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생물 상태로 간장·참기름에 슥슥…멸치도 생선이네

[이택희의 맛따라기] 멸치의 재발견

멸치는 계절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위에서 반시계방향으로) 잡은 뒤 바로 삶아낸 멸치, 간 정도 말려 부드러운 식감의 멸치, 완전히 말린 멸치(세멸), 중간 크기 멸치(중멸), 가운데는 삶기 작업하지 않은 생멸치(일종의 멸치회). 크기가 작은 지금만 먹을 수 있다. 멸치와 함께 잡힌 새우와 꼴뚜기. 신인섭 기자

멸치는 계절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위에서 반시계방향으로) 잡은 뒤 바로 삶아낸 멸치, 간 정도 말려 부드러운 식감의 멸치, 완전히 말린 멸치(세멸), 중간 크기 멸치(중멸), 가운데는 삶기 작업하지 않은 생멸치(일종의 멸치회). 크기가 작은 지금만 먹을 수 있다. 멸치와 함께 잡힌 새우와 꼴뚜기. 신인섭 기자

‘멸치도 생선이냐’고 우스개를 한다. 사전은 생선을 ‘식용으로 잡은 신선한 물고기’라고 풀이한다. 우리가 아는 멸치는 생선과 거리가 멀다. 잡아서 삶고 말려 선별·포장해 경매·도매·소매 등 몇 단계를 거쳐 식탁에 오르니 신선하다 하기 어렵다.
 

보령 오천항 ‘다정수산’ 홍명완 대표
갓 건진 멸치, 얼음에 재워 뭍으로
진공포장해 영하 30도 급랭 배송
원물에 가깝게 소비자 식탁으로

마른 잔멸치, 견과류 섞어 강정
삶은 멸치로 파스타·우동 고명도

멸치도 당당한 생선이 되게 하려고 온갖 궁리를 다 하는 사람이 있다. 11년차 어부, 멸치잡이 배 동진호 선장 홍명완(36)씨다. 보령 오천항에서 작업선 2척, 운반선 1척에 선원 10명으로 구성된 선단 2조를 운영하는 그는 멸치를 가공하는 기업 ‘다정수산’의 대표이기도 하다. 한 해 생산량은 마른멸치 10만~15만 상자(1.5㎏ 기준), 국내 전체의 0.3%쯤 된다.
 
그의 목표는 갓 건진 멸치를 원물에 가장 가깝게 먹을 수 있도록 공급하는 것이다. 6~8월 잔멸치를 잡자마자 얼음에 재워 냉장 운반선에 싣고 최대한 빨리 육지로 옮긴 다음 진공포장하고 영하 30도로 급랭해 아이스박스에 담아 배송한다. 지난달 한 차례 시험 판매를 했다. 미식 최전선의 활동가들이 먹어 보고 새로운 맛 경험을 앞다퉈 자랑했다.
  
“반건조 멸치는 우리만의 기술”
 
어선 2척이 함께 그물을 당겨 멸치를 잡는다. 신인섭 기자

어선 2척이 함께 그물을 당겨 멸치를 잡는다. 신인섭 기자

홍 선장은 생멸치에 채소 넣고 초고추장으로 무쳐 먹든지, 맛간장+고추냉이 또는 맛간장+참기름(올리브유)에 비벼서 먹기를 권한다. 이렇게 먹으면 멸치도 명실공히 생선의 요건을 갖춘다. 그는 이 방식을 음식점 메뉴로 보급하려 한다.
 
이를 위해 9년간 마른멸치를 생산하다가 지난해 삶은 멸치를 진공·냉동 포장해 처음 팔기 시작했다. 올해는 반건조 멸치(‘아빠멸치’)를 시장에 내놨다. 생멸치 단계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유통시험이다. ‘홍 선장 멸치’에 시장 반응은 호의적이다. 밥할 때 얹고, 견과류 섞어 강정 만들고, 파스타와 우동에 올리고. 고급 멸치로 육수·젓갈(고향이 광천)도 생산할 예정이다. ‘아빠멸치’ 포장에는 제품 탄생의 일화가 적혀 있다. “한 날 제 아들(두 살)이 멸치를 먹다가 캑캑거렸습니다. 순간 목에 걸린 건 아닐까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죠. 아들에게 안전하고 좋은 멸치를 주기 위해 아빠가 직접 부드러운 멸치를 만들었습니다. 아빠멸치는 제 아이가 먹는 멸치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멸치의 선도와 상태는 양보 없이 최고로 좋은 것을 썼습니다.”
 
홍 선장은 포장에 적지 않은 설명도 덧붙였다. “아들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치아 약한 어르신들도 좋아하고, 환자식으로도 많이 나간다. 반건조 멸치는 우리만의 기술이다. 세계적으로 없는 방식이다. 연구 많이 했다.” 그가 궁리하고 노력하는 현장을 뒤밟아가며 멸치가 생산되는 과정을 살펴봤다.
 
