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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도 반기 들었다 "내가 하녀냐, 도련님·아가씨라고 부르게"

“7남매나 되는 집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간 친구가 늘어놓은 시집살이 얘기 중 ‘네살배기 시누한테는 애기씨 소리가 안 나오더라’ 이런 말이 있었다. 하녀가 아닌 바에야 도련님이니 작은 아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가족적이고 친근하지 않을까.”
 

“사회상에 맞게 평등하고 친근하게 부르자“
피켓 시위에 청원, 정부도 나서 개선 움직임

1966년 2월 동아일보에 이런 기고문이 실렸다. 50여년 전에도 유독 남편의 가족 구성원만 높여 부르는 관행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최근엔 이런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성차별적 호칭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왜?

세계 207개 언어 중 ‘공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너’라는 의미의 2인칭 대명사를 쓰기 꺼리는 언어가 7개 있는데 한국어가 여기 속한다. 즉 ‘너’를 ‘너’라고 못하는 언어인 것이다. ‘너’나 ‘당신’이 아닌 대체 호칭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 언어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고 관련 호칭이 사라졌지만 가족관계의 복잡한 호칭은 남아있다. 성 평등 의식이 높아지면서 시댁이나 서방님처럼 여성이 남성 가족을 부르는 호칭이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라고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추석_양가 호칭 어떻게 다르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추석_양가 호칭 어떻게 다르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17년 국립국어원이 실시한 40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6명(65.8%)꼴로 호칭을 개선하자고 답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월28일부터 2월22일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온라인 참여 플랫폼인 ‘국민생각함’에서 진행한 설문에서도 가족 호칭에 개선이 필요하단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혹은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지만 아내의 동생은 처남이나 처제로 낮춰 부르는 데 ‘문제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98.4%를 차지하면서다.
 
한 인터넷 맘 카페에 “서방님이라는 호칭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다르게 부를 방법이 없나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는 “도련님 서방님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상해요” “도련님, 아가씨는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인데 여자는 시댁의 종과 같다는 암묵적 인식이 깔렸단 의미잖아요”라는 댓글이 수두룩 달렸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호칭은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계가 어떤지를 반영한다. 처남, 처제, 도련님 등 호칭에선 출가외인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난다”며 “호칭을 부름으로써 그 세계관에 동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수십 년째 바뀌지 않는 건 왜일까. 신 교수는 “호칭 문제는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통해 새 가족 구성원이 되는 당사자에게만 한정된다”며 “남성은 불러본 적이 없으니 공감하기 어렵고, 여성도 당사자일 땐 공감했다가 나이가 들어 내 입장이 안 되면 불편함이 사라진다. 습관적 사용으로 문제의식에서 무뎌진다. 오랜 시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피켓에 청원까지 등장…시대가 달라졌다

 
최근에서야 문제를 공감하는 이들이 늘면서 가족 호칭 문제가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부 차원에서 움직임을 보이는 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 5월 가족 호칭 토론회를 연 데 이어 최근 추석을 맞아 도련님, 아가씨 대신 이름을 부르는 등 새 호칭을 제안했다.
 
이런 문제를 화두로 던지고 합리적 대안 찾기에 나서려는 노력이 없던 건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06~2007년 가족 사이 서로를 지칭하는 용어의 상당수가 여성 비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성 평등한 호칭으로 바꿔야 한다는 ‘호락호락’ 캠페인을 이끌었다. “‘며느리’는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니 남존여비 사상에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다. 올케 역시 오라비의 겨집(계집)에서 유래한 호칭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반발이 컸다. 가족 호칭이 오랜 전통을 반영하는 고유의 문화를 담고 있어 무조건 배척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 호칭. [자료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가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 호칭. [자료 여성가족부]

  
그러다 시대에 맞게 호칭을 재정비해보자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받으며 피켓 시위에 이어 청원까지 등장했다. 30대의 한 프리랜서 작가는 지난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 1인 시위를 했다. 2017년 청와대 게시판이 만들어진 이후 현재까지 가족 호칭과 관련된 국민청원은 30여건 올라와 있다.
 
여가부가 최근 도련님 대신 OO씨, 장모님 대신 어머님, 외할아버지 대신 할아버지로 부르자고 제안한 것에도 호응이 따른다. 여성들은 이 뉴스를 각종 커뮤니티에 퍼 나르며 “시대도 변하고 생각도 변해야 한다” “좋은 변화가 돼 전통을 지키면서 가족이 평등한 신뢰를 구축했으면 좋겠다” 식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혼의 김모(34)씨는 “남자인 나조차도 거부감이 든다. 바뀌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일각에선 “집안 어른이 먼저 나서 줘야 자연스럽게 집안의 전통이 바뀐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가족부의 추석 맞이 가족 캠페인 포스터. [사진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의 추석 맞이 가족 캠페인 포스터. [사진 여성가족부]

 
신 교수는 “관계는 언어로 시작하는데, 호칭이 불편하면 말을 안 하게 된다. 서로 만나고 싶지 않아진다. 그런 차원에서 호칭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라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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