름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엄마와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탈북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한씨 모자 죽음의 일차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겠지요. 하지만 한국에서 굶어 죽은 것은 관할 자치단체와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외면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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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대한민국의 문을 두드린 북한 이탈주민은 3만 2476명이다. 이중 72%가 여성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입국은 2009년(2914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에 1137명을 기록했다. (그래프를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들을 지키고 싶었던 엄마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한씨는 2009년 입국했다. 중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낳은 상태였지만 홀로 대한민국 행을 택했다. 하나원(북한 이탈 주민정착지원사무소) 133기로 정착 교육을 받았다. 하나원 동기들은 한씨가 "조용하고 온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동기 중에서 빠르게 자동차 운전면허도 따고, 제빵 제과 기술자 자격증도 따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한씨는 중국인 남편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남편은 경남 통영의 조선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둘째 아들 김군도 낳았다. 여느 가족처럼 단란한 삶을 누리는가 했지만, 조선업이 고꾸라지면서 남편은 일자리를 잃었다. 한씨는 2017년 일을 찾아 남편과 중국으로 갔다. 하지만 삶은 여의치 않았다. 남편의 손찌검을 못 이기고 중국에서 이혼한 한씨는 둘째 아들 김군을 데리고 지난해 9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혼을 증명하라고?

 
 허 위원장이 전한 이야기다. 한씨는 뇌전증 장애가 있는 김군을 홀로 키우기가 힘들었다. 일이 끊어졌다. 김군 앞으로 나오는 양육비 10만원이 전 재산으로 어린이집조차 보낼 수가 없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주민센터에 갔다. 한씨는 "남편이 있어서 안 된다. 이혼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음식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중국까지 어떻게 건너가 이혼 서류를 떼올 수 있을까,한씨는 낙담했다. "마지막 바닥이었을 거에요. 대인기피증이 생겼을 거고, 한씨는 절망 속에서 헤맸겠죠. 굶어서 죽음에 이르고,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이야기를 보면 이보다 더한 비극이 없어요."

대한민국으로 넘어 온 북한이탈주민들의 지난해 실업률은 6.9%. 남성(5.0%)보다 여성(7.6%)의 실업률이 높았다. 같은 기간 우리 나라 평균 실업률은 3.8%로 집계됐다. 17년 만의 최고치였다. (그래프를 클릭하면 더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잊혀졌던 모자

  
 경찰이 추정하는 사망 시기는 5월 중순이다. 한달 뒤인 6월 말, 한씨 집에 단수 조치가 내려졌다. 사람이 살려면 물이 필요한데, 물이 끊겼다. 단수를 했으면 사람이 어찌 사나 확인을 해야 했지만, 그 누구도 한씨 집을 찾지 않았다. 그로부터 또 한 달 뒤인 7월 말. 가스 검침원이 한씨 집을 찾았다. 가스 사용 흔적이 전혀 없고, 냄새가 났다.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모자의 모습이 보였고, 관리소에서 비상 열쇠로 문을 열었다. 집에 남아있던 먹을 것이라곤 고춧가루가 전부였다. 한씨 모자의 주검은 이렇게 드러났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죽음의 원인을 '불명'이라고 했다. 
 

남북하나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꼽은 북한이탈주민의 지인 수는 평균 2.4명이었다. 이 가운데 같은 북한이탈주민은 1.5명에 달했다. (그래프를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무연고로 마친 삶

 
 한씨 모자 장례식의 상주는 새터민들이다. 유해는 가족이 없어 '무연고자'로 분류되는 탈북민의 납골당에 모셔진다. 11살인 큰아들이 중국에 있지만 한씨의 전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는 탓이다. 허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니다. 하지만 국과수는 사인(死因) 불명이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사(餓死)인데, 굶어죽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의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어떻게 보내겠는가. 모자의 비극은 제도의 문제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고 왔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굶어 죽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요구는 한씨 모자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국가 예산을 받아 탈북민을 지원하는 것이 업인 남북하나재단의 책임자들이 사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씨 모자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탈북민 지원체계를 개선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의 정착을 돕길 바란다. " /김현예 기자 ·인턴 박온유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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