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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탱크맨’ 사진 찍은 찰리 콜 별세

찰리 콜이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 시위 현장에서 찍은 탱크를 막아선 남성(일명 ‘탱크 맨’)의 모습. 찰리 콜은 이 사진으로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사진 월드프레스포토 재단]

찰리 콜이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 시위 현장에서 찍은 탱크를 막아선 남성(일명 ‘탱크 맨’)의 모습. 찰리 콜은 이 사진으로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사진 월드프레스포토 재단]

1989년 중국 천안문(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맨몸으로 진압군 탱크 행렬에 맞선 ‘탱크맨(Tank Man)’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기자 찰리 콜이 별세했다.
 

중국 민주화 운동 상징이 된 장면
1989년 세계보도사진상 수상
당시 변기 물탱크 속에 필름 숨겨

13일 BBC 등에 따르면, 미국인 찰리 콜은 15년 동안 거주해오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난 5일 숨을 거뒀다. 64세. 찰리 콜의 가족은 보도자료를 통해 그가 다리 부상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찰리 콜은 1989년 6월 중국 천안문 광장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베이징호텔의 발코니에서 흰 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의 시민이 도로에 홀로 서서 이동하는 탱크 앞을 가로막는 사진을 찍었다.
 
찰리 콜과 제프 와이드너 등 당시 4명의 기자가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앵글로 이 시민의 모습을 촬영했는데, 이 중 찰리 콜의 사진이 1989년 세계보도사진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탱크맨이 누구인지 신원은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사진은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당시 이 탱크맨은 군복을 입은 두 명의 남성에 의해 도로 밖으로 끌려갔으며, 이후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당시 찰리 콜은 언론에 탱크맨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고, 자신은 그 참상을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찰리 콜은 ‘탱크맨’ 사진을 촬영하고 나서 중국 공안이 호텔 방에 들이닥칠 것을 우려해 곧바로 사진을 비닐봉지에 담아 화장실 변기 물탱크 속에 숨겼다. 그의 예감대로 중국 공안이 호텔 방에 들어와 그의 카메라 필름들을 훼손했지만 숨겨둔 필름은 AP통신 도쿄지국으로 보내진 뒤 마감 시간 내에 시사지 뉴스위크에까지 전송돼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까지도 탱크맨 사진은 중국 내에서 사용이 금지되고 있다. 천안문 시위로 인한 정확한 사망자 수는 공식 발표된 적이 없다. 중국 당국은 한때 민간인과 군을 포함해 약 200명이 숨졌다고 언급했지만, 외신들은 목격자들과 기자들의 증언으로 최소 3000명이 숨졌다고 전한다.
 
찰리 콜은 2009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복잡한 사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한컷의 단순한 사진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며 자신이 사진 속에 담지 못한 시위대의 위대함과 천안문 민주화 시위의 숨겨진 역사적 기록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찰리 콜은 중국뿐 아니라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운동 때의 치열한 현장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1987년 6월 독재 권력에 맞서다 숨진 이한열 열사와 당시 시위를 찍은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Kim Newton)의 사진에도 현장을 누비는 찰리 콜의 모습이 담겨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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