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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曰] 과거로부터의 복수

홍병기 경제전문기자

홍병기 경제전문기자

80년대 이전에 중·고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빛바랜 졸업 앨범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꾀죄죄한 까까머리에 군복 같은 검은색 교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이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 생소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어엿하고 당당한 장년의 풍채지만 어린 시절의 초라한 모습은 왜 그리 감추고 싶었는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일일 것이다.
 

SNS에 썼던 글로 발목 잡히는 일 허다
사색 통한 책임 있는 글쓰기 우선 돼야

인기 연예인들이라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데뷔 초기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절의 리얼한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굴욕’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며 만인들에게 웃음을 주곤 한다. 이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과거는 추억하기보다, 삭제하고 싶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위세를 떨치게 되면서 더욱 허다해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SNS에 올렸던 글 때문에 앞길이 막히거나 비난을 받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즘 논란이 되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행적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SNS에 올렸던 그의 많은 글을 놓고 ‘조국의 적은 조국(조적조)’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장관 후보자들을 향해 “파리가 앞발을 비빌 때 사과한다고 착각 말라. 때려잡아야 할 때다”라며 던졌던 독한 비난의 글만 해도 그렇다. 그 글은 최근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 “사과한다”를 외치는 그에게 바로 화살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과거의 글들이 오늘날 다시 살아나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라는 비난을 듣게 만들었다.
 
미국에선 과거 발언과 SNS의 글을 뒤지는 ‘신상털기’가 보복 수단으로 쓰일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은 비판적인 언론인들의 게시물들을 뒤져서 이를 캡쳐해놓고 불리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물타기용 반박 자료로 폭로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가 대학 시절 SNS에 올렸던 ‘쓰레기 유대인’ ‘찌질한 인디언’과 같은 인종차별적인 글이 폭로돼 곤욕을 치른 게 대표적이다. 남을 비난하려면 자기 자신의 발자취부터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는 말은 새삼 진리가 되고 있다. ‘기록은 기억보다 힘이 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축적된 과거의 기록은 이제 디지털 시대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명암이 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와 레오 포스트먼이 만든 ‘유언비어 공식’에 따르면 ‘한 사회 내의 유언비어(Rumor)의 강도는 사안의 중요성(importance)과 모호성(ambiguity)에 따라 결정된다(R = i X a)’고 했다. 다뤄지는 사안이 중할수록, 애매모호한 주장들이 난무할수록 유언비어는 판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안의 중요성이야 각자가 정하는 기준과 가치에 따른 주관적인 척도라지만, 모호성은 ‘아니면 말고’ 식의 팩트를 가장한 글쓰기가 파고들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선 깊은 넓은 분석보다 얇고 좁은 독설이 더 주목받는 게 문제다.
 
따라서 인터넷 공간에서의 글쓰기가 감정의 배출을 넘어서 특정한 신념과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면 저널리스트에 못지않은 책임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극단적인 글쓰기가 판치는 현상에 대해 “실시간으로 지금, 누가 무엇을 하는지에만 매달리다 보니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충동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를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에 빗대 ‘현재의 충격’이라고 명명했다. 검색이 아닌 사색을 통해 미래와 내일의 꿈을 그리는 사람들만이 시대의 충격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준엄한 진단이다.
 
그러니 인터넷 논객이 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여, 단순한 감정과 의견의 발산을 넘어서 이에 대한 확인과 증명의 장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다면 아예 펜을 들지 말지어다.
 
홍병기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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