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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이코노믹스] 세계 최고 65% 상속세율, 한국 기업 명줄 다 끊는다

전문경영체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국은 ‘상속금지법’이라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상속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명목상 일본(55%)이 가장 높지만, 한국에선 기업상속에 할증이 붙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65%에 달한다.
 

전문경영체제 미국도 0.2% 불과
한국은 기업 다 팔아야 상속 가능
주주그룹이 장기투자 뒷받침하고
상속법 유연해야 장수기업 육성

상속받는 사람은 가진 돈이 별로 없다. 물려받는 자산을 팔아서 상속세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산을 팔면 양도소득세를 별도로 내야 한다. 결국 상속세 내기 위해 상속자산의 상당액을 팔아야 한다. 자산을 팔지 않고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그만큼의 돈을 대출받아 세금을 먼저 내고 기업을 키우면서 평생 빚을 갚아 나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7000억원이 넘는다. 대부분은 개인 주식담보대출로 처리해야 한다. 앞으로 LG그룹의 주가가 올라가면 다행이지만, 만약 주가가 내려간다면 그의 인생은 하염없이 고달파진다.
 
구 회장이나 다른 대기업 후계자들은 이렇게 평생 빚의 노예가 될지 모르는 부담을 안고서라도 기업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수많은 중소·중견 기업의 2~3세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 그래서 부모에게 회사를 팔고 남는 현찰을 물려달라고 요구한다. 산더미 같은 빚에 올라앉은 상태에서 경영자의 삶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이에 더해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 승계도 봉쇄돼 있다. 회사 지분의 5%까지만 증여세를 면제해준다. 5% 지분으로는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 게다가 공익재단이 본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정부가 판단하면 언제든 국고로 귀속시킬 수 있다.
  
“한국 경제 만악의 근원은 상속세”
 
현재 상속 관련 규제는 세금을 다 내면 기업상속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다 보니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 동원됐고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싱가포르의 한 금융전문가는 “한국경제에서 만악(萬惡)의 근원이 상속세제에 있다”고까지 말한다.
 
상속금지법에 해당하는 규제가 생긴 것은 반(反)재벌 정서가 강하기 때문이다. 재벌 2, 3세들이 그룹을 물려받아 ‘황제’ 같은 권한을 행사한다는 대중의 반감(反感)이 깔렸고, 정치 세력들이 ‘이런 국민 정서’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된 데는 ‘정서’와 ‘정치’를 넘어 기업 경영 및 금융 환경에 관한 오해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기업상속을 실질적으로 금지할 경우의 대안으로 많은 학자와 정치인, 정책담당자는 “구태여 상속하지 말고 전문경영체제로 가면 미국처럼 잘 될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20세기 중반 미국 대기업에서 전문경영이 잘 작동했다는 사실만 알고 그 체제를 아무 데나 아무 때나 경전처럼 적용할 수 있다는 착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전문경영체제는 상장 대기업에만 국한됐다. 2013년 기준으로 미국의 상장기업은 4180개다. 상장기업 중 약 3분 1 정도는 대주주 경영이다. 같은 해 미국의 법인 숫자는 약 161만개에 달한다. 중소·중견기업이 대다수인 비상장 법인은 거의 대주주 경영이다. 그렇다면 전문경영 기업은 숫자상으로 전체 법인의 0.2%에 미치지 못한다.
 
전문경영 신봉자들은 미국에서조차 0.2%에 불과한 현상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한다. 이들은 미국에서 전문경영체제가 들어설 때와 지금의 금융 및 규제환경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사실에는 눈 감고 있다.  
 
20세기 초반 이후 미국 창업자들이 주식을 팔고 경영 일선에서 쉽게 물러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기업의 연속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당시 새로 들어온 주주들은 대부분 개인투자자였다. 이들은 기업통제에 관심이 없었고 주식을 여윳돈 굴릴 수 있는 새로운 투자대상이라고만 생각했다. 1920년대부터 기관투자자가 등장하자 미 정부는 이들의 기업경영 관여를 억제하는 원칙을 세웠다. “기관투자자가 투자 다변화 이상을 생각하는 것은 도둑질하려는 것”이라고 증권거래위원회(SEC) 고위 간부가 의회에서 증언할 정도였다.
  
