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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성매매 업소로 착각" 집창촌에 서점 연 청년작가들

임주아(시인), 고형숙(한국화가), 김성혁(성악가), 민경박(영상작가), 서완호·최은우(이상 서양화가), 장근범(사진가) 등 전주에 뿌리를 둔 30~40대 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물왕멀팀'이 의기투합해 지난 1월 전주 선미촌에 문을 연 서점 '물결서사' 외경. [사진 물결서사]

임주아(시인), 고형숙(한국화가), 김성혁(성악가), 민경박(영상작가), 서완호·최은우(이상 서양화가), 장근범(사진가) 등 전주에 뿌리를 둔 30~40대 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물왕멀팀'이 의기투합해 지난 1월 전주 선미촌에 문을 연 서점 '물결서사' 외경. [사진 물결서사]

전북 전주의 대표적인 홍등가(紅燈街)인 선미촌은 낮과 밤이 다른 곳이다. 낮에는 폐허처럼 적막하지만, 밤에는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물왕멀팀, 전주 선미촌에 '물결서사' 열어
임주아 시인 등 예술가 7명 공동 운영
전주시가 매입한 옛 성매매 업소 개조
문화·예술 상설 프로그램 진행해 호응
市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와 일맥상통

두 얼굴을 가진 선미촌 한복판에 청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서점 '물결서사'가 들어섰다. 임주아(시인), 고형숙(한국화가), 김성혁(성악가), 민경박(영상작가), 서완호·최은우(이상 서양화가), 장근범(사진가) 등 전주에 뿌리를 둔 30~40대 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물왕멀팀'이 의기투합해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서점 이름은 도로명 주소 '물왕멀'에서 따온 물 이미지(물결)와 서점을 뜻하는 '서적방사(書籍放肆)'의 줄임말(서사)을 결합해 만들었다. 서점이 있는 건물(43㎡)도 애초 성매매 업소였다. 1960년대 지어진 이곳은 폐업 후 주택 창고로 쓰이다가 물왕멀팀이 전주시에 제안해 예술가 서점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8월 15일 물결서사에서 열린 박준 시인 낭독회에서 박 시인(가운데)이 본인 시를 관객 앞에서 낭독하고 있다.[사진 물결서사]

지난 8월 15일 물결서사에서 열린 박준 시인 낭독회에서 박 시인(가운데)이 본인 시를 관객 앞에서 낭독하고 있다.[사진 물결서사]

전주시가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시비 34억원을 들여 사들인 옛 성매매 업소 다섯 채 중 네 번째 산 건물을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줬다.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국비 등 74억원을 투자해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전주 서노송동 선미촌 일원(2만2760㎡)을 문화·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을 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바꾸는 문화 재생 사업이다. 성매매 업소를 일방적으로 내쫓는 '불도저 방식'이 아닌 선미촌 주변 환경부터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꿔 시민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하는 이른바 '햇볕 정책'의 전주시 버전인 셈이다.  
 
장근범(39) 작가는 "성매매 집결지라는 부정적 이미지 탓에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는 선미촌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 아예 동네 주민이 돼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며 "그러려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예술을 접목할 수 있는 서점이 최적의 공간이라는 데 모든 작가가 공감했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인건비 등 서점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주인 없는 '무인(無人) 서점'도 고민했지만, 뜻을 접었다고 한다. "동네 서점엔 모름지기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아서다.  
 
물결서사 내부 모습. [사진 물결서사]

물결서사 내부 모습. [사진 물결서사]

그래서 작가 7명은 매일 오전 11시~오후 6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서점 손님을 맞는다. 작가 대부분이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직장이 따로 있어 하루 시간 내기도 어렵지만, 수요일만 서점 문을 닫는다. 서점에는 문학·음악·영화·사진·그림책 등 작가들이 선별한 새 책이 진열돼 있다. 헌책을 파는 '공유책방'에선 1000~4000원의 싼값에 책을 살 수 있고, 동네 주민은 맘껏 빌려 갈 수 있다.
 
서점 측은 매달 두 차례씩 주민과 시민이 참여하는 시낭독회와 성악콘서트·미술전시·교류워크숍·영화상영회 등을 연다. 이른바 '물결서사 프로젝트'다. 그동안 선미촌에서 단발성 문화 행사가 열린 적은 있지만, 지속해서 상설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진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명도가 낮아 설 무대가 적은 새내기 예술가들에게 공연·전시 공간을 내주기도한다.  
 