선박에서 삶아낸 멸치를 건조장으로 옮겨 건조한다. 신인섭 기자

선박에서 삶아낸 멸치를 건조장으로 옮겨 건조한다. 신인섭 기자

오전 9시 50분 ‘다정수산’ 건조장(660㎡)에서는 새벽에 그물을 건져 작업선 본선에서 바로 삶은 잔멸치를 싣고 와 건조대에 흩뿌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멸치 맛은 신선도가 좌우하는데 잡아서 말리기까지 10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 열풍순환식 최신 설비지만, 건조에 2~3시간이 걸린다. 건조장 옆 선별장(660㎡)에는 멸치를 크기별로 고르는 선별기 앞에 밤새 말린 잔멸치가 사람 키보다 높게 무더기로 쌓여 있다.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 직원 10명은 마른멸치를 선별·포장해 저온창고에 보관한다.
 
그 일이 끝나면 또 바다에서 삶은 멸치가 도착한다. 서해 멸치 시즌인 6~10월(7월은 금어기) 4개월 동안 태풍이 불거나 배가 고장 나지 않는 한 이 과정은 날마다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
 
오전 10시 40분 운반선을 타고 오천항을 출항해 2시간 15분 만에 안면도 서쪽 10여㎞ 해상, 내파수도·외파수도 사이 해역에서 제2 선단을 만났다. 어군을 쫓아 이곳까지 온 것이다. 삶은 멸치를 옮겨 싣기 위해 본선 가까이 가자 싱싱한 생선 삶은 단내가 훅 끼쳐왔다. 바닷물에 간수 2년 뺀 천일염을 타서 멸치를 삶는 긴 사각 가마의 물은 우유처럼 뽀얗다.
 
건조된 멸치를 분류기로 선별해 상품화한다. 신인섭 기자

건조된 멸치를 분류기로 선별해 상품화한다. 신인섭 기자

2~3㎞ 떨어져 조업하는 제1 선단의 삶은 멸치까지 운반선에 옮겨 싣는 데는 30여 분 걸렸다. 2개 선단의 6시간 조업 어획량은 삶은 멸치 5㎏들이 멸치발(현장에선 ‘따까리’라 부름) 610개였다. 중간 정도 어획고라고 한다. 멸치발 하나에서 마른멸치 1.5㎏ 1상자가 나온다.
 
운반선 갑판에 쌓은 멸치발 안은 열기가 후끈후끈했지만, 2시간 가까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항구로 돌아오자 열은 다 식고 표면이 꾸덕꾸덕해졌다. 뭍에 닿은 시각은 오후 3시 25분. 운반선은 하루에 2~3회 이렇게 삶은 멸치를 실어 나른다.
 
서해에서도 멸치가 나오냐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25년쯤 전부터 본격적으로 조업했고, 지금은 국내 생산량의 40~50%가 서해에서 잡힌다고 한다. 그 전에도 바다에 멸치가 있기는 했지만, 잡는 방법을 몰랐던 듯하다는 게 홍 선장 생각이다. 정약전(1758∼1816)이 서해 흑산도에서 쓴 『자산어보』에도 멸치 잡는 방법을 상세히 기록한 걸 보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국내 생산량 40~50% 서해서 잡혀
 
다정수산 대표인 홍명완 선장이 운반선에 옮겨진 멸치를 살펴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다정수산 대표인 홍명완 선장이 운반선에 옮겨진 멸치를 살펴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요리 경향이 복잡한 양념과 조리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 본래의 맛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흐르는 요즘, 서해 한복판의 ‘홍 선장 멸치’는 음식 잘하는 요리사들 사이에서 화제다. 비싸도 맛있으면 구매를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찾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가 멸치를 들고 찾아다니면서 직접 맛을 알리기 시작한 1년 사이의 변화다.
 
멸치 작업현장에 8시간을 동행하면서 보니 홍 선장이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가치’였다. 너무 흔해서 별 관심을 갖지 않던 ‘멸치의 새로운 가치 창조’가 그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멸치는 시장에도 나가지만 최상품은 SNS를 통해 소비자를 직접 만난다. 홍 선장이 판매 공지를 하고 주문자가 입금하면 지정한 날짜에 일괄 배송하는 직거래 ‘공구’ 방식을 활용한다. 멸치 철에는 그가 주로 바다 작업선에서 생활해 고객 응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생멸치, 반건조 멸치, 마른멸치를 그가 권하는 방법으로 시식했다. 양념은 참기름(올리브유)·맛간장·초고추장·고추냉이를 이리저리 조합해봤다. 기름과 잘 어울렸다. 맛의 놀라운 신세계였다. “멸치가 원래 이런 맛이군요”라며 놀라자 그는 “내 멸치가 맛이 없다 하면 우리나라에서 먹을 멸치가 없다고 자부한다”며 얼굴이 환해졌다. 씨름선수 출신 어부의 130㎏ 거구에 힘이 실렸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