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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첨단 물시계, 장영실의 '흠경각옥루' 581년만에 복원

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 박사가 2일 과학관 전시실에 복원 설치된 1438년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천상(天象) 자동 물시계인 옥루(玉漏)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 박사가 2일 과학관 전시실에 복원 설치된 1438년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천상(天象) 자동 물시계인 옥루(玉漏)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서 9일부터 전시

 
  ‘산꼭대기에는 해를 비롯한 천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금빛 혼천의(渾天儀)가 돌고, 그 아래엔 4명의 선녀가 매 시간마다 종을 울린다. 산 기슭은 동서남북 사분면을 따라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산이 펼쳐져있다. 산 아래 평지에는 밭 가는 농부, 눈 내린 기와집 등 조선땅의 사계절이 묘사돼 있고, 쥐ㆍ소ㆍ호랑이와 같은 12지신상 일어섰다 누웠다 반복하며 시간을 알린다….’
 
국보 229호 보루각루(자격루)를 넘어서는 조선시대 최첨단 자동 물시계 ‘흠경각 옥루’(玉漏)가 581년 만에 복원됐다. 국립중앙과학관은 9일 조선 최고의 과학기술인 장영실이 만든 최고의 역작 흠경각옥루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흠경각옥루는 조선시대 임금을 위한 자동물시계로, 세종 시절인 1438년 만들어져 침전인 경복궁 강녕전 옆에 설치됐다. 흔히 자격루로 알려진 당시 국가표준시계 보루각루(1434년)를 만든 지 4년 만이다. 복원된 옥루는 9일부터 대전 유성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공식 전시를 시작했다.
 
옥루 세부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때가 되면 솟아오르며 시간을 알리는 12지신상. 2.산 중턱에서 종과 징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무사, 3.산아래 평지에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4.눈이 내린 겨울 풍경. 프리랜서 김성태

옥루 세부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때가 되면 솟아오르며 시간을 알리는 12지신상. 2.산 중턱에서 종과 징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무사, 3.산아래 평지에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4.눈이 내린 겨울 풍경. 프리랜서 김성태

"백성을 생각한 세종의 꿈을 담은 것" 

 
흠경각옥루는 사계절을 담은 산과 농경생활을 통해 하늘이 정해주는 시각의 중요성, 즉 천문과 지리와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당시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농본정치의 최우선으로 하는 세종의 꿈을 담은 것이라는 게 과학관의 설명이다.  
 
중앙일보는 9일 공식 공개에 앞서 지난 수개월간 흠경각옥루의 복원 막바지 과정을 지켜봤다. 지난달 30일 마지막으로 찾은 대전 과학관 2층에는 막 조립을 마친 옥루가 마지막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옥루의 첫인상은 시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계절을 담은 산과 들이 폭 3.3m, 높이 3.3m의 웅장한 크기로 서 있었다. 선녀ㆍ무사들이 산과 평지 곳곳에서 징과 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리며 시간을 알렸다. 소리뿐 아니다. 12선녀와 짝을 이룬 12지신은 동작으로 시간을 말해줬다. 자시(23시~1시)가 되면 누워있던 쥐사신이 일어서는 방식이다. 앞서 복원된 보루각루가 15개의 인형이 시간을 알린다면, 옥루는 37개의 인형과 천체의 움직임을 담은 혼천의까지 구비돼 한 차원 높은 시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옥루의 아래쪽 창에 톱니로 된 기륜이 장치된 내부 모습이 보인다.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옥루의 아래쪽 창에 톱니로 된 기륜이 장치된 내부 모습이 보인다.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15세기 만들어진 세계 시계 중 최첨단 

 
옥루의 이런 복잡한 작동비결은 산과 평지 아래 숨어있는 기계장치에 있다. 물레방아 모양의 수차에 연결된 여러 단계의 톱니바퀴들과 여기에 연결된 걸턱 등의 장치로 움직이는 구슬들이 때를 맞춰 선녀와 무사ㆍ12지신 등을 순서대로 움직인다.
 
연구책임자인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과학유산보존과장은 “옥루는 장영실이 중국을 찾아 북송 시절의 물시계 수운의상대 등을 보고 관련 문헌을 수집한 뒤 조선에 돌아와 만든 것”이라며 “수차 동력장치를 이용한 중국의 물시계와 구슬장치를 쓴 이슬람 알자지라의 물시계 원리를 융합해서 만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이며 15세기에 만들어진 시계 중 가장 진화한 형태”라고 말했다.
흠경각 옥루의 내부 구조. 물이 물레방아 모양의 수차를 돌리고, 수차가 내부 기륜들을 돌려 움직이는 방식이다.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흠경각 옥루의 내부 구조. 물이 물레방아 모양의 수차를 돌리고, 수차가 내부 기륜들을 돌려 움직이는 방식이다. [사진 국립중앙과학관]

복원까지 6년간 전문가 총동원 돼  

 
흠경각옥루가 복원되기까지는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의 김상혁 박사가 앞서 3년간 선행연구를 했고, 이어 이를 토대로 윤용현 과장(한국과학기술사 박사)이 주도해 다시 3년에 걸쳐 실물 복원을 했다. 복원 과정도 지난했다. 2008년 복원된 보루각루(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물통 부분 등 일부가 덕수궁에 남아 국보로 지정돼 있고, 원리를 담은 제작기록이 자세히 남아있어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옥루는 명종 때 흠경각루가 불에 타서 없어진 뒤 다시 만들고, 임진왜란 때 경복궁 전체가 화재로 불타 없어지면서 같이 재로 변했다. 이후 광해군 때 창덕궁에 흠경각과 함께 옥루도 재건을 했지만, 효종 이후론 기록에서 사라진다. 설상가상, 광해군 당시 제작기록을 자세히 담은 흠경각 의궤마저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의 강화도 외규장각 약탈과 함께 어디론가 없어졌다. 세종실록 등에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겉모습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며, 자세한 작동원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복원은 국립중앙과학관이 주축이 돼 고천문학자ㆍ고문헌학자ㆍ복식사학자ㆍ조경사학자ㆍ고건축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문헌과 천문의기ㆍ복식ㆍ수목ㆍ건축 등 고증을 거쳐 원형에 최대한 충실하도록 제작했다.  
 

"경복궁 흠경각에 다시 옥루 들어가길"

 
윤용현 박사는 “옥루에 대한 문헌연구뿐 아니라 중국의 대표적 물시계 수운의상대가 복원돼 있는 대만과 이슬람 알자지라가 만든 코끼리 물시계가 있는 터키 등지를 방문해 공동 세미나도 열면서 구조를 완전히 파악한 다음에 옥루에 적용했다”며 “15세기 장영실이 옥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병선 국립중앙과학관장은 “15세기 당시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에도 자연을 대상으로 이처럼 화려한 시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대전 과학관뿐 아니라 원래 자리인 경복궁 흠경각루에 복원된 옥루를 전시해 일반 관광객들에게 우리 조상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알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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