전문경영 숭배론은 과장된 신화
 
이런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에게는 창업자 주식지분에 딸려 있던 금전적 관리만 넘어갔다. 기업 통제력은 창업자와 동고동락했던 기존 전문경영진에 남겨졌다(그림 1). 전문경영진은 그 통제력을 기반으로 창업정신을 지키며 ‘유보와 재투자(retain-and-reinvest)’를 실현했다. 이들은 세계 대공황 기간에 연구개발 투자를 더 늘릴 정도로 장기투자를 실행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기관투자자·사모펀드·헤지펀드의 힘이 강해지고 주주 가치론이 득세하면서 전문경영체제는 큰 변화를 겪었다. ‘주주환원’이라는 명분으로 자사주 매입·배당 등이 많이 늘어났다. 미국 상장 대기업은 현재 순익의 10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하고 구조조정이나 차입 등을 통해 투자 활동을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성공적 전문경영의 상징이었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몰락했다. 제너럴 모터스(GM)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반면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혁신적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차등의결권을 사용해 ‘주주환원’ 요구에 차단막을 치고 장기투자를 이어간다.
 
한국 기업들이 지금 같은 금융·규제 환경에서 대주주 지분을 팔면 매입세력은 대부분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혹은 경쟁사들이다. 이들은 주식에 딸린 금전적 권리와 통제력을 함께 인수한다. 그리고 기업 통제력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 돈 되는 자산만 이리저리 팔며 기업을 해체할 수도 있고, 통째로 다른 회사에 합병시킬 수도 있다. 기업 연속성이 지켜지는 것은 여러 방안 중 하나일 뿐이다(그림 2). 한국의 ‘상속금지법’이 실질적으로 ‘기업 명줄 끊기 법’이 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이 한국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찾기 어렵다. 세대를 넘어 장기투자를 지속할 수 있어야 튼튼한 기업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중간에 기업 연속성이 끊기면 투자가 흔들린다. 사모펀드 등 매입자들은 적당한 때에 회사를 되팔려고 한다. 최종 매입자들은 중국 등 경쟁국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애써 키운 기술과 경영 역량을 경쟁자에게 헐값에 넘겨주게 된다.
 
한국의 상속규제에는 기업 상속에 대한 적개심만 있고 기업을 어떻게 계속 키워나갈 것인지에 관한 대안이 없다. 무책임한 전문경영 숭배론만 있다. 기업이 장기투자하고 일자리를 지속해서 창출하기 위해 주주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이 국가경제에 바람직한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 연속성 유지가 대안
상속세의 근본 취지는 지나친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 줄이기다. ‘부의 대물림’을 통해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것을 완화하고 거둔 세금으로 소득재분배 효과까지 거두자는 얘기다.
 
그러나 세계 최고 상속세율을 유지해도 한국에서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가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상속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기업상속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카타르시스’를 국민에게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양극화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상속세의 근본 취지를 달성하면서 기업 연속성을 유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안은 공익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는 방안이다. 기업통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공익재단을 통한 승계는 대주주 지분에 딸린 금전적 권리는 공익을 위해 활용하고 기업통제력은 재단을 통해 세대를 넘어 유지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3).
 
세금은 한 번 거둬쓰면 그만이지만 공익재단을 통해 기업이 유지되고 돈을 계속 벌어들이면 공익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의 규모가 훨씬 커진다. 또 세금은 정치적 목적 등으로 낭비될 수 있지만, 공익재단은 기업인들의 역량을 활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
 
한편 기업은 창업정신에 입각한 기업 통제력이 유지되기 때문에 장기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은 장기투자로 유명하다. 현재 5세대 최고경영자인 야콥 발렌베리는 자신들의 지분투자 전략이 “보유하기 위해 매입하는 것(buy to hold)”이라며 자신들에게 ‘보유’란 “100년 이상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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