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한 아이의 대학 진학을 놓고 온 사회가 들썩이는 세상풍경

 한 아이의 입시 특혜(?)를 둘러싸고 온 사회가 들썩인다. 지금 우리 사회 얘기냐고? 1950년대 말, 이스라엘 키부츠 공동체 얘기다. 장우재 연출의 신작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9월 1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가 그리고 있는 세상풍경이다.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상업극으로 도배된 대학로에 간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들이 돌아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현재 공연계에서 주목할 만한 연출가, 안무가들의 우수한 창작 공연을 소개하는 기획 프로그램 ‘2019 아르코 파트너’다. 장우재·이기쁨·서지혜 등 3명의 연출가와 박순호·허성임·권령은 등 3명 안무가의 공연이 10월 초까지 이어진다.

[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장우재 연출 신작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9월1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공연 아르코 파트너 선정작


 
장우재 연출의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는 러닝타임 160분이라는, 요즘 보기 드문 긴 호흡의 연극이다. 현대 히브리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소설 『친구 사이』를 원작 삼았기에 ‘나훔’ ‘즈비’ ‘오스나’ ‘다간’ ‘모시’ 등 귀에 붙지 않는 이름의 등장인물이 잔뜩 포진해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환도열차’ ‘햇빛샤워’ ‘옥상밭 고추는 왜’ 등 현대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조명하는 창작극으로 주목받아온 장우재로서는 다소 의외의 선택이 아닐까.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런데 60여년 전 먼 외국을 배경으로 한 무대는 놀랄 만큼 현재적이다. “옛날엔 여름이 이렇게 덥지 않았어. 가만히 있으면 시원했거든. 대신 겨울엔 추웠지.” 바로 얼마 전 내 입에서 나왔을 법한 이런 대사부터, 결국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삶이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변함없는 구석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무대가 정확히 그리고 있는 것도 그런 인간군상이다. 빙글빙글 회전무대가 쉴새없이 돌아가면서 키부츠 구석구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을 파노라마처럼 비춘다. 덩어리 세트 하나 없이 단출한 무대지만, 세탁소·보육원·양계장·양봉장·학교 등 각자 다른 장소에서 따로 또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사람들이 서로 엮이고 흩어지는 모습을 적절히 풀어낸다.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들은 주 6일, 하루 8시간씩 각자 배정된 일터에서 할당된 노동량을 묵묵히 소화하며 키부츠의 평화로운 존립을 유지하고 있다. 외부 세계와의 왕래가 드물기에 조용해 보이지만, 자극적인 사건도 없지 않다. 여학생이 30살 넘게 차이나는 아버지의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고, 믿고 의지하던 동성친구에게 남편을 빼앗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사건에 드라마는 없다. 너무도 일상적으로, 별일 아니라는 듯이 흘려보낸다.

 
드라마는 오히려 진짜 별것 아닌 일에서 시작된다. 키부츠를 떠나 부자가 된 외삼촌의 초청으로 이태리의 대학에 갈 수 있게 된 청년 요탐. 이 한 아이의 진학 문제로 키부츠 전체가 들썩인다. 넓은 세상에서 ‘나답게 살기’를 택하라는 쪽과, 공동체의 노동력 손실을 초래하는 불공평한 처사라며 막으려는 쪽이 대립한다. 이 문제는 키부츠 총회에서 투표에 부쳐지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또박또박 시간이 흘러가며 구성원들의 내면이 조금씩 드러난다. ‘평등이냐 자유냐’. 어쩌면 이 시대 가장 민감한 선택의 문제를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과연 요탐은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를 떠나 자유롭게 외국 유학을 갈 수 있을 것인가.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원칙제일’을 외치는 보수 세력과, 변화를 꾀하면서 ‘변화할 수 없다면 나라도 예외로 해달라’는 진보세력의 한바탕 줄다리기다. 폐쇄된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크다. “누구나 자유로울 권리가 있지만, 키부츠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이율배반을 말하는 교사는 고상하게 강의실에 머물면서 자기 학생이 유학을 떠나면 발생할 노동력 손실을 걱정한다. 라디오를 끼고 사는 정원사는 외부세계의 비극적인 소식을 끊임없이 전하는 ‘죽음의 천사’다. “노르웨이 국왕이 간암에 걸렸다더라”“소말리아 사람들은 종이장처럼 납작해졌다”“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져 10년 동안 새가 날아오지 않았다”는 식이다.  
 
평등을 자유보다 앞세우며 간신히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 사람들 모두가 외롭고 불행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질서를 흔드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 흥미롭다. 문제의 당사자인 요탐조차 “공평함이라는 원칙으로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는 게 있다”면서도 “근데 그 원칙으로 보호받고 싶다”는 모순 덩어리다.

 
이스라엘 키부츠라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마치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을 보는 듯 ‘딱 우리 사회 축소판’ 이다. 자신의 행복은 반쯤 포기한 채 살면서 자식의 입신출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누구의 자식이건, 입시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공연해지면 결코 용납하지 않는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과연 투표 결과는 어땠을까. 투표와 상관없이 요탐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열린 결말로 남고, ‘공동체란 무엇인가’란 질문도 남겨진다.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은 과연 자유로운 바깥세상에서 행복을 찾았을까. 혹시 모두가 평등하게 불행했던 키부츠를 그리워하게 되진 않았을까. 한때 키부츠를 떠났던 이는 ‘왜 돌아왔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양계장에서 풀어준 닭들이 모조리 자칼에게 물려 죽어버렸거든”. 떠나려는 자와 머무르려는 자, 그리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자는 어느 공동체에나 있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이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