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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시선] 디플레이션 호들갑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04.81을 기록해 104.85였던 일 년 전보다 0.04% 떨어졌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첫 마이너스다. 외환위기 와중이던 1999년 2월(0.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물가가 올 들어 7개월간 0% 상승률을 보여온 터이다. 그래선지 사방에서 디플레이션 위험성을 외치는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다.
 

물가 마이너스라지만 8월 한달
과일 채소 빼면 오른 게 더 많아
불안 다독일 안정적 정책 필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은 언뜻 좋은 일로 비친다. 물가가 떨어지면 사람들, 특히 돈 없는 서민들이 살기 편해진다. 이웃 나라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지만 국민의 위기감은 그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물가 하락으로 경제 축소의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플레이션은 경제에 위험신호다. 물가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인다. 다음 주면 80만원으로 떨어질 가전제품을 누가 오늘 100만원에 사려고 하겠는가? 이에 따라 기업이 생산된 제품의 재고가 쌓이고 가격이 내려간다. 견디지 못한 기업은 생산을 줄일수 밖에 없다. 경기가 나빠지는 것이다.
 
1930년대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미국의 대공황도 디플레이션에서 기인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둘다 나쁘지만 디플레이션이 더 나쁘다”고 한 이유도 이것이다. 금리생활자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키는 인플레이션에 비해 디플레이션은 실업처럼 파괴적인 재앙을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디플레이션 위험은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 우선 디플레이션이 되려면 상당한 기간 지속해서 물가가 하락해야 한다. 보통 1년 이상 물가가 내려가야 한다. 일본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13개년 중 11년의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였다. 수요를 부추기기 위해 대폭적인 양적 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를 써야 했다.
 
이에 비하면 한 달 물가지표가 마이너스인 한국의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시장에 나가 물건 가격을 작년과 비교해보라. 대부분이 지난해보다 크게 올라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을 운운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늑대가 온다고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 같다.
 
마이너스라는 물가 통계도 자세히 살펴보면 디플레이션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8월 소비자물가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린 결정적인 요인은 식료품(-3.6%), 통신(-2.2%), 교통(-1.9%) 등 세 가지다. 특히 식료품 중 과일(-15.2%), 채소(-17.3%)가 많이 떨어졌다. 특별한 자연재해가 없어 우박과 냉해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보다 작황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과일 중에선 사과·복숭아·오렌지·참외·수박·딸기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채소 중에도 배추·시금치·무·감자·고구마 값이 가파르게 하락했다. 또 가격이 하락한 통신과 교통 서비스는 정부가 가격을 엄격히 관리하는 분야다. 원유와 소맥, 원면 같은 주요 원자재 가격도 일제히 마이너스였다. 그럼에도 음식·숙박, 교육 등 다른 물가지수 품목 가격은 하나같이 다 올랐다. 통계는 아직 물가 하락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디플레이션 아우성을 아예 무시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추세적인 물가 하락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어둡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8월에 전년보다 겨우 0.1% 상승했다. 중국의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7, 8월 두 달 연속 마이너스였다. 유럽도 양적 완화를 확대해 마이너스 금리 돌려세우기에 안간힘이다.
 
안 그래도 하락세인 세계 교역량은 미·중 무역분쟁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로 더욱 쪼그라들 전망이다. 국내 경기를 이끄는 수출이 지난해 말부터의 하락 추세를 벗어나 추석 이후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의 경기 저점이 단순한 순환주기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총수요 감소라는 디플레이션 전조의 움직임인지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아우성이 울려 퍼지는 건 물가 자체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경기 둔화로 경제가 쪼그라드는 조짐이 보이는 데 따른 불안감이다. 현명한 정부라면 이 불안감을 무시해선 안 된다. 경제의 절반은 심리라고 했다. 불안감을 잘 다독이면서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을 높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늘린 재정이 경제로 얼마나 되돌아올지, 저금리 상황에서의 금리 인하가 경제에 어떤 도움을 줄지를 국민에게 잘 설명하는 정부를 기대한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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