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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0만원 강의 1개 남아"…20년차 대학강사의 한숨

지난달 말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비정규직교수노조가 강사법 시행 첫 학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지영 인턴기자

지난달 말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비정규직교수노조가 강사법 시행 첫 학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지영 인턴기자

대학강사의 고용을 1년 이상, 최대 3년까지 보장하는 강사법이 지난달 시행됐다.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목적과 달리 “실직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 네 차례나 미뤄졌던 법이다. 강사법 시행 첫 학기를 맞아 어려움에 처한 전업강사 A씨와의 인터뷰, 취재팀의 취재 내용을 A씨가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법시행 뒤 첫 학기 맞은 전업강사
2학기부터는 특임교수로 채용
수입 최저생계비보다 적지만
강의 있다고 정부지원 대상 제외
“생계 고민없이 강의하는게 소원”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전업강사입니다.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시간강사였지만, 이번 학기부터 ‘특임교수’란 명함을 갖게 됐습니다.
 
이름과 나이, 소속과 전공을 밝히지 못하는 점을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행여 대학이 알게 되면 제게 단 하나 남은 강의까지 잃을까 걱정됩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생계를 꾸리지 못한 제 처지를 주변에서 알까 두렵기도 하고요.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20여년을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제 분야는 국내에 박사학위자가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어요. 이른바 ‘소수 전공’인데 교수 자리도 적어 임용은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가끔 프로젝트에 참여하긴 하지만 주로 강의로 생계를 꾸려왔습니다. 넉넉하진 않아도 학생을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죠.
  
1학기 강의 전혀 못 맡은 강사 7834명
 
강사법 시행 앞둔 대학들, 시간강사는 줄이고 다른 비전임은 늘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강사법 시행 앞둔 대학들, 시간강사는 줄이고 다른 비전임은 늘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런데 이번 학기부터 시행된 강사법이 제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법 시행을 수년간 미루는 사이 대학들은 하나둘 강의를 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올해 1학기엔 대학 두 곳에서 각각 한 강의만 맡게 됐죠. 수입도 월 100만원 수준으로 줄었고요.
 
이번 학기엔 강의 하나만 남았습니다. 지난 학기 초 수년간 강의했던 한 대학에서 “다음 학기는 다른 분께 맡겨야 할 것 같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짐작 가는 게 있었죠. 대학들이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사를 줄이고, 그 강사가 맡던 강의를 계속 채용할 강사에게 넘긴다고 들었거든요.
 
지난 5월 다른 대학의 과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2학기부터는 ‘특임교수’로 채용하겠다고 필요한 서류를 알려주더군요. 강의료나 처우는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그런데 강사법 적용대상인 강사(최대 3년까지 고용 보장)와 달리 학기나 연단위로 계약합니다. “강사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말도 돌았지만 고민 끝에 서류를 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든 강의를 유지하고 싶었거든요.
 
올 1학기 강의 잃은 강사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올 1학기 강의 잃은 강사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결국 이번 학기는 강의료 수입이 한달 40만원도 안 됩니다. 최저생계비(1인 68만원)보다 적어요. 그래도 강의를 모두 잃은 분들보다 낫다고 위안했죠. 교육부 발표를 보니 올 1학기 전국 대학의 강사 수(4만6925명, 전문대 포함)는 지난해 1학기(5만8546명)과 비해 20% 가량(1만1621명) 줄었답니다. 전임교원이 되거나 저처럼 다른 비전임교원으로 옮긴 분을 빼고, 강의를 전혀 못 맡은 강사가 7834명이나 됩니다.
 
내심 정부 지원을 받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교육부가 매년 진행하던 시간강사 지원사업(강사당 연간 1400만원)을 확대해 어려움에 처한 강사를 돕는다는 뉴스를 봤거든요.
 
그런데 문의해보니 “신청 자격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신청 마감일 기준으로 강사로 채용되지 않은 연구자’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하나 남은 강의를 포기하면서까지 신청할지, 그렇게 하면 제 강의를 듣는 학생에겐 뭐라고 해야 할지. 강의를 포기하고 신청하면 지원을 받긴 하는 건지….
 
실직한 전업 강사는 주로 인문사회, 예체능 강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실직한 전업 강사는 주로 인문사회, 예체능 강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강사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2학기 개강을 앞두고 강사나 강의계획서를 확정 못 한 채 수강신청을 받은 대학들이 많아 ‘깜깜이 수강신청’이란 학생의 불만이 터져 나왔죠. 새 강사법에 따라 강사를 공채해야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진 거죠. 일부 대학에선 강의 수가 줄고 대형강의가 늘었다는 학생의 항의도 나옵니다. 강의에만 몰두했던 저 같은 ‘샌님’ 은 강사를 위한 강사법이 강사를 내모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누구 탓인지도 모르겠고요. 제 이야기를 듣던 기자는 대학들은 “등록금이 11년 연속 동결돼 가뜩이나 힘든데 재정 지원은 적다”고 정부를 탓하고, 교육부는 “충분한 재정 지원을 했는데도 대학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고 말해주더군요.
 
누구나 즐거워야 할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어두운 이야기만 꺼낸 것 같아 죄송합니다. 기자가 조심스레 명절 소원을 묻더군요. 내년엔 더 많은 수업에서, 더 많은 학생을 만났으면 합니다. 저 같은 소수전공 강사, 연구자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 모두 복된 한가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내년 더 많은 수업, 더 많은 학생 만나길”
 
올 1학기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4년제대, 학부 기준)는 1년 전보다 21% 줄었지만 전체 비전임교원(시간강사, 객원·초빙·특임·대우교수 포함)은 4%만 줄었다. 강사법 시행에 앞서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다른 명칭의 비전임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다른 직업이 있거나(겸임), 소수 전공이라 수요가 일정치 않아(특임) 규정대로 처리한 것”이란 입장이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많은 대학이 제도 안착에 노력하는 대신 강사법을 핑계로 부정적인 방식의 학사 개편을 진행 중이다. 관계 부처의 기계적인 대응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천인성 기자, 박지영 인턴기자(고려대 한국사)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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