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최훈 칼럼] 분노는 진자의 추처럼 되돌아온다

최훈 논설주간

최훈 논설주간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강행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문대로 청문회나 교육 제도, 권력 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상식과 인간의 염치(廉恥), 정의에 관한 삶의 근본적 질문 때문이었다.  
 

상식·정의 물었던 조국 법무 임명
국민과 ‘공감’ 대신 강행으로 끝나
사회의 트라우마, 분노로 침잠해
기표소·광장 통해 분출한 게 역사

임명권자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고교생 2주 인턴의 의학논문 제1 저자가 상식인가.” “청년들에겐 불평등에 죽창 들라 내몰고 뒤로는 불평등 쌓기 바빴던 조국이 그 ‘개혁성 강한 인사’인가.” “딸의 인턴, 상장, 스펙, 입학, 무엇보다 성적이 나빠 줬다는 장학금, 56억 재산에 생활비 보조 16만9000원 수령까지. 얼마나 많은 다른 청년의 기회를 조국 일가가 빼앗았는가.” “증권사 직원과 부인이 연구실 PC까지 몰래 떼어내 가야 했던 사모펀드는 이제야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 아닌가.” “명백한 위법이 없다는 조국 본인은 1인 가구인가.” “배운 자, 가진 자의 교묘한 탈법은 불법보다 더 큰 타락 아닌가.” “SNS상의 양심, 자신의 원초적 욕망을 낮밤으로 오간 이중인격에 대한민국의 법과 개혁을 맡기는 게 원칙과 일관성인가.”
 
진보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태도는 공감(共感)이다. 타인, 특히 고통받는 이의 입장에 서 보는 삶이다. 거기서 동정과 연민이 우러난다. 스스로 염치가 생긴다. 그리고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자는 진보의 가치가 나온다. “나는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지 않는다. 나 스스로 상처입은 사람이 된다”는 월트 휘트먼의 외침은 진보적 자세의 정수다. 그런데 과연 이건 진보인가. 조국의 임명권자는 상처받은 젊은이, 상식적인 선량한 국민과 진정 공감을 하고 있는가.
 
현란한 수사로 진보 개혁 아이콘을 뽐내 온 조국의 삶. 그의 법수호자 역을 엄호하는 여당 정치인들의 태도는 이 땅 다수의 ‘공감’과는 거리가 먼 위선(僞善)일 뿐이었다. 군사정권의 독재에 맞서 저항했던 ‘정의의 사도’로 30여년 명예와 권력을 누려왔던 운동권 386세력. 이들 주축의 권력이 어느덧 정권의 전리품에 중독된 수구(守舊)기득권으로 변질해 다수 국민에 가한 위해(危害)였다. 논점 회피, 의혹 물타기를 넘어 자신들이 옹립한 검찰총장의 조국 수사까지 가로막는 이율배반의 민낯은 차라리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게 그렇게 하고 싶다던 검찰 개혁인가. 조국을 고리로 한 진영의 레임덕 두려움이 물불 안 가리며 상식·염치·정의를 밟고 가는 진군(進軍). 이게 조국 사태다.
 
국민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는 조국 임명 이후의 가장 큰 후유증이다. 짜증, 허탈감을 넘어 무력감마저 느껴야 한 다수 국민. “차라리 잘 됐다. 바닥 막장으로 가는 길이니…”라는 자학과 조소마저 들린다. 진보적 가치를 지지해 온 상당수도 적잖은 실망과 의구심을 토로하고 있다. 숨 쉬는 공기와도 같던 상식과 염치, 정의가 사라지는 세상이란 걸 함께 목도한 때문이다.
 
치유가 가장 어려운 건 마음을 후벼파고 간 상처다. 사회적 트라우마는 냉소와 침묵, 무관심의 증상을 거쳐 거대한 집단 피해자 의식을 심연에 공유한다. 그러곤 용암 같은 분노의 에너지로 잠복한다. 이 침잠된 분노는 4·19부터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언젠가는 진자(振子)의 추처럼 되돌아 분출한다는 걸 역사는 증명해 왔다. 기표소나 광장의 출구를 찾아서….
 
비단 조국 사태뿐인가. 먹고사는 나라 살림이고  외교안보, 남북관계 어느 하나 국민들 마음에 편한 구석이 없다. 대통령과 정권이 국민을 걱정해 줘야 할 터에 거꾸로 국민들이 그들을 걱정하는 나라다. “이게 나라냐”며 엄동설한에 촛불 들어 나라다운 나라를 희구했던 국민들 아닌가. 도대체 국민들이 뭘 잘못했기에 이리 마음 둘 곳마저 없는 상심(傷心)에 이르게 하는가.
 
대한민국은 모두가 함께 피땀으로 일궈 온 나라다. 권력은 짧고 국가는 영원하다. 후대로 이어줘야 할 모두의 공동체를 소수 권력자들이 흔들 권리는 없다. 이 나라는 잠시 관리를 맡겨 둔 정권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국가다. 조국 임명에 이르기까지 단 한 가지라도 국민의 바람을 수용하거나 다독여 설득해 준 적이 있는가. 정권의 본질인 운동권 386 세력은 삶의 찰나인 젊은 시절의 굴레에서 여전히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들이 담은 세상은 바로 그 때였을 뿐이다. 내편, 네편의 증오로만 대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다. 세계 12위의 21세기 나라를 담고 가기에 그들의 이념과 실력, 지혜는 그릇이 작아도 너무 작을 뿐임을 조국사태는 드러내 주었다.
 
현 정권이 이즈음에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 있다. “그러므로 발이 땅을 밟는 지면은 좁기 짝이 없다. 비록 밟는 지면은 좁지만, 그 발이 밟지 않는 지면이 넓은 걸 믿은 후에야 안심하고 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故足之於地也淺. 雖淺, 恃其所不蹍而後善博也, 장자 서무귀 편).”
 
당신들이 밟아 온 땅 역시 지극히 좁았을 뿐이다. 그대들이 밟지 않은 무한의 땅 있기에 그대들도 추락 않고 밟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아는 진리란 것도 지극히 적다. 밟지 않은 땅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 밟지 않은 땅이 함께 있어야 당신들도 밟고 나아갈 수 있다.
 
최훈 논설주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