지난 6월 12일 물결서사 앞에서 열린 조현상(오른쪽) 성악가의 데뷔 콘서트. 관객들은 서점 안에서 공연을 봤다고 한다. [사진 물결서사]

지난 6월 12일 물결서사 앞에서 열린 조현상(오른쪽) 성악가의 데뷔 콘서트. 관객들은 서점 안에서 공연을 봤다고 한다. [사진 물결서사]

최근에는 색다른 장터도 열렸다. 물결서사 작가들은 지난달 31일 전주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단 '인디'와 손잡고 서점 앞 공터에서 '야시장 인디'를 열었다. '생태의 순환과 자원의 활용'이라는 주제로 주민들은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과 원예식물을 팔고, 20~30대 청년 작가들은 자신들이 만든 소품 등을 전시·판매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고객도 늘고, 다른 지역에서도 서점을 찾아온다고 한다. 주민 반응이 좋아진 건 최대 성과로 꼽힌다. 고형숙(43) 작가는 "시민에게 기증받은 책이 하나둘 모이더니 지금은 책장이 후들거릴 정도로 많아졌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와 주기적으로 헌책을 주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고, 단골도 생겼다"고 했다. 서점이 동네 사랑방이자 시민 쉼터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점을 성매매 업소로 착각해 문을 두드리거나 주민들은 작가를 이방인 대하듯 경계했다고 한다. 
 
물결서사 작가들이 지난달 31일 전주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단 '인디'와 손잡고 서점 앞 공터에서 연 '야시장 인디'에서 김승수(가운데) 전주시장이 시민들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물결서사 작가들이 지난달 31일 전주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단 '인디'와 손잡고 서점 앞 공터에서 연 '야시장 인디'에서 김승수(가운데) 전주시장이 시민들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임주아(30) 물결서사 대표는 "이것도 창업이고 장사여서 매출이 나와야 서점이 유지가 되는데 아직 책 판매 수입만으로는 운영비 대기가 벅차다"며 "다른 동네 책방처럼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주민과 예술가 모두 행복한 동네를 만들겠다"는 작가들의 초심은 변함없다고 한다. 임 대표는 "혼자 작업하는 게 익숙한 예술가들이 성매매 집결지라는 낯선 환경에서 공동 작업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지만, 각자 자신은 물론 사회를 좀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선미촌은 누군가에게는 어둡고 피하고 싶은 공간이지만, 우리에게는 뭐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라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 사무실이 선미촌 골목에 있다. [사진 전주시]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 사무실이 선미촌 골목에 있다. [사진 전주시]

▶전주 선미촌의 '어제와 오늘'

1950년대 옛 전주역(현 전주시청 부지) 주변에 형성된 선미촌은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규모가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성매매 업소 17곳이 영업 중이고, 성매매 여성 약 25명이 종사하고 있다. 전주시가 집창촌을 문화·예술촌으로 바꾸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16년 8월 기준 성매매 업소 49곳, 성매매 여성 80여 명에서 3년 만에 3분의 1로 줄었다.

선미촌은 왕복 6차선인 기린대로를 사이에 두고 전주시청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1000만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과도 불과 800m 거리에 있다. 전주고와는 100m도 채 안 된다. 대규모 사창가가 도심 한가운데 있다 보니 전주 이미지를 먹칠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할 때는 '선미촌 문화 재생 사업'으로 불리다가 2017년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은 지난 2017년 6월 아예 사무실을 선미촌 골목으로 옮겼다. 정은영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장은 "물결서사 외 전주시가 매입한 나머지 건물들도 철거와 리모델링을 거쳐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센터와 복합문화 공간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주시는 1~2평짜리 쪽방 10여 개가 다닥다닥 붙은 여인숙 형태는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선미촌의 어두운 역사를 곱씹을 수 있는 '기억의 공간'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전주시는 전주농협에 빌려준 선미촌 내 시유지(188㎡)의 임대 기간이 끝나자 2017년 이곳을 잔디와 키 작은 관목을 심은 시민 쉼터 '시티 가든'으로 꾸몄다.

전주시는 굴착기로 밀어붙여 없애는 전면 개발 방식이 아니라 선미촌에 물결서사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 늘어나면 성매매 업주들도 자연스레 업종 전환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에는 성매매 업소가 냉면집으로 바뀌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말처럼 전주시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선미촌을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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