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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엉클어진 한·일 관계, 문화평화로 풀자

최상용 전 주일대사

최상용 전 주일대사

우리 사회에서 요즘처럼 평화란 말이 회자된 적이 없다. 대학·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평화연구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평화는 국정 최우선 가치가 돼 있다. 지금까지 이론과 실천에서 검증된 평화 이론은 ‘민주평화론’과 ‘경제평화론’이다. 민주평화는 민주주의가 평화의 토대라는 관점이다. 정치체제가 민주적일수록 평화적이고, 민주국가 간에는 전쟁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이론이다. 경제평화는 경제적 상호 의존이 평화의 핵심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민주평화와 경제평화의 철학적 뿌리가 칸트의 ‘공화제 평화’와 ‘통상 평화’에 있다는 것은 정치학의 상식이다.
 

문화는 한·일 관계 마지막 보루
문화 교류로 갈등 줄일 수 있어

1990년 국교 정상화 전의 옛 소련 방문 때가 생각난다. 당시 소련 평화 전문가들이 평화 공존을 이데올로기 공존으로 해석하는 데 대해 나는 평화 공존을 ‘평화적 경제 상호의존’으로 정의한 적이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평화경제도 경제적 조건으로서의 평화와 함께 남북한 경제의 상호의존 관계가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나는 경제평화와 함께 문화평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문화 교류가 왕성한 국가 간에는 갈등과 전쟁 가능성이 작고 문화외교가 갈등을 푸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느 국가나 민족의 문화가 강력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돼 정체성의 과도한 형태로 나타날 경우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간의 지속적 문화 교류는 문화의 폐쇄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상호 학습 과정이기 때문에 평화 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다.
 
놀랍게도 현대사에서 문화국가의 지표로 평화문화를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김구 선생이다(『백범일지』). 21세기 출발점인 2000년은 유네스코가 평화문화(peace culture) 개념을 제시한 원년이기도 하다. ‘문화평화론’은 문화가 소프트파워인 평화의 상징이며 문화 교류가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일 관계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 지금, 문화평화를 지향하는 공공외교를 펼쳐보면 어떨까. 다행히 한·일은 문화 교류의 확충으로 화해·협력한 좋은 선례가 있다. 1998년 두 나라가 반성과 화해를 상호 인정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내 80%의 반대 여론에도  일본 대중문화에 한국 시장을 개방했고 그것이 한류의 출발점이 됐다.
 
65년 국교 수교 이래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오면서도 경제 교류는 갈등 해소의 기둥 역할을 했다. 지금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경제 교류마저 장해를 받고 있고, 한국은 이에 대응해 지소미아 종결 조치로 맞서고 있다.
 
이제 문화는 한·일 관계 지탱의 마지막 보루다. 문화 교류는 상호 학습을 통한 이해 폭을 넓혀 한·일 갈등 요인을 크게 줄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2005년 교과서 문제로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한·일은 그 해를 ‘우정의 해’로 정해 750여개의 문화행사를 치렀다. 이후 15년 동안 매년 열려온 한일문화축제는 한·일 관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민간 주도 문화 교류로서, 특히 젊은 층의 호응이 늘고 있다. 수교 이래 최대의 위기로 불리는 올해에도 서울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지난달에는 한·중·일 3국 문화장관이 인천에서 만나 상호 존중과 호혜 원칙에 따라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공동 합의를 하고 한·일 문화 교류·협력의 공감대를 확인했다. 오래전부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중·일 베세토(BESETO) 오케스트라 창설을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본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 식민 지배했던 35년은 잊을 수 없는 과거다. 그러나 일본이 최초로 인식한 외국이 우리나라였고, 그 후 1500여년의 문화 교류를 생각하면 헤어지기엔 너무나 깊은 한·일 관계가 아닌가.
 
최상용 